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당직, 응급의료 편법만 키울 것"

발행날짜: 2012-08-20 06:28:06
  •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

최근 시행된 개정 응급의료법과 관련해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혈액종양내과)는 칼럼 등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대안으로 호스피탈리스트(Hospitallist) 도입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호스피탈리스트란 어떤 것일까. 실제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 적합할까. 최근 그를 직접 만나 들어봤다.

허대석 교수
허대석 교수는 "복지부가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응급실 당직만 손대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오히려 편법만 키울 뿐"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당장 시급한 것은 응급실 환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내과계 환자에 대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치료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응급의료법 개정 이전에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한 달간 미국 연수를 계획하고 있었다.

평소 응급실에서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는 환자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문제의 해답을 호스피탈리스트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1996년부터 호스피탈리스트가 있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활성화 된 것은 2003년 일명 '리비 시온법(Libby Zion law)'이 제정되면서부터다.

1984년, 여대생 '리비 시온'이 고열로 야간에 응급실을 내원했다가 인턴의 실수로 병용처방 금기 약물을 복용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당시 인턴은 18시간 이상 근무한 상태로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밝혀졌고, 그 후 전공의들의 근무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공론화됐다.

이후 전공의 주 80시간 이상, 24시간 연속 근무를 금지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문제는 법이 시행된 이후, 전공의 인력으로 땜질해왔던 부분에 공백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응급실 내 상당수 비중을 차지하는 내과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그 대안으로 호스피탈리스트가 부각되기에 이른 것이다.

허 교수는 "2003년 법 시행 이후 당장 전공의 인력에 대한 공백이 발생해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호스피탈리스트를 활성화 한 것"이라면서 "우리나라 또한 응급의료법을 개정과 맞물려 새롭게 시도해 볼만 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호스피탈리스트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는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 중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도맡아 치료하고, 필요한 경우 인근 병원으로 전원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또한 호스피탈리스트 중 야간 근무를 담당하는 녹터니스트(Nocturnist)들은 야간에 응급실을 찾는 환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내과계 응급환자를 커버한다.

허 교수는 "지금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응급실로 들어오는 모든 환자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사각지대가 생기고, 진료 효율이 떨어진다"면서 "호스피탈리스트가 입원이 요구되는 응급 환자를 맡으면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외상환자나 약물중독환자 등 응급조치가 필요한 환자에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호스피탈리스트 시스템이 우리나라 의료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

그는 미국의 제도를 100% 그대로 가져올 순 없지만 제한적으로 적용함으로서 응급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고 봤다.

허 교수는 먼저 응급실 사각지대에 있는 응급실 복도에서 방치되고 있는 환자와 노인환자, 말기암환자 등 복합질환자에 대한 치료에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응급의료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응급실이 입원실을 배정받지 못한 환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17일 현재 서울대병원 응급실에는 총 70여명의 환자가 있고, 이중 상당수는 내과 질환의 환자인데 내과 당직 의사 홀로 맡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만약 호스피탈리스트 인력이 투입된다면 입원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에 대해 적극적인 치료가 가능해진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미 미국에선 호스피탈리스트가 응급실 내 방치된 환자를 도맡아 치료한 결과 병상회전율이 크게 상승했다는 보고서가 발표됐다"면서 "이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나 세부전문의와 충돌할 이유도 없는 것으로 충분히 적용할 만하다"고 했다.

즉, 응급실 복도에 방치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치료가 어려워져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이는 입원실 공간이 부족해지는 악순환을 낳는 반면 신속하고 집중적인 치료를 받으면 회복이 빨라 입원기간이 단축되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병상회전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노인환자나 말기암환자 등 복합질환을 지닌 환자의 치료도 호스피탈리스트에게 맡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노인환자나 말기암환자는 토탈케어가 필요한 환자로 호스피탈리스트가 진료하는 게 적절하다"면서 "자칫 응급실 복도에서 방치될 수 있는 환자를 전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구멍 난 응급의료체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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