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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vs 의대증원’ 같은 듯 다른 의료계 파업

발행날짜: 2020-08-25 05:45:59

20년만에 무기한 총파업…의료환경도 세대도 변했다
메타포커스'전공의' 파업 주도…투쟁 선배의사들의 지지속 파업

2000년 의약분업 의료파업vs 2020년 의대증원 의료파업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료 총파업 사태 이후 20년만에 재현된 2020년 의료 총파업 사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7월말 의료 총파업을 선언, 이후로도 정부와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2000년 당시처럼 파업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메디칼타임즈는 2000년 의료파업과 2020년 의료파업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2020년 8월, 의료계는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 추진에 반대하며 무기한 파업을 진행 중이다. 파업을 지지하는 개원의, 의대교수 등 의료진들은 20년전, 의약분업 당시 의료파업을 떠올린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어떻게 변했을까.

2020년 의료파업, 여전히 가시밭길

■정부와 대립각·대국민 여론악화

먼저 20년전 얘기를 해보자. 정부는 2000년 의료파업을 두고 약사법 개정에 반대한 의사들이 병원 휴업 등으로 저항,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면서 의료대란으로 발전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환자를 볼모로 의사집단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파업을 불사하고 있다는 부정적 여론이 팽배했던 것. 그럼에도 의료계는 파업 의지를 불태웠고 의료대란으로 이어지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만나 임시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2020년 총파업은 2000년과 달리 전공의가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의사협회와 의쟁투는 전국 회원투표를 실시해 폐업을 철회했지만 이후 국회와 정부의 약사법을 개정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의료계는 이에 분노하며 세차례 폐업과 휴업 등 투쟁을 이어갔지만 결국 정부의 정책 추진을 막지 못한 채 끝났다.

지난 23일 국무총리가 대한전공의협의회에 이어 대한의사협회를 만나 대화 모드로 전환되는 듯 했지만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집단휴진·휴업 등 위법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총파업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20년전 김대중 대통령도 의약분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듯이 문재인 대통령도 의대증원 확대를 보건의료 제1공약으로 제시할 만큼 강력한 의지를 비추고 있어 의료계에는 불리한 상황이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무기한 총파업으로 수술, 외래 등 진료 축소

일단 대학병원 전공의가 대거 참여하는 총파업이라는 점에서 20년전을 떠올리게 한다. 2000년 당시에도 개원의는 물론 대학병원 전공의까지 대거 거리로 나오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20년전에도 대학병원 수술은 물론 외래진료를 취소하거나 축소해 진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환자들의 민원이 들끓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전공의가 빠져나가면서 대학병원은 셧다운 직전이다.

20년간 전공의법이 제정되고 전공의 권리도 높아졌지만 여전히 대학병원들은 전공의가 없으면 정상적인 진료가 어려운 것은 변함이 없다.

전공의들은 지난 2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0년 의료파업, 2000년과 이렇게 다르다

■개원의 주도→의대생·전공의가 주도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이 발간될 정도로 기존 세대와는 다른 유전자를 보여주고 있는 젊은의사들. 2020년 의료총파업을 먼저 선언한 것은 대한의사협회였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치고 나오면서 투쟁 선봉에 섰다.

20년전인 2000년 의료파업에서는 대한의사협회가 파업을 이끌면서 각 직역을 진두지휘한 반면 2020년 의료파업을 주도하는 무리는 누가 뭐래도 전공의, 의대생 등 젊은 의사들이다.

여기에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의사협회와의 간담회 에 앞서 전공의협의회를 만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가지면서 전공의들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시켜줬다.

■2000년 투쟁 세대의 성장 "후배들아 나가 싸워라"

2000년과 2020년의 큰 차이는 의료계 결집력. 과거 거리로 나선 전공의들은 교수들의 압박에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국립대병원 한 내과 교수는 "2000년 당시 전공의로 의료파업에 동참했는데 밤에 몰래 병원와서 병동환자 채혈을 요구했다"며 "병원에서 사직처리하겠다는 협박부터 심지어 '돈벌레'라는 욕까지 감수하면서 파업에 참여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당시의 경험을 볼때 집단행동을 하려면 일제히 해야한다는 교훈이 있었다. 그래서 이왕하는거면 제대로 하라고 했다"며 "당장은 힘들지만 그들을 지지한다"고 했다.

전공의들은 의사가운을 벗어 로비에 반납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빅5병원 한 외과 교수는 "의대생, 전공의 단 한명이라도 다치면 참지 않을 생각이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후배의사들을 지킬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도록 해서 미안할 따름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라며 당직을 자처했다.

파업에 나선 전공의들도 "교수 등 선배의사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나서지 못했을 것"이라며 "계속해서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2000년 의료파업 당시 전공의 신분이었던 이들은 20년이 지난 현재 상당수 의과대학 주임교수, 개원의 단체장 등으로 성장했다. 과거의 전공의는 교수 눈치를 보며 파업에 참여했지만 2020년의 전공의는 교수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큰 변화다.

■시대가 바뀌었다…신종감염병 등 대혼란 시기

의료시장은 매년 급변하는 만큼 2000년도 대비 대학병원의 병상 규모도 환자도 증가했다. 즉, 의료파업 상황에서 감당해야할 환자 수도 늘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2000년도 1500병상 규모에 그쳤던 연세의료원은 2000년초반부터 1000병상 규모로 확대한 바 있다. 세브란스병원 이외에도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이 병상 경쟁에 나섰고 최근까지도 병상 규모를 계속해서 늘려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2020년, 전국의 의료기관들은 전세계적으로 유래없는 코로나19라는 신종감염병 대응으로 대혼란의 시기. 여기에 총파업까지 겹치면서 말그대로 의료대란이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무기한 파업에 나서야 하는 의료계 입장에서 코로나19라는 신종감염병 속 파업에 대해 국민적 지지를 받기는 어려운게 사실이다.

빅5병원 한 교수는 "20년전 환자들에 비해 연령은 물론 중증도 또한 상승하면서 치료가 어려운 환자가 늘어났다. 즉 의료진의 집중적인 케어를 요하는 환자가 늘어났음을 의미한다"며 "게다가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도 파업에는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2000년 대비 2020년은 환자안전법 등 환자들의 권리가 높아졌다.
■20년전 환자와 달리 높아진 환자 권리

환자군도 바뀌었다. 고령화로 인한 환자군 변화부터 환자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의대 교수들은 2000년도만 하더라도 환자 중증도가 지금만큼 높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환자 권리가 상승하면서 의료파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 날카로워졌다고.

지난 2016년 환자안전법 제정 이후 의료사고 등 의료기관의 과실에 대해 환자들의 권리를 내세울 수 있는 장치가 생겼고, 실제로 환자들의 인식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게 의료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형 대학병원 한 교수는 "과거 환자에 비해 요즘 환자들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고 요구한다"며 "의료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대국민을 설득하는 것도 이전보다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