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페인으로 간다
컬럼버스와 플라멩코의 도시 세비야(3)
성당 앞에는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가 줄지어 있다. 오래 전에 미국의 시카고인가 뉴욕에 갔을 때, 도심에서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는 관광객을 보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타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차가 넘쳐나는 대도시의 거리를 마차타고 누비는 모습이 생뚱맞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풍이 넘치는 유럽의 옛 도시에서는 마차를 타는 것이 잘 어울릴 듯하다. 마차에 올라 그 옛날 세비야의 거리를 누비던 귀족 흉내를 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같이 움직이는 일행을 생각하면 그저 생각에 그쳐야 했다.
세비야 성당에서 산타크루즈 지역으로 이동한다. 레콘키스타 이전까지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장소로 안달루시아 전통의 가옥들이 좁은 골목길을 마주하고 이어져 있다. 골목길이 얼마나 좁은가 하면, 베란다에서 서로 몸을 기울여 키스를 나눌 정도이다. 그래서 키스골목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런 골목의 특성이 돈 후앙의 애정행각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혹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다가 가족에게 들켜도 창문을 넘어 옆집 베란다로 넘어 달아나면 그만이었다는 것이다.
앞서 세비야는 오페라로 유명한 도시라고 소개하였는데, 무려 25개의 오페라 작품에서 세비야가 장소적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산타크루즈 지역은 대표적인 장소로 팜므파탈의 대표 카르멘과 옴므파탈의 대표 돈 후앙이 은밀한 애정행각을 벌이던 곳이다. 이 동네에 거미줄처럼 얽힌 미로는 카르멘의 복잡한 애정심리, 나아가서는 돈 후앙의 미로같은 사랑을 의미하는 것일까? (참고로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에 나오는 돈 후앙의 연애 상대는 이탈리아에서 640명, 독일 230명, 프랑스 100명, 터키에서 91명, 스페인에서는 무려 1003명, 합계 2064명이다)
세비야 ‘알카사르(Alcazar)’의 북동쪽 성벽에 이어진 산타크루즈 골목에 있는 '코랄 델 아구아(Corral del Agua)'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 장소 중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19세기의 스페인 낭만주의 극작가 호세 소리야( Jose de Zorrilla)가 돈 후안을 모델로 쓴 작품 '돈 지오반니 테노리오'의 무대가 되는 호스텔 델 로렐(La Hosteria del Laurel) 역시 산타크루즈 골목에서 여전히 성업 중이란다.
'카르멘'은 프랑스 극작가 P. 메리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로, 1820년대의 세비야에 있던 담배공장, 세비야의 투우장 등 세비야의 거리와 골목 광장을 무대로 펼쳐진다. 지금은 세비야대학교 법학부가 들어 있는 건물이 예전에는 담배공장이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담배공장이 1막의 무대이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카르멘은 보초를 서고 있는 돈 호세가 마음에 들어 추파를 던진다. 돈 호세가 동료여공과 싸우던 카르멘을 잡으러온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카르멘은 "세비야 성벽 근처에 내 친구 릴라 파스티아의 술집이 있지. 그 곳은 혼자가면 지루해. 당신과 함께 그 곳에 간다면 진짜 재미있겠네."라고 노래 부르면서 돈 호세를 유혹한다. 결국 돈 호세는 카르멘을 풀어주지만, 자신이 감옥에 갇히고 마는데…
2막은 산타크루즈 지역에 있는 릴라 파스티아의 술집이 무대이다. 카르멘이 집시들과 춤을 추고, 술을 마시는 가운데 세비야 최고의 투우사인 에스카미요가 나타난다. 에스카미요는 카르멘에 반하여 데이트를 신청한다. 카르멘이 에스카미요와 밀당을 하고 있는 동안, 역시 카르멘에게 넘어간 돈 호세가 나타나는 바람에 상황이 꼬인다. 저녁에 찾은 플라멩코 공연에서도 카르멘으로 구성된 춤을 볼 수 있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나 호세 소리야( Jose de Zorrilla)의 '돈 지오반니 테노리오'는 모두 14세기경 세비야의 귀족 미구엘 마냐라(Miguel Manara)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지만,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회개를 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의미로 구제의원(Hospital de Caridad)이라는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병원을 지어 운영했다고 한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산타크루즈 지역의 키스 골목에서 돈 후앙과 관련이 있는 장소라고 가이드가 소개했던 장소(Hospital de los venerables sacerdotes)는 1689년 세비야의 바로크 스타일로 건설되어 레콘키스타 이후 알카사르에서 거주한 최초의 가톨릭왕인 카스티야의 왕 페르디난드3세에게 헌정된 교회였다고 한다. 이곳은 나이 들고 가난한 성직자들을 위한 병원으로 이용되었는데, 1987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1991년 소피아왕비가 참석한 가운데 준공을 보아 세비야 문화기금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좁은 골목을 빠져 나가 마리아 루이사 공원(Parque de Maria Luisa)에 도착했는데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은 공원에서 행사가 있기 때문에 입장을 할 수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한 곳이다. 이곳은 몸반세公의 부인 마리아 루이사가 소유한 산 텔모 궁전의 정원이었는데, 1893년에 정원의 절반을 세비야시에 기부하여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했다. 닫힌 철문 밖에서 보이는 커다란 고무나무는 천년이나 된 것이라고 자랑한다지만, 사실은 250년쯤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위용이 대단하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건물이 조아키노 로시니가 작곡한 희극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이탈리아어: Il barbiere di Siviglia)'의 무대라고 했다. 프랑스 희곡 작가인 피에르 보마르셰가 쓴 동명의 코메디극본을 바탕으로 체사레 스테르비니가 대본을 작성한 오페라다.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 로시나를 두고 그녀의 후견인 바르톨로박사와 젊은 귀족 알마비바백작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데 세비야의 사정을 잘아는 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을 받고 있는 백작은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우리가 지나온 골목길을 빠져나온 백작이 이집의 베란다를 올려다보면서 멋진 세레나데를 불러 로시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생각 같아서는 같이 간 아내를 베란다에 세우고 세레나데를 불러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럴만한 뱃장도 솜씨도 없어서 마음속으로만 세레나데를 부르고 말았다. 가이드는 이 집의 베란다 박공에는 마귀의 형상이 새겨져 있고, 이는 일종의 스페인식 풍수라고 했다. 즉 비가 오면 나쁜 기운을 씻어 내려간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루이사 공원의 담장을 따라서 스페인광장(Plaza de Espana)으로 간다.
스페인광장은 1929년에 세비야에서 열린 에스파냐-아메리카 박람회를 치루기 위하여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Anibal Gonzalez)의 설계로 지었다. 지금은 세비야주의 정부청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중앙에 분수대가 설치된 널따란 광장을 배치하고, 광장을 감싸는 인조 강물을 두었다. 인조강물을 따라서 한가롭게 배를 저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다시 반달 모양의 건물을 배치하여 전체 공간을 에워싸고 있다. 광장으로 향한 벽면을 따라서 스페인의 50개주를 소개하는 부스를 마련했다고 한다. 부스의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는 그 주를 대표하는 그림을 타일로 장식하고 있다. 돈키호테와 판초판사가 풍차를 향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널따란 광장에 내려앉는 비둘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독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이곳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곳인데, 김태희씨나 한가인씨 등 유명 배우가 이곳에서 찍은 광고를 통하여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김태희씨가 플라멩코의상을 입고 찍은 광고필름을 찾아보았는데, 역시 아름답다. 누가? 김태희씨가…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광장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오후 내 숨가쁘게 돌아본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간다.
성당 앞에는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가 줄지어 있다. 오래 전에 미국의 시카고인가 뉴욕에 갔을 때, 도심에서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는 관광객을 보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타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차가 넘쳐나는 대도시의 거리를 마차타고 누비는 모습이 생뚱맞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풍이 넘치는 유럽의 옛 도시에서는 마차를 타는 것이 잘 어울릴 듯하다. 마차에 올라 그 옛날 세비야의 거리를 누비던 귀족 흉내를 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같이 움직이는 일행을 생각하면 그저 생각에 그쳐야 했다.
세비야 성당에서 산타크루즈 지역으로 이동한다. 레콘키스타 이전까지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장소로 안달루시아 전통의 가옥들이 좁은 골목길을 마주하고 이어져 있다. 골목길이 얼마나 좁은가 하면, 베란다에서 서로 몸을 기울여 키스를 나눌 정도이다. 그래서 키스골목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런 골목의 특성이 돈 후앙의 애정행각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혹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다가 가족에게 들켜도 창문을 넘어 옆집 베란다로 넘어 달아나면 그만이었다는 것이다.
앞서 세비야는 오페라로 유명한 도시라고 소개하였는데, 무려 25개의 오페라 작품에서 세비야가 장소적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산타크루즈 지역은 대표적인 장소로 팜므파탈의 대표 카르멘과 옴므파탈의 대표 돈 후앙이 은밀한 애정행각을 벌이던 곳이다. 이 동네에 거미줄처럼 얽힌 미로는 카르멘의 복잡한 애정심리, 나아가서는 돈 후앙의 미로같은 사랑을 의미하는 것일까? (참고로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에 나오는 돈 후앙의 연애 상대는 이탈리아에서 640명, 독일 230명, 프랑스 100명, 터키에서 91명, 스페인에서는 무려 1003명, 합계 2064명이다)
세비야 ‘알카사르(Alcazar)’의 북동쪽 성벽에 이어진 산타크루즈 골목에 있는 '코랄 델 아구아(Corral del Agua)'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 장소 중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19세기의 스페인 낭만주의 극작가 호세 소리야( Jose de Zorrilla)가 돈 후안을 모델로 쓴 작품 '돈 지오반니 테노리오'의 무대가 되는 호스텔 델 로렐(La Hosteria del Laurel) 역시 산타크루즈 골목에서 여전히 성업 중이란다.
'카르멘'은 프랑스 극작가 P. 메리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로, 1820년대의 세비야에 있던 담배공장, 세비야의 투우장 등 세비야의 거리와 골목 광장을 무대로 펼쳐진다. 지금은 세비야대학교 법학부가 들어 있는 건물이 예전에는 담배공장이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담배공장이 1막의 무대이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카르멘은 보초를 서고 있는 돈 호세가 마음에 들어 추파를 던진다. 돈 호세가 동료여공과 싸우던 카르멘을 잡으러온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카르멘은 "세비야 성벽 근처에 내 친구 릴라 파스티아의 술집이 있지. 그 곳은 혼자가면 지루해. 당신과 함께 그 곳에 간다면 진짜 재미있겠네."라고 노래 부르면서 돈 호세를 유혹한다. 결국 돈 호세는 카르멘을 풀어주지만, 자신이 감옥에 갇히고 마는데…
2막은 산타크루즈 지역에 있는 릴라 파스티아의 술집이 무대이다. 카르멘이 집시들과 춤을 추고, 술을 마시는 가운데 세비야 최고의 투우사인 에스카미요가 나타난다. 에스카미요는 카르멘에 반하여 데이트를 신청한다. 카르멘이 에스카미요와 밀당을 하고 있는 동안, 역시 카르멘에게 넘어간 돈 호세가 나타나는 바람에 상황이 꼬인다. 저녁에 찾은 플라멩코 공연에서도 카르멘으로 구성된 춤을 볼 수 있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나 호세 소리야( Jose de Zorrilla)의 '돈 지오반니 테노리오'는 모두 14세기경 세비야의 귀족 미구엘 마냐라(Miguel Manara)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지만,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회개를 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의미로 구제의원(Hospital de Caridad)이라는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병원을 지어 운영했다고 한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산타크루즈 지역의 키스 골목에서 돈 후앙과 관련이 있는 장소라고 가이드가 소개했던 장소(Hospital de los venerables sacerdotes)는 1689년 세비야의 바로크 스타일로 건설되어 레콘키스타 이후 알카사르에서 거주한 최초의 가톨릭왕인 카스티야의 왕 페르디난드3세에게 헌정된 교회였다고 한다. 이곳은 나이 들고 가난한 성직자들을 위한 병원으로 이용되었는데, 1987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1991년 소피아왕비가 참석한 가운데 준공을 보아 세비야 문화기금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좁은 골목을 빠져 나가 마리아 루이사 공원(Parque de Maria Luisa)에 도착했는데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은 공원에서 행사가 있기 때문에 입장을 할 수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한 곳이다. 이곳은 몸반세公의 부인 마리아 루이사가 소유한 산 텔모 궁전의 정원이었는데, 1893년에 정원의 절반을 세비야시에 기부하여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했다. 닫힌 철문 밖에서 보이는 커다란 고무나무는 천년이나 된 것이라고 자랑한다지만, 사실은 250년쯤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위용이 대단하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건물이 조아키노 로시니가 작곡한 희극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이탈리아어: Il barbiere di Siviglia)'의 무대라고 했다. 프랑스 희곡 작가인 피에르 보마르셰가 쓴 동명의 코메디극본을 바탕으로 체사레 스테르비니가 대본을 작성한 오페라다.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 로시나를 두고 그녀의 후견인 바르톨로박사와 젊은 귀족 알마비바백작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데 세비야의 사정을 잘아는 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을 받고 있는 백작은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우리가 지나온 골목길을 빠져나온 백작이 이집의 베란다를 올려다보면서 멋진 세레나데를 불러 로시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생각 같아서는 같이 간 아내를 베란다에 세우고 세레나데를 불러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럴만한 뱃장도 솜씨도 없어서 마음속으로만 세레나데를 부르고 말았다. 가이드는 이 집의 베란다 박공에는 마귀의 형상이 새겨져 있고, 이는 일종의 스페인식 풍수라고 했다. 즉 비가 오면 나쁜 기운을 씻어 내려간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루이사 공원의 담장을 따라서 스페인광장(Plaza de Espana)으로 간다.
스페인광장은 1929년에 세비야에서 열린 에스파냐-아메리카 박람회를 치루기 위하여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Anibal Gonzalez)의 설계로 지었다. 지금은 세비야주의 정부청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중앙에 분수대가 설치된 널따란 광장을 배치하고, 광장을 감싸는 인조 강물을 두었다. 인조강물을 따라서 한가롭게 배를 저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다시 반달 모양의 건물을 배치하여 전체 공간을 에워싸고 있다. 광장으로 향한 벽면을 따라서 스페인의 50개주를 소개하는 부스를 마련했다고 한다. 부스의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는 그 주를 대표하는 그림을 타일로 장식하고 있다. 돈키호테와 판초판사가 풍차를 향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널따란 광장에 내려앉는 비둘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독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이곳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곳인데, 김태희씨나 한가인씨 등 유명 배우가 이곳에서 찍은 광고를 통하여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김태희씨가 플라멩코의상을 입고 찍은 광고필름을 찾아보았는데, 역시 아름답다. 누가? 김태희씨가…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광장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오후 내 숨가쁘게 돌아본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