[메타포커스]2016년 대법 판결 후 잇따르는 병원 책임제한 부정판결 "환자에게 특별한 과실 없어도 의료진 책임 제한이 일반적"
#. 윗배가 아파 인천 N병원을 찾은 30대 환자 A씨는 급성 담낭염 진단을 받고 복강경 담낭절제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복통이 이어졌고, 수술 부위 배액관을 제거한 후에는 담즙 색깔의 삼출물도 나왔다. 혈액검사 결과 간기능 수치도 정상보다 높았다.
A씨는 결국 인근 대형병원으로 전원 돼 루엔와이 간-공장 문합술을 받아야 했다. 알고 보니 N병원 의료진은 총담관을 담낭관으로 오인해 절단한 것. 법원은 N병원 의료진이 수술 과정에서 또 경과 관찰 과정에서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고 전적으로 병원 측 잘못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처럼 의료사고 관련 민사 소송에서 의료진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하는 법원 판결이 눈에 띄게 등장하고 있다. 단, 의료진의 과실이 누가 봐도 명백한 상황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통상 법원은 의료소송에서 의료진이 환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할 때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 퍼센트(%)로 제한해왔다. 손해배상액을 정하면서 법리에 따라 '의료행위의 위험성' 등을 이유로 의료진의 책임을 제한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의료진의 과실이 명확하더라도 '위험성'이라는 개념을 반영해 최고 90%까지라도 책임을 제한하는 게 관행이라면 관행이었다. 책임제한 비율 결정은 전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이다.
그런 관행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앞선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복강경 담낭절제술이 담관 손상의 위험성을 갖고는 있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의료진의 책임을 제한하기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 판결에서 환자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서로 조경구 변호사는 "환자에게 특별한 과실이 없음에도 관행적으로 의료진의 책임을 제한해 왔었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모든 사안에 대해 책임제한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수술상 과실이 명확하고 수술 이후 경과 관찰에서도 명백한 잘못이 있는 등 통상적 주의의무조차도 하지 않은 경우로 한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2016년 대법원 판결 기점 "흔하지는 않지만 변화는 분명"
이처럼 책임제한을 부정하는 판결은 2016년 6월 대법원 판결이 기점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질병의 특성, 치료방법의 한계 등으로 의료행위에 수반되는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고 볼만한 사정도 없이 의료진에게 요구되는 통상적인 주의의무를 소홀히 함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단지 치료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등의 막연한 이유만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통상적인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에까지 공평의 이념에 따라 의료상 과실 책임을 제한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서 볼 때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이후 의료진의 책임제한을 부정하는 판결들이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나오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법무법인 서로도 2016년 이후에만 세 건의 병원 측 책임 100% 판결을 이끌었다.
2018년 12월 병원측 책임을 100% 인정하는 대전고등법원의 판결도 법조계가 주목하는 판결 중 하나다.
왼쪽 폐하엽에서 간유리음영 크기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한 의료진이 전신마취 후 흉강경적좌폐 하엽 상구역절제술을 실시했다.
의료진은 하폐정맥을 박리한 후 상구역으로 가는 6번 정맥가지를 클립 결찰한 뒤 절단하고 좌상엽과 좌하엽 사이 폐동맥을 박리한 후 상구역으로 가는 폐동맥 가지를 자동봉합기로 절단했다. 이후 자동봉합기로 폐 실질을 절단하려던 중 심실세동 및 급성심정지가 발생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환자는 사망에 이르렀다.
법원은 수술 당시 폐정맥을 잡은 클립이 풀리게 한 시술상 과실, 지혈을 신속하게 하지 않은 과실 등을 인정하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의료진에게 100%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의료진이 수술을 한 경위, 폐정맥 절단 관련 과실 내용 및 그로 인한 환자 사망 경위 등에 비춰보면 의료진의 책임제한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병원 측 책임제한을 부정했다.
이 판결은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학술단 소속 변호사 6명이 대한의료법학회지에 발표한 '2018년 주요 의료판결 분석'에 소개되기도 했다.
2018년 6월 서울북부지방법원도 대장내시경 중 천공으로 식물이간이 된 사건에서 의료진의 손해의 100%를 배상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관행적으로 의료진의 책임을 제한해 온 법원 태도가 바뀌고 있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의료행위의 위험성'을 보다 구체적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변호사는 "의료행위의 특수성과 위험성은 이미 설명의무의 대상으로서 환자가 알고 받아들인 것"이라며 "의료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침습적 성격의 위험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험성이 현실화됐을 때 그 책임을 의료진에게 돌리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라며 "개별 사건에서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