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가 "경증질환 약제비 차등제 실익 전혀 없다"

발행날짜: 2012-06-12 06:40:51
  • 상급종합병원 환자 이동효과 의문…"일차의료 활성화 실패"

지난해 10월부터 정부가 시행중인 경증질환 약제비 차등제와 관련해 표면적으로는 일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일선 병의원에선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메디칼타임즈>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요청한 경증질환 본인부담금 종별 총 진료비 추이(2010년 4분기 대비 2011년 4분기)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의 총 진료비는 감소한 반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비는 증가했다.

주목할 것은 상급종합병원 고혈압 총 진료비는 2010년 4분기 대비 2011년 동 기간 57.2%로 크게 줄고, 외이도염과 당뇨병 총 진료비는 각각 45.4%, 11.2% 감소했지만 의원급 환자는 그만큼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고혈압 총진료비는 6.1%, 외이도염은 6.4% 증가한데 머물렀으며 당뇨병 총진료비가 330억 9375만원에서 368억 6380만원으로 1년 같은 기간 대비 11.4% 늘어난 데 그쳤다.

상급종합병원 고혈압 진료비 및 청구건수는 크게 줄었지만 의원급으로 환자가 유입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상급종합병원에서 60%에 육박하는 고혈압 환자는 어디로 유입된 것일까. 또 약제비 차등제는 당초 시행 취지에 부합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경증질환 약제비 차등제의 의도는 의료기관 기능재정립과 1차의료 활성화였는데, 1차의료 활성화는 이뤄지지 않았고 의료기관 기능재정립 과정에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수치상으로만 환자 이동…의료현장에선 "글쎄"

먼저 약제비 차등제로 환자 유입을 예상했던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환자 증가에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개원내과의사회 관계자는 "고혈압, 당뇨 환자에 대한 자연증가율이 최소한 3~4%인데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고혈압, 당뇨환자의 평균 청구건수 증가율은 4.5%에 불과하다"면서 "결과적으로 약제비 차등제 효과가 전혀 없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이는 복지부가 경증질환 약제비 차등제를 기획할 때 약제비 본인부담률을 병원급과 의원급 의료기관을 동일하게 30%를 책정한 것부터 문제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본인부담률 책정 기준부터 허점이 있었다"면서 "결과적으로 이번 제도의 최대 수혜자는 병원급 의료기관이며 이는 제도 시행 전부터 예고된 것"이라는 못 박았다.

개원내과의사회 관계자는 "병의원 의료기관이 환자 본인부담률 30%로 동일하기 때문에 한국 환자의 특성상 의원보다는 병원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제도를 수정해 의원과 병원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률 격차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수치상으로만 보면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비와 청구건수가 감소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소득 없는 제도라는 얘기다.

"고혈압, 청구코드 변경…당뇨환자 병원으로 유입"

본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이는 경증질환 약제비 차등제의 대표 질환은 당뇨병과 고혈압 환자의 이동 경로를 별도로 추적해보면 그 문제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고혈압 환자의 경우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총 청구건수가 58.3%, 32.3%로 크게 감소했지만, 병원급 및 의원급 의료기관의 총 청구건수는 각각 8.2%, 3.1% 줄어든 데 그쳤다.

종합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 환자들이 병의원으로 유입되지 않고 새고 있다는 것이다.

A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약제비 차등제가 시행됐지만 기존에 중증 환자를 보낼 수 없어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진단 코드명을 변경해 처방하는 사례가 일부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현재 약제비 차등제에 해당하는 고혈압 질병 코드는 i10.0, i10.9 두 가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i20.0 등 다른 코드로 전환해 처방을 내림으로써 수치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고혈압 환자가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에 머물러 있다"고 덧붙였다.

즉, 수치상에서는 약제비 차등제의 효과로 종합병원급 고혈압 환자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당뇨병의 경우 환자 수가 감소하긴 했지만 정부 의도와는 달리 일차의료를 활성화 했다기 보다는 병원급 의료기관에 환자가 쏠리는 결과만 낳았다.

상급종병 당뇨병 환자의 경우 2010년 4분기 대비 1년 후 총 청구건수는 7.5%, 종합병원은 10.5%로 소폭 감소한 데 그쳤다.

게다가 이마저도 병원급으로 쏠렸다. 병원급 당뇨병 환자의 청구건수는 2010년 4분기 대비 2011년 동기간 24% 증가했지만 의원급 의료기관은 6.3%로 낮았다.

심지어 B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일부 대학병원 중에는 약제비 차등제 시행 이후 구환 재진 환자가 어느 정도 정리됐지만, 그동안 밀려있던 신환 예약이 이뤄지면서 오히려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 곳도 있다"고 털어놨다.

당뇨병학회 관계자는 "제도 시행 전에 조사한 결과 상급종합병원 당뇨환자의 30%가 이동하고 70%가 그대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변화가 있긴 하지만 예상치에는 미치지 못했다"면서 "의료 현장에서도 변화를 체감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상급종합병원 부작용 환자 우려…"환자 부작용 조짐"

더 큰 문제는 약제비 차등제 시행 이후 벌써부터 부작용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C대학병원 교수는 최근 들어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이동했다가 증상이 악화돼 돌아온 환자 사례가 늘고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당뇨병을 만성질환으로 통칭할 문제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무시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도 중증 당뇨환자 진료가 늘어나면 갑자기 약제비 비중이 상승해 건당 진료비가 증가하기 때문에 심평원의 타깃이 될 수 있어 부담스러워 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D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정부가 당뇨병 환자를 대형 의료기관만 선호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감기환자 취급함에 따라 합병증, 입원율, 사망률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면서 "일부 취지는 좋았지만 재조정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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