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췌장암 바꿀 '라손큐' 성과에 가려진 '5500만원' 냉혹한 현실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마땅한 치료 옵션이 없어 '최악의 암'이자 난치성의 대명사로 불리는 전이성 췌장암 분야에서 환자 생존 기간을 획기적으로 연장한 혁신 신약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미국식품의약국(FDA)은 전이성 췌장선암 환자를 위한 최초의 광범위 RAS(ON) 다중 선택적 억제제인 '라손큐(Rasonque, 다락손라십)'의 시판 허가를 공식 승인했다.올해 상반기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전 세계 종양학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 약물은, 당초 예상보다 심사 일정을 수개월 앞당겨 FDA 관문을 통과하며 난치성 췌장암 치료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40년 만에 등장한 췌장암 게임체인저레볼루션 메디신(Revolution Medicines)가 경구용으로 개발한 라손큐는 약 40여 년 간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꼽혀온 범RAS(pan-RAS) 억제에 도전한 치료제다. RAS는 세포 증식을 조절하는 일종의 '스위치'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변이가 발생하면 세포가 무분별하게 증식하면서 암을 유발한다.특히 췌장암(췌관선암종, PDAC)은 90% 이상이 KRAS 유전자 변이에 의해 발생하지만, 표면이 매끄럽고 작은 구조적 특성 때문에 약물이 결합할 부위를 찾기 어려워 그동안 특정 변이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약물 개발에 머물러 있었다.레볼루션 메디신 안나 베르켄블리트(Anna Berkenblit) 최고과학·의학책임자(CSO)는 "이번 라손큐의 FDA 허가는 수십 년간 의학계의 미답지로 남아있던 RAS 변이 표적 치료 분야에 있어 역사적인 이정표"라며 "환자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혁신적인 치료 옵션을 제공하게 되어 뜻깊다"고 강조했다.ASCO 2026에서 레볼루션 메디신의 '라손큐' 글로벌 임상 3상인 'RASolute 302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AI 생성 이미지)실제로 이번 허가의 근거가 된 글로벌 임상 3상 RASolute 302 연구 결과는 임상 현장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501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연구에서 라손큐 투여군의 전체 생존 기간 중앙값(mOS)은 13.2개월을 기록했다. 이는 연구자가 선택한 기존 표준 화학요법군의 6.7개월과 비교해 생존 기간을 약 2배 늘렸으며, 사망 위험을 60%나 감소시킨 수치다.무진행 생존 기간 중앙값(mPFS) 역시 라손큐군이 7.2개월을 기록해 대조군(3.6개월) 대비 질병 진행 위험을 대폭 낮췄으며, 객관적 반응률(ORR) 또한 30%를 기록해 기존 항암 치료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안전성 프로파일 측면에서도 3등급 이상의 치료 관련 이상반응 발생률은 라손큐군이 43.6%로 대조군(57.5%)보다 낮았고, 환자들의 전반적인 통증 악화 시점을 유의미하게 지연시켰다. 다만, 가장 흔하게 보고된 피부 발진(86.3%) 등에 대해서는 의료진의 철저한 모니터링과 국소 치료 등 적극적인 관리가 요구된다.책임 연구자인 하버드의대 브라이언 M. 울핀 박사는 "라손큐는 이미 한 가지 이상의 전신 치료를 받은 전이성 췌장암 성인 환자에게 새로운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그는 "수십 년 동안 RAS가 췌장암의 주요 원인 인자이자 잠재적인 약물 표적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은 이 공격적인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주로 정맥 내 세포독성 항암화학요법에 의존해 왔는데, 이번 승인은 전이성 췌장암 환자 치료에 절실히 필요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효과는 고무적이지만, 안착까지 과제 산적"라손큐의 이 같은 글로벌 허가 소식에 국내 임상 현장의 관심도 최고조에 달해 있다.특히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라손큐 관련 임상시험(1차·2차 및 병용요법 등)이 활발히 진행 중인 가운데,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난치성 췌장암 환우들을 위한 해당 신약의 조기 도입과 신속한 국내 허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환자 가족들과 환우 단체들을 중심으로 관련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면서 진료실에서도 이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이 가운데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초대형병원 6곳에서 전이성 췌장암 1차 치료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 RASolute 303 연구가 진행 중이다. 레볼루션 메디신 전이성 췌장암 신약 '라손큐' 글로벌 임상 3상 RASolute 302 연구 주요 결과.식약처 승인 등을 통해 확인된 'RASolute 303' 연구, 즉 전이성 췌장 선암종 환자의 1차 치료로서 라손큐 단독요법 또는 라손큐와 젬시타빈(Gemcitabine) 및 냅-파클리탁셀(Gemcitabine/Nab-paclitaxel) 병용 요법을 기존 대조군(젬시타빈 및 냅-파클리탁셀)과 비교하는 제3상 글로벌, 다기관, 공개라벨, 무작위배정, 3개군 시험이 국내 임상 현장에서도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다.이를 두고 한 수도권 대형병원 교수는 "컨디션이 좋은 일부 환자들이 대형병원 임상에 진입해 기회를 얻고 있지만, 약물 투여 순서나 기존 표준치료와의 우열 등 임상적으로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변수들이 존재한다"며 "환자나 가족들의 기대가 매우 크지만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행운이 따르는 것은 아니므로 무조건적인 환상보다는 면밀한 임상적 유효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또 다른 상급종합병원 종양내과 교수 역시 "미국은 췌장암 환자 풀이 넓어 개발사가 배정한 초기 임상 물량을 자국 내에서 신속하게 소화한다"며 "반면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는 1차 치료 조건 등 환자 등록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연구 위주로 넘어오는 경향이 있어 국내 환자들의 임상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자연스럽게 임상 현장에서는 FDA에서 라손큐가 허가됐지만 국내 환자들이 이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선 과제가 산적하다는 진단이다.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는 것이 약가다. 참고로 라손큐 허가와 함께 알려진 미국 현지 공급 가격은 30일 공급 기준 약 3만 9800달러(한화 약 5500만원)로 책정됐다. 1년 동안 지속해서 투약할 경우 약값만 5억원을 훌쩍 넘는(약 47만 8000달러, 약 6억원 이상) 금액이 소요되는 구조다.회사는 환자들의 경제적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환자 지원 프로그램인 '(ON)Path'를 가동한다는 방침이다.건강보험 일산병원 박병규 교수(소화기내과)는 "현재 국내 임상 현장에서는 췌장암 치료 시 가장 먼저 폴피리록스(FOLFIRINOX)나 젬시타빈·냅-파클리탁셀 같은 세포독성 항암제를 1차 치료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며 "1차가 안 되면 2차로 젬시타빈 기반의 젬시타빈-아브락산이나 젬시타빈 계열, 혹은 오니바이드(이리노테칸 리포좀 주사제) 등을 루틴하게 활용하고, 컨디션이 좋은 환자들은 3차 치료까지 이어가는 체계로 운용된다"고 설명했다.박 교수는 "새로 나오는 표적 신약들이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뚜렷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완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특히 미국에서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초고가로 출시된 만큼, 향후 국내에 안착해 건강보험 급여권으로 진입하기까지는 엄청난 가격 협상 난관과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