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임의비급여=부당청구' 판례 폐기…3대 예외조건 제시
"여의도성모병원은 지난 5년 6개월간 오해와 질타를 받았다. 대법원이 임의비급여의 의학적 타당성을 인정해 준 점에 대해 감사드린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문정일 병원장의 말이다.
18일 오후 1시 20분.
가톨릭중앙의료원 관계자들을 태운 셔틀버스가 대법원으로 들어섰다. 이날 오후 2시 여의도성모병원 임의비급여사건 확정판결을 직접 듣기 위해서다.
성모병원은 2006년 12월 백혈병환우회가 임의비급여 실태를 폭로한데 이어 복지부로부터 141억원 과징금 처분, 공단으로부터 28억원 환수처분을 받으면서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
문정일 병원장을 포함해 조혈모세포이식센터 김학기, 조석구 교수 등 20여명이 버스에서 내렸다.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1심, 2심 재판부가 복지부와 공단의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함에 따라 내심 이들의 상고가 기각되길 기대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건강보험공단에 대한 부분 중 선택진료비 부당이득징수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선고했다.
선택진료비는 부당청구로 볼 수 없으며, 이를 제외한 나머지 의비급여에 대해서는 고법에서 다시 다투라는 것이다.
이어 대법원은 "피고 건강보험공단의 나머지 상고와 피고 보건복지부장관의 상고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여의도성모병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판결이었지만 대법원은 임의비급여를 무조건 불법행위로 간주하던 기존 판례를 폐기했다.
대법원은 "임의비급여 진료행위는 원칙적으로 건강보험법에서 규정한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가입자 등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받거나 가입자 등에게 이를 부담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못 박았다.
이어 대법원은 "다른 한편으로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다할 의무가 있고, 의료의 질 향상과 병원 감염을 예방하는 등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고 환기시켰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요양기관이 국민건강보험의 틀 밖에서 임의로 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고 환자에게 진료비를 부담하게 했다 하더라도 부당청구로 볼 수 없는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대법원 "임의비급여 부당청구 예외 인정"
▲건강보험 틀을 회피했다고 보기 어려운 시급성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 의학적 필요성 ▲임의비급여 내용과 비용에 대한 설명과 동의를 받았다면 부당청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임의비급여 예외를 인정하지 아니한 이전의 대법원 판결들은 이번 판결의 견해와 저촉되는 범위에서 이를 모두 변경한다"고 밝혔다.
임의비급여에 대해서는 무조건 부당청구로 간주한 기존 대법원 판례가 폐기되는 순간이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진료지원과 선택진료 여부를 주진료과 의사에게 포괄위임한 것에 대해서는 부당청구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선택진료비를 제외한 보험급여 대상 진료비, 요양급여비용에 포함된 치료재료 비용, 식약청 허가사항 초과 약제 등의 임의비급여에 대해서는 서울고법에서 다시 심리하라고 파기 환송했다.
임의비급여의 불가피성, 의학적 타당성, 환자 동의 여부를 여의도성모병원이 입증해야 하는데 서울고법은 복지부와 공단 처분 전부가 위법하다는 취지로 판결해 법리를 오해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의료기관이 임의로 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고 그 비용을 가입자 등으로부터 지급받더라도 그것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는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측인 의료기관이 증명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여의도성모병원이 서울고법에서 임의비급여의 3대 예외조건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의도성모병원은 수십만건에 달라는 임의비급여 개별 사례별로 의학적 타당성과 시급성 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임의비급여 부당청구액 환수액과 과징금 규모도 서울고법 판결 이후 복지부가 재산정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요양기관이 건강보험의 틀 밖에서 임의로 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고 그 비용을 환자 측으로부터 수수한 행위를 예외 없이 부당하다고 보았던 종례의 판례를 변경해 예외적으로 부당하지 않다고 볼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기존 건강보험 체계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요양기관이 의료현장에서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의무를 다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의 틀을 벗어나 진료하고 그 비용을 환자로부터 수수한 것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취지"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판결 선고 직후 문정일 병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여의도성모병원 임의비급여의 의학적 타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임의비급여사건으로 인해 그간 오해와 질타를 받아왔지만 도덕성을 인정받았다"면서 "복지부 상고를 기각해준 대법원에 감사하고 판결을 존중하겠다"면서 "고법으로 돌아가 의학적 타당성을 입증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