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학회, 한국갤럽 통해 전문의 385명 대상 조사 발표 살인적인 업무강도 '당직비' '낮은 수가'로 박탈감 호소
"흉부외과의사로서 힘들고 어려운 환자를 보는 것 자체는 보람 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다. 또 연구가 부족하면 승진이 누락되고, 각종 콜업무와 응급진료에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은 다반사다. 결정적으로 월급은 턱없이 작다."
의료계 대표 기피과로 알려진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처절한 현실이 담긴 조사결과가 나왔다. 조사 시작 전부터 번아웃 상태의 전문의가 많을 것이라는 추정은 있었지만 그 결과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는 2019년 11월 18일부터 12월 1일까지 한국갤럽에 의뢰해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근무현황과 행태를 조사했다.
학회 측은 의료계의 주장이 아닌 보다 객관적이고 공식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국내 대형 리서치회사에 용역을 맡겨 진행했다.
조사는 온라인으로 진행했으며 대상은 전국 흉부외과 전문의 총 385명이 참여, 40~50대가 70.6%로 현재 의료 최일선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 중인 의사를 주축으로 조사했다.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의사 비율이 84.9%였으며 의원은 10.6%가 조사에 참여했다.
하루 평균 근무시간 12.7시간…주 63.5시간
그렇다면 흉부외과 전문의는 하루 몇시간을 근무할까.
조사에 응한 327명 전문의에 따르면 1일 평균 12.7시간, 주 63.5시간 일하고 있었다. 이는 흉부외과 내에서도 응급 당직이 적은 폐식도 분야 전문의를 포함한 것으로 성인심장, 소아심장 등 7%의 흉부외과 전문의는 하루 평균 16시간 이상 환자 곁을 지켰다.
이는 노동부가 권고하는 하루 평균 8시간을 훌쩍 넘었으며 주말 중 하루는 출근해 주5일제 또한 흉부외과 전문의들에게는 무의미했다.
또한 1개월 평균 당직 일수는 평균 5.1일로 주당 1~2일은 병원에서 밤샘 근무를 하고 있으며 이외는 별도로 출근 대기 및 응급으로 인한 병원외 대기 근무(온콜)를 유지하는 경우가 1개월에 10.8일에 달했다. 다시말해 흉부외과 전문의는 한달 30일 중 16일 이상을 개인생활 없이 야간대기 혹은 병원 내 밤샘 근무를 하는 셈이다.
이는 병원의 지역과 규모에 따라 격차도 극심했다. 서울권 흉부외과 전문의 당직 일수는 월 평균 3.5일이었지만 경기권은 5.5일로 상승했으며 그외 지역은 6.1일까지 상승했다.
또 흉부외과 전문의가 2~4명, 5~9명 근무하는 병원의 경우 당직은 각각 6.5일 5.5일에 달했지만 10명 이상 근무하는 병원은 3.5일 이하로 낮아졌다. 즉, 흉부외과 전문의 수를 늘리면 근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봉사만 요구하고 결국은 소외"
더 심각한 것은 흉부외과 전문의에게 '현재의 업무강도를 향후에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60.6%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응답했다.
흉부외과 전문의 80.4%가 '업무 강도가 높다'고 답했다. 특히 21.1%는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강도'라고 응답했으며 16.8%는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입원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경우도 9.2% 있었다.
이처럼 전문의들이 체감하는 업무강도는 높은 반면 보상은 낮았다.
흉부외과 전문의 67.9%가 '보상이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으며 특히 '형편없이 낮은 당직비' '온콜 수당 미지급' '낮은 수가로 인한 악순환' 등을 문제로 꼽았다.
조사에 응한 흉부외과 전문의는 "경제적 보상이라도 제대로 있어야지 당직 비 10만원이 말이 되나 환자가 나빠지면 책임은 무한대이다. 이런 불공평이 어디 있는가"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번아웃 심각…환자도 위험하다"
조사에 응한 흉부외과 전문의 93.9%가 '의사의 번아웃 증상으로 향후 환자에게 위해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에 동의했다. 대부분의 전문의가 의사의 피로도로 인해 환자의 안전이 걱정된다는고 본 것.
실제로 현재 번아웃 상태라고 응답한 전문의는 51.7%에 달했으며 번아웃으로 인한 환자 위해 여부는 48.6%라고 응답했다.
구체적 사례로 36시간 이상 연속 근무 이후 체력 고갈 상태에서의 응급수술, 밤샘 수술 이후의 외래진료, 응급 수술 이후 새로운 환자 발생시 위급 사항 발생, 과도한 업무(응급수술, 당직)로 인해 예정된 수술의 연기 등을 제시했다.
조사에 응한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번아웃의 원인은 체력 고갈, 과도한 업무, 대처능력 저하 등으로 흉부외과 전체의 번아웃으로 환자와 우리 사회에 미칠 위해를 막으려면 단기적이고 명확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명감 하나로 버티기엔 현실은 너무 척박"
이들 흉부외과 전문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업무 강도에 비해 최악으로 치닫는 경제적 보상.
실제로 흉부외과 전문의가 체감하는 만족도는 매우 낮았다.
10점 척도를 기준으로 '개인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삶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는 4.4점에 그쳤으며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삶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는 4.6점에 불과했다.
이어 '사회인으로서 주변의 존중/존경을 받는 정도로부터 오는 만족도'는 5.4점, '흉부외과 전문의로서 성취나 의료행위관련 만족도'는 5.5점으로 사회적 명예에 대한 만족감 또한 낮은 수준에 그쳤다.
조사에 응한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어려운 공부, 힘든 일, 적은 보람, 미미한 보상, 불안정하고 나아질 리 없는 미래. 이 모든 것이 선택을 후회하게 만든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전문의는 " 최선을 다해 진료하지만 의료사고로 처리되어 죄인처럼 소송에 걸렸을 때, 가족이 아픈데 돌보지 못할 때 힘들다"고 토로했으며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없다. 최악의 상황이고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뿐이다"라고 하소연 하기도 했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는 이번 조사를 근거로 제시하며 "과도한 업무 시간과 낮은 보상, 번아웃 직전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긴급하고 직접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불합리하게 집행하고 있는 흉부외과 지원금 또한 철저한 조사와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흉부외과 현황에 대한 정부차원의 조사를 제안했다.
또한 최근 공공의대 신설과 기피과 의무근무 등 정책에 대해 "의대생 증원으로 흉부외과 지원자를 늘릴 수 없다"며 "10년 내외의 짧은 의무복무 제도로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흉부외과 의사를 양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신 흉부외과를 기간산업처럼 투자하고 양성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국가의 필수적 의료로 선정해 국가적 대규모 투자와 수가를 현실화 하고, 흉부외과 분야 연구 지원, 흉부외과 특별법 등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학회는 "지금은 흉부외과에 대한 긴급하고 명확한 조사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개선이 가능한 마지막 시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