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전에 대해서는 환수 처분이 정당하다고 확정 판결하자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의료기관이 공단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제반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전액 환수한 것은 위법이며, 환자 본인부담금 역시 환수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해 병원계가 적지 않은 실리를 챙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재판장 박병대)는 28일 서울대병원과 건강보험공단 간 원외처방약제비 사건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이 사건은 의약분업 직후인 2001년 11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서울대병원의 원외처방전 중 수십만건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하자 공단이 해당 진료비 약 40억원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비롯됐다.
서울대병원은 1심에서 완승을 거뒀지만 2심에서는 5건의 처방에 해당하는 18만원만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서울고법은 2009년 "서울대병원 의사들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해 원외처방전을 발급한 것은 위법하지만 5건의 경우 최선의 진료를 위해 의학적 근거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정당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일부 승소 판결한 바 있다.
"요양급여기준 위반한 처방은 위법"
하지만 대법원은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하기 위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전을 발급했다면 의학적 근거가 있더라도 위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비록 그 5건의 원외처방이 최선의 진료를 다하기 위해 적정한 의료행위에 해당하더라도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남에 따라 급여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위법하다고 봐야 함에도 서울고법이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못 박았다.
그러자 의협 노환규 회장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노 회장은 이날 울산 정기대의원총회에 참석해 "과거부터 일관된 생각은 원외처방약제비 환수는 공단이 의사를 상대로 하는 강도짓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노 회장은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협회가 진작에 헌법소원에 들어갔어야 했다"면서 "이번에 서울대병원의 판결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어 병원과 함께 헌법소원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전액 환수 부적절…책임 범위 재심리하라"
다만 대법원은 서울대병원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전을 발급해 공단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제반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전액 환수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서울고법에서 다시 심리하라고 주문했다.
2006년 12월 대법원은 "병원이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나 처방하게 된 경위나 동기, 공단의 손해 발생에 관여된 객관적인 사정, 병원이 취한 이익 유무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해 손해 분담 공평 원칙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제한할 수 있다"고 선고한 바 있다.
이같은 취지에서 서울대병원이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약제를 처방했다 하더라도 최선의 진료의무를 다하기 위해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갖춘 처방 사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임의비급여 사건의 경우 2012년 6월 의학적 불가피성, 의학적 필요성, 환자 동의 등 3대 조건이 성립하면 과다청구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지만 원외처방은 그 법리가 제시되기 이전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의료기관이 원외처방으로 받은 요양급여비용은 처방료에 불과하고, 직접적으로 취한 이익이 없다는 점도 책임 감경사유에 해당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원외처방전으로 공단에게 발생한 손해를 모두 서울대병원에게 부담하라고 하는 것은 손해분담의 공평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 비춰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환기시켰다.
다시 말해 서울대병원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전을 발급한 것은 모두 위법이지만 의학적으로 처방이 불가피한 사례 등 책임 감경사유를 판단해 손해의 범위를 다시 정하라는 게 대법원의 주문이다.
대법원은 "서울대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경감할 사유에 대한 심리 판단을 누락한 채 이 사건 원외처방전으로 공단에게 발생한 손해액 전부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원심(서울고법 판결)은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환자 본인부담금은 환수 대상 아니다"
또 대법원은 "공단은 약국에 지급한 공단부담금 외에 환자가 약국에 지급한 본인부담금까지 손해에 포함시킨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 본인부담금은 환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대병원은 공단이 환수한 40억원 중 환자 부담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고, 서울고법에서 손해배상 책임범위가 예들 들어 70%로 제한된다면 수십억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대법원이 환수처분의 소멸시효를 10년으로 판단한 것 역시 병원계 입장에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약제비 환수소송 소멸시효는 3년 아닌 10년"
공단은 건강보험법 상 보험급여비용을 받을 권리를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됨에 따라 이 사건 소가 제기된 2007년 8월 3일부터 3년 전인 2004년 8월 3일 이전에 원외처방 약제비로 차감·징수한 것은 시효완성으로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은 "이 사건은 보험급여비용을 받을 권리가 아니라, 공단이 차감·징수한 부당이득의 반환을 청구하는 것이어서 민법상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면서 공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이 사건은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므로 원심이 공단의 단기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것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병원계의 추가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서울대병원 측 대리인인 현두륜(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대법원이 이 사건 소멸시효를 10년으로 판단했고, 환자 본인부담금에 대해서는 손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점은 병원에 유리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 약제비라 하더라도 공단과 병원이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판결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서울대병원과 공단은 서울고법 파기환송 변론에서 책임범위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펼 것으로 예상되고, 이번 사건이 원외처방약제비 소송 첫 확정판결이라는 점에서 병원계의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