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비급여, 승자도 패자도 없다…제도개선이 중요"

안창욱
발행날짜: 2012-06-25 06:26:11
  • 여의도성모병원 문정일 원장 "가톨릭정신 인정받은 게 얻은 것"

"대법원의 임의비급여 판결은 의료계의 손을 들어준 것도, 복지부가 이긴 것도 아니다. 제도를 개선하라는 메시지다."

문정일 병원장은 앞으로 임의비급여 제도를 개선하는데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문정일 병원장은 최근 <메디칼타임즈>와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여러 차례 이를 강조했다.

지난 18일 대법원은 여의도성모병원의 임의비급여사건에 대해 선고하면서 새로운 판례를 남겼다.

대법원은 '임의비급여는 부당청구'라는 기존 판례를 폐기하고 ▲진료의 불가피성 ▲의학적 타당성 ▲환자 동의 등 3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환자로부터 비용을 징수할 수 있다고 확정 판결했다.

의사들이 건강보험의 틀을 벗어나 예외적으로 임의비급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는 판례다.

문정일 병원장은 무려 5년 6개월간 임의비급여 사건에 휘말리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의도성모병원은 가톨릭의 도덕성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소송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임의비급여사건이 촉발된 후 우리는 스스로가 정당한지 질문했고, 환자 생명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소송을 한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이어 그는 "우리가 얻은 게 있다면 환자 생명이 우선이라는 것을 대법원이 인정했다는 것"이라면서 "가톨릭이 설립한 의료기관의 존재 이유를 확고히 지켰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의비급여사건이 기사화되면서 많은 오해와 질타를 받았고, 도덕성이 추락했다"면서 "정말 잃은 게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고 해서 지난 세월의 상처가 회복될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여의도성모병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사실상 임의비급여의 예외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승리라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는 외부의 평가와 달리 대법원이 여의도성모병원의 손을 들어준 게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법원이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했다"면서 "임의비급여 판결은 의료계의 승리도, 복지부의 승리도 아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대법원은 의사들이 임의비급여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함부로 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남겼다"면서 "다시 말해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복지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제도를 개선하라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의도성모병원은 대법원 판결 직후 진료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입증받았다는 내용의 전단을 제작, 병원에 게시했다
임의비급여 진료의 불가피성, 의학적 타당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문 병원장은 "대법원이 명시한 단어를 정의하고, 이에 따른 기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 "복지부나 의료계가 대법원의 판결을 임의로 해석할 수 없도록 의학적 판단 기준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료계도, 복지부도 대법원 판결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것이고, 소모적인 법정소송만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의도성모병원과 복지부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임의비급여를 인정하면서도 서울고법에서 어떤 항목이 이런 3가지 기준에 해당하는지 다시 심리하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의도성모병원과 복지부, 공단은 수십만건에 달하는 임의비급여 항목 가운데 3대 예외조건에 해당하는 것을 가려내야 할 상황이다.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지루한 법정싸움을 다시 해야 최종 부당금액을 산정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문 병원장은 "현재 3가지 예외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데 서울고법에서 다시 다투고,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현재 의료계 일부에서는 복지부와 여의도성모병원 모두 소송을 취하하고, 양쪽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부당청구 금액을 산정하는 선에서 법정싸움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대법원이 임의비급여의 예외성을 인정한 상황에서 부당청구액을 재산정하는 것보다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해 의정이 제도를 개선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도 7월부터 의료단체·환자단체 및 전문학계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문 병원장은 "우리는 임의비급여 예외에 해당하는 의학적 타당성과 유효성 기준을 마련하는데 완벽히 협조할 것"이라면서 "의료계도 자율성을 확대해석해 방종하면 안된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인정받은 것 하나만 해도 감사한 일이지만 국민들은 임의비급여가 남용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면서 "복지부와 의료계가 국민들을 안심시키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와 함께 그는 이번 임의비급여 판결을 계기로 의료계가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강보험 틀 안에서 급여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하고 있다"면서 "국민 생명권과 직결된 보험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복지부를 만나 진솔하게 설득했는지 되돌아 봐야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임의비급여의 예외성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의사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절대 안된다"면서 "건강보험 틀 안에서 중증환자들이 돈이 없어 사망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여의도성모병원은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가톨릭 의료기관의 도덕성을 회복한 만큼 환자들과의 모든 임의비급여 소송을 취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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