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전문의 당직 편법 속출 "수련의 희생양"

발행날짜: 2012-08-06 12:36:08
  • 레지던트 응급실 파견해 온콜 차단…"환자 오히려 피해볼 것"

|초점| 응급의료법 시행에 따른 의료계 파장

의료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5일, 응급의료법이 시행됐다. 보건복지부는 당직전문의 온콜 시스템에 대한 행정처분을 3개월 유예한다고 밝혔지만, 이에 따른 병원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메디칼타임즈>는 응급의료법 시행 이후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 짚어봤다. <편집자주>
보건복지부가 응급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보완해 응급의료법을 개정, 지난 5일부터 시행에 나섰지만 병원계는 우려 섞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정부의 취지와는 달리 상당수 의료기관들이 편법을 사용해 응급의료법을 무력화하거나 애꿎은 펠로우, 전공의들의 업무 강도만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법망을 피해간 편법, 전공의 업무강도 높여"

특히 응급의료법 개정에 불만인 의료기관들이 편법적으로 법망을 피해 기존의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할 경우 기존 응급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는커녕 한발 퇴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본 기사내용과 무관함
지방의 A대학병원은 지난 3일, 긴급 교수 회의를 열고 응급의료법 시행에 따른 편법을 제시하는 등 법 위반에 따른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을 공유했다.

내용인 즉, 전공의를 응급실로 파견해 기존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하는 것.

응급의료법 개정 이전에는 응급실 당직의사가 필요한 경우 각 진료과 전공의에게 연락해 진료가 가능했지만 개정된 응급의료법은 야간에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에게만 콜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사실 과거에도 중증응급 환자인 경우엔 전문의에게 콜하고, 그 밖에 상당수 응급환자는 전공의가 잘 커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정된 법대로라면 앞으로는 모든 콜을 전문의가 받아야한다는 얘기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병원계의 우려다.

상황이 이쯤되자 각 병원들은 법망을 피하면서 과거의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편법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B대학병원은 이미 상당수 레지던트를 응급실로 파견조치 했다. 전공의 인력이 부족한 C대학병원은 응급실 파견 대신 응급실 근무명령만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당 과 레지던트가 야간 응급실에서 상주하도록 해 교수들에게 가급적 온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근무명령은 병동도 보면서 필요할 때 응급실로 지원을 나가는 식이지만, 응급실로 파견조치하면 병동에서 근무할 인력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전공의들은 법 시행 이전보다 근무강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B대학병원 관계자는 "오히려 지금은 잘 버티고 있었는데 법 시행 이후로는 문제가 더 커졌다"면서 "응급실로 전공의를 파견하면, 병실을 지켜야하는 전공의 수가 부족해 과부화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응급환자 중 일부는 입원 명령을 내려 레지던트가 진료할 수 있도록 하는 편법도 예상된다. 응급환자에 대한 입원 명령이 남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는 응급실 내 응급환자에 대해서만 법이 적용된다는 응급의료법의 허점을 노린 것.

응급 환자로 구분되면 응급의료법에 의해 당직 전문의에게만 콜을 할 수 있지만, 입원환자로 구분되면 해당과 전공의가 진료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처럼 진료하면 된다. 이 역시 전공의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A병원 관계자는 "복지부는 편법만 양산하는 법을 내놨다"면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법은 대형 의료사고를 내거나 무력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응급의료법 시행, 오히려 응급의료체계 빨간불

더 큰 문제는 법 시행에 따라 응급의료체계를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 의료기관이 편법적으로 법망을 피해가겠지만 역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본 기사내용과 무관함
당장 대형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언제라도 사직서를 낼 준비가 돼있다"면서 벼르고 있고, 중소병원들은 지역 응급의료기관을 반납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고 하소연하면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게다가 행정처분을 우려한 중소병원들은 대형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사례가 급증해 대형병원의 응급실 과밀화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조짐이다.

중소병원들 사이에선 "응급실을 떠돌다가 환자를 놓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C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오히려 콜을 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과거엔 필요하면 연락을 취해서 자문을 구하고 도움을 받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자칫하면 해당 의료진은 면허가 정지되고, 병원은 200만원의 벌금을 지불하게 됐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연락할 수 있겠느냐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전화통화를 통해 커뮤니케이션만 하면 그만인 것과, 콜 하면 무조건 전문의가 나와야 하는 상황은 큰 차이가 있다"면서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콜을 아끼게 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다시 말해, 정부는 보완대책을 내놨다고 생각하겠지만 병원계가 볼 때에는 오히려 역효과만 낳아 응급의료체계에 더 큰 구멍이 생겼다는 얘기다.

D국립대병원 관계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응급상황에서 해당 전문의에게 온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시행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병원들은 응급실에 오면 24시간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오인해 환자 민원이 급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응급의료체계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의사-환자간에 라포르도 깨질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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