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청구 누명, 후배들까지 당하게 둘 순 없었다"

안창욱
발행날짜: 2012-01-03 06:26:53
  • 메디칼타임즈의 약속② "사건의 이면을 파헤칩니다"

2011년 11월 24일.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의료계와 건강보험공단에 큰 파장을 몰고 올 판결을 선고했다.

건강검진 당일 의사가 검진과 무관한 진료를 했다면 공단이 해당 진찰료를 환수한 것이 위법이라는 판결이었다.

메디칼타임즈가 이 판결을 처음으로 보도하자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의협은 그간 공단이 환수해 간 진찰료를 즉각 반환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소아청소년과에 이어 산부인과까지 건강검진 당일 공단이 환수해 간 진찰료를 되돌려받기 위해 현재 행정소송을 준비중이다.

이번 판결의 진원지는 서울 장안동에 개원한 해수산부인과 이정수 원장.

이 원장은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산부인과 전문의다.

이 원장은 1985년 7월 부천 세종병원 산부인과 과장으로 재임할 당시 새벽에 응급 제왕절개수술을 하기 위해 앰블런스를 타고 급히 병원으로 가다가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원장은 그 후유증으로 분만을 접었고, 1993년 1월 해수산부인과를 개원했다.

그러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8년 2월 25일 현재의 건물로 옮겨왔다.

이 원장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자궁경부암 검진을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이 원장은 "전문의가 제대로 검진 하면 오진율을 낮출 수 있고, 단골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 의원 경영에도 도움이 되겠다 생각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암검진 기관 신청을 하자 공단 직원이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온라인 검진료 신청 메뉴얼을 전달하고 갔다.

그런데 2년여가 지난 2010년 4월 진찰료 521만원을 환수하겠다는 처분서가 날라왔다.

이 원장이 2008년 4월부터 12월까지 463명에게 자궁경부암 건강검진을 하면서 진찰료를 부당청구했다는 것이었다.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 세부사항 중 건강검진 실시 당일 진찰료 산정방법 위반에 따른 처분이었다.

고시에 따르면 동일한 의사가 검진 이외에 별도의 진찰이나 처방전 발행, 주사 등의 진찰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검진에 포함된 진찰료 이외에 별도의 진찰료를 산정할 수 없다.

검진 당일 동일한 의사가 검진 결과에 따라 진찰행위를 하는 것은 진료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별도의 진찰료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환수처분 통보를 받은 이 원장은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욕감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원장은 "2008년 공단 직원이 방문했을 당시 검진 당일 별도의 진찰료를 청구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질타했다.

더 화가 난 것은 왜 2년 동안 관련 고시를 안내하거나 경고도 하지 않다가 느닷없이 뒤통수를 치느냐는 점이었다.

이 원장은 "만약 공단이 검진을 시작한 초기에 이런 고시를 알려줬다면 금전적으로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무료 암검진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시 의료기관이 무료 암검진을 하면 공단으로부터 5천원을 받았다.

하지만 일반수가로 암검진을 하면 환자들이 1만 5천원 전액 부담했기 굳이 국가 암검진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원장은 고시 자체를 납득할 수 없었다.

이 원장은 "작은 동네의원에 누가 암검진을 받기 위해 내원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산부인과 질환으로 불편해 내원했다가 암검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의원에 온 김에 검진을 받는 게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이 원장은 엄연히 암검진과 별도의 진료를 했는데 해당 진찰료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원장은 "환수처분서를 받고 처음에는 그냥 참고 넘어가자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 했을 뿐인데 부당청구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살 수는 없었다.

이 원장은 이런 불합리한 고시를 개선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먼저 공단에 이의신청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의신청이 기각됐다.

복지부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했고,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넣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당시 전재희 복지부장관에게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이 원장은 "공권력은 모두 결속돼 있었고 냉담한 반응 뿐이었다"고 꼬집었다.

동료 의사들도 이 원장에게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거나 편법으로 하라고 권했다.

다시 말해 일반 진료를 한 후 몇 일 뒤 암검진을 받으러 오도록 하라는 식이었다. 심지어 왜 바보처럼 검진 당일 일반진료를 하느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같은 날 암검진을 병행하더라도 삭감 당하지 않으려면 다른 날 검진을 한 것처럼 청구하라고 조언해 주는 동료도 있었다고 한다.

이 원장은 채 1분이 소요되지 않는 암검진인데, 진료비 삭감을 피하기 위해 환자를 두 번 내원하게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허위청구해야 하는 현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암검진 지정서를 보건소에 반납했다.

그리고 그해 5월 서울행정법원에 환수처분 취소 소송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이 원장은 "의사들은 공권력에 의해 터무니 없이 당하고 있지만 워낙 바쁘고, 혹시 보복이라도 당하는 게 아닐까 싶어 참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의원 문을 닫을 각오로 소송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에게는 든든한 원군이 있었다. 바로 이 원장의 남편인 '해수 소중한 아이 정신과' 장경준 원장이다.

장 원장은 억울하다고 분통을 터뜨리리는 아내를 보다 못해 소송을 주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이 원장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 원장은 1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했고, 서울고법은 올해 6월 1심 판결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공단의 환수가 위법하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검진 당일 별도의 진찰료를 청구할 수 없는 경우는 기존 질병 또는 다른 질병에 대한 진료행위가 검진 결과에 따라 이뤄졌거나 검진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와 연계됐을 때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단이 고시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환수했다는 판단인 것이다.

대법원은 검진 당일 동일 의사에 의해 이뤄진 모든 진료에 대해 진찰료를 지급하지 않고 검진 진찰료만 지급하면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환기시켰다.

재판부는 "이렇게 되면 의료기관으로서는 검진을 권유하지 않거나 다른 질병에 대한 진료를 포기하거나 검진일 이외의 날에 다른 질병에 대한 진료를 받도록 권유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이정수 원장은 2011년 12월 중순 취재에 응하면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미국의 화가 조지 투커의 'Corporate decision'이라는 그림이었다.

이 원장의 말이다.

이어 이 원장은 "현대 의료는 의사와 환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제3의 단체, 우리나라로 치면 심평원과 공단에 해당되는 단체가 진료를 좌지우지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정수 원장은 "나는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의사일 뿐이다"면서 "그런데 공단 눈치를 보면서 진료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마지막으로 이 원장은 "후배의사들이 대한민국 의료를 전세계에 알리고, 발전시키려면 이런 식의 제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선배들이 병원 문을 닫더라도 싸울 건 싸워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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