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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낙태법 개정을 위한 쟁점 3가지

원영석
발행날짜: 2019-04-24 06:00:50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원영석 총무이사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269조, 270조에 해당하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2020년까지 낙태죄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 사실상 낙태수술을 일정부분 허용하는 사회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이제 공은 국회와 정부로 넘어왔으며, 실제 현장에서 수술을 담당하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의 의학적인 의견도 중요해졌다. 그래서 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내부적으로 의견을 정리해 통일하기 위해 위원회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의견 요구에 대해 대비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앞으로 쟁점이 될 부분이 어떤 것이 있을지 그동안 나온 내용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쟁점1.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 주수는?

첫 번째로 중절 수술을 허용하는 임신주수의 기준이다. 기준점을 나열하면 착상된 시점,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시점, 태아가 감각을 갖기 시작하는 시점, 태아가 태어났을 때 살릴 수 있는 시점으로 요약된다. 이런 기준들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각자의 신념이나 나름대로의 논리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은 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임신주수 기준이 어떠한지를 알아보고 이에 따른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순서다. 우리가 어떤 새로운 법을 도입할 때 당연히 이미 그 법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에서 법 시행에 따른 장단점을 체크해 봐야 하는 것이다.

일전에도 산부인과의사회에서는 모자보건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가 있다. 모자보건법은 1970년대의 사회상과 의학적 소견이 반영되었기에 지금과는 많이 동떨어진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생학적 내용이 다분하고 실제로 태어났을 때 사망하게 되는 기형에 대해서는 수술을 못하게 만들어 놨다. 임신주수에 대한 기준점을 너무 높이면 안되겠지만, 심각한 기형아에 대해서는 예외적인 규정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일반적인 견해는 태아가 감각을 느끼기 시작하는 임신 12주 이전이 중절수술 허용의 주수로 보는 것이다. 이 때까지는 수술 후 출혈이나 염증 등의 합병증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지 않으며, 생리불순이 있어서 임신사실을 늦게 알더라도 대부분 12주전에는 알 수 있고 실제로 수술을 하는 여성의 대부분이 12주 이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낙태조사 발표자료에 의하면 중절수술을 하는 시기는 12주 이내가 95.3%였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를 면밀히 검토하고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종합해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쟁점2.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이유

두 번째로, 중절수술을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한 부분이다. 이것 역시 2018년 보사연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33.4%), 두 번째가 경제적으로 양육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으며 (32.9%), 자녀 계획에 의한 것이(31.2%) 세 번째였다. 사회경제적인 이유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OECD에 속한 36개 국가에서 사회경제적 이유로 중절수술을 허용하는 국가는 31개국으로 대부분이 허용하고 있었으며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도 수술을 허용하는 국가가 25개국이나 되었다.

결국 우리나라도 사회 경제적인 이유로 수술을 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낙태수술이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데 조사에 의하면 낙태죄로 처벌을 한다고 해도 낙태수술을 감행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이 84.6%로 높았다. 법에서 수술을 못하게 강제한다고 하더라도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90년대에 낙태수술을 허용하면서 강력범죄율이 오히려 감소했으며 낙태수술 건수도 감소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불법수술 때문에 수술비는 상승하고 무리하게 허가받지 못한 곳에서 수술을 감행하다가 수술의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늘게 되며 이런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실례로 낙태수술을 금지하고 있는 필리핀은 매년 10만명의 여성이 수술 때문에 사망한다는 국제보건기구(WHO)의 보고가 있다.

몸은 성숙했지만 사회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않은 여성이 한 번의 잘못된 실수로 무리하게 수술을 하다가 여러 가지 합병증이 생길 수 있고, 이는 출산율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큰 손실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다시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을 때 다시 임신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사회는 만들어주어야 한다.

쟁점3. 인공임신중절 수술 관련 급여 문제

마지막으로 의료 급여화에 대한 논란이다. 법이 개정된 이후 논의하는 것도 늦지 않을 것이지만 직접 환자를 대면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봤을 때 생각해 볼 문제는 피임을 충분히 했음에도 임신한 경우이다.

자궁내피임장치인 루프시술을 받았거나, 피임약을 먹거나, 콘돔을 사용했음에도 임신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환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노력했는데 임신을 했으니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다만 콘돔은 피임효과가 85%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피임교육을 통해 피임효과가 더 좋은 피임약이나 루프시술로 유도해야 한다. 이런 환자에게는 보험급여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피임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은 경우까지도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것은 본인의 잘못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으며, 피임을 유도해야 하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적절치 않으며 보험재정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사이에 두고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동안 대립해왔으며 헌재에서는 지금의 법이 태아의 생명권을 더 중시하고 있다고 보고 결국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지만, 지금까지도 각 사회단체가 대립하는 등 낙태수술은 매우 어렵고 조심스러운 문제다.

낙태 수술을 찬성하는 의사들조차도 수술을 할 때 무거운 마음으로 수술을 한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힘든 수술이고 작년 8월에는 의료관계행정규칙이 개정되면서 낙태수술을 하는 의사를 비도덕적인 진료로 간주해 면허정지 처분을 한다고 하면서 더더욱 산부인과 의사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당연히 이번 판결로 낙태수술에 대한 내용은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헌재 판결을 계기로 이제는 낙태수술이 어느 한 여성과 의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연대 책임을 져야하고 임신을 하게 한 남성도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에 각자의 입장에서만 대립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사회의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게 하여 사회경제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줌으로써 사회적 손실을 막아야 할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들도 여성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최전선에 있는 직업이기에 올바르게 법 개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국회와 정부를 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