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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법 개정 시끄러워진 의료계...제로섬 게임되나

원종혁
발행날짜: 2021-04-13 05:45:59

보험업법·의료법과 충돌, 심평원 부당 개입 등 문제 다분
의료기관 청구 문제 공론화....의협 12일 합동토론회 열어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편익을 늘리자고 추진 중인 '실손(민간)보험 의료기관 청구 의무화제도'.

해당 보험업법 개정안을 놓고, 의료계 안팎에서는 기존 의료법과의 상충 문제부터 공적기관인 심평원의 부당개입 여지, 환자정보 유출까지 다양하게 거론되면서 잡음을 쏟아내고 있다.

12일 의협회관에서는 실손보험 의료기관 청구 의무화 문제를 놓고 전문가 합동토론회가 열렸다.
12일 대한의사협회가 주관한 '민간 실손보험 의료기관 청구 의무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 토론회가 의협 용산회관 7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의료계를 비롯한 보험업계, 유관 산업단체 및 정부 관계자 등 이해관계자가 참석해 타당성과 실효적인 대안을 놓고 입장차를 재확인했다. 정부측 패널로 참석한 복지부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큰 방향성은 동의하고 있는데, 세부적인 절차라든지 사후관리 방안은 논의를 통해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청구 의무화에 따른 문제점을 발제한 이준석 변호사(법무법인 지우)는 "개정안의 입법 취지가 보험소비자의 편익 제고라고 하지만 실제로 보험소비자의 편익이 당초 기대만큼 늘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면서 "오히려 이 과정에서 공적기관인 심평원을 개입시키는 것은 임의적 보험정보의 집적화와 남용 위험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심평원을 중계업무에 개입시킬 것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보험사가 민간 핀테크 업체와 협력해 보험청구 절차 간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보험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살펴보면, 청구절차의 번거로움으로 실손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가입자의 편익을 늘리기 위한 입법 취지로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환자의 진료정보를 민간(실손)보험사에게 전송토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서류전송시 법적 근거 등 분쟁 소지 많아..."환자 편익 증진 취지도 무색"

개정법상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따른 문제점으로는, 크게 다섯 가지 이슈들이 쟁점으로 지목됐다.

서류전송에 법적근거를 비롯한 기존 의료법과 상충 문제, 환자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심평원 개입 부당성, 진료정보 남용 및 집적화 우려에서였다.

더욱이, 보험에 가입된 환자들의 편익을 올리자는 것이 해당 법안의 취지였음에도 실효성에는 의문을 제기한 것.

이준석 변호사(법무법인 지우).
이준석 변호사는 "결국에는 환자가 의료기관에 구두가 아닌 문서로 요청을 해야만 한다"면서 "보험금 청구라는 주된 업무 자체는 환자가 직접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보험소비자의 편익이 크게 증진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손보험 외에 다른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의 경우에도 진료관련 서류의 제출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유독 실손보험만 이와 같은 편의를 제공하는데엔 다른 보험계약자와의 형평성도 어긋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서류전송에 법적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 먼저 언급됐다.

이에 따르면, 보험계약자가 진료를 받은 후 실손의료보험 계약사항에 따라 민간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경우 자료 수집 및 근거 확보 의무는 보험사가 가진다. 이 과정에서 보험계약자가 불편을 겪는다면, 청구 절차의 개선의무도 보험사에게 있다는 것.

이 변호사는 "그럼에도 보험계약의 당사자도 아닌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의료비 증명서류를 보험계약자가 가입한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법적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에 필요한 서류 확보 업무'를 의료기관에 전가하는 것"이라고 부당함을 지적했다.

개정안 의료법 조항과도 상충..."심평원 독점적 권한 강화 우려"

더불어 기존 의료법과의 상충 문제다. 개정안에서는 의료법 제21조에도 불구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요청에 따라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으나, 의료법 제21조 제2항에서는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 열람이나 사본 제공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제3자에 대한 열람이나 사본 교부가 가능한 사유를 열거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개정안 조항은 의료기관의 의무를 규율하는 의료법 조항과도 상충된다는 평가.

이 변호사는 "의료기관이 보험회사에 대한 전자전송 방법의 서류제공이 가능하기 위해선 보험업법 뿐만 아니라 의료법 개정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차트를 제3자에게 발급을 해줄 경우 의사들은 형사처벌 위험이 있고, 별개로 면허정지까지 받을 수 있다. 보험업법보다도 의료법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의료법 개정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보험업법 개정을 진료현장에 적용해도 문제가 생기는 이유"라고 정리했다.

이외에도 환자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나, 심평원의 개입이 부당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개정안과 같이 환자 본인을 거치지 않고 관련 서류가 보험사에 전송된다면, 그 과정에서 정보주체인 환자 책임과는 무관하게 전자적 전송과정에서 진료정보가 해킹 등 위법한 방법이나 중계기관의 과실로 인한 유출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유출될 경우 의료기관이나 중계기관, 보험회사간 책임여부와 관련한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 변호사는 "개정안은 환자 정보전송을 위한 전산체계 구축 및 운영과 관련한 사무를 심평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민간보험사가 운영하는 실손의료보험 청구과정에 개입시키는 것은 요양급여비용을 심사하고 적정성을 평가한다는 기본 설립 목적 및 역할에서 벗어나 설립 근거인 국민건강보험법 위임 범위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끝으로 그는 "실손보험에서 비급여 항목이나 비용이 높은 항목에 대해서는 진료비 영수증 외에도 세부내역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상황임을 감안할때, 심평원에 진료정보 집적화와 독점 권한 강화의 소지가 높다"고 덧붙였다.

정부 "실손청구 기술 혁신 이득, 국민에 돌아가야"...큰 틀은 유지

공인식 보건복지부 의료보장관리과장.
한편 이날 토론회는 최재욱 고려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를 좌장으로 전문가 패널토의도 이어졌다.

지규열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의사라고 하더라도 환자의 개인정보는 타인에게 결코 발설할 수 없다. 그만큼 법적책임이 의사에게 중요하게 다가오고, 중요하다는 얘기"라면서 "진료현장에서도 환자들이 굉장히 민감해하는 부분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법적으로 누군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선후관계가 애매해진다"고 지적했다.

국민들의 편익만 앞세운다면, 뒤에 따라올 위험 및 분쟁요소들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되물었다. 그는 "자동차보험에서 처럼 심평원이 관리를 하면 될 것 아니냐 하지만, 심평원은 하나의 공적기관"이라면서 "공공기관이 사적인 보험회사의 보험업무를 처리해준다는 것은 설립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박기준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부장은 "의료계가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선 잘 듣고 알고 있다"며 "오히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에게도 요청을 했다. 심평원이 본연의 업무외 용도나 데이터를 집적하는 것에는 강력히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고, 업무 위반에 대한 처벌 강화도 지지했다. 이러한 우려는 더이상 안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공인식 보건복지부 의료보장관리과장은 정부 정책과 관련, 실손보험 청구의 큰 방향성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최근에 실손청구와 관련해 데이터 이동 등 기술 혁신으로 얻어진 이득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다만 이해당사자간 입장별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 실손 가입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청구가 어려웠던 소액청구를 쉽고 빠르게 받길 원하고 있고, 의료계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보다는 서류제출에 대한 행정적 부담 문제가 나온다. 보험업계는 관리 효율적인 측면에서 의견을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공 과장은 "실손청구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의료계와 보험업계의 공유가 필요한 부분"이라면서 "다양한 이슈가 있지만 금융위와 함께 실손보험 청구의 큰 방향은 동의하면서도 누가, 어떻게, 무슨 자료를 청구하는 것을 간소화 할 것인지를 이후 청구 모형이나 전체적인 사후관리, 지급건을 잘 고민해 보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