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얼개원스토리-7편]승승장구 하던 선배 개원의 충고
"대학병원 시스템이 질병 치료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치료의 중심은 특정 검사나 시스템보다는 환자와의 대화에 있다는 것을 배웠다."
지난 1999년 대학병원에서 소아 내분비질환을 치료하던 고시환 원장(50)은 운동처방사, 영양사 등을 모두 데리고 나와서 개원했다.
당시만 해도 개원가에서 운동처방사와 영양사까지 두는 곳은 많지 않았던 터라 주목을 받았고, 성장가도를 달리며 네트워크병의원으로 키웠다.
또한 영양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홈메이드 배달 이유식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처럼 한때 전국 20여곳의 네트워크병의원의 대표원장이자 CEO로 활동했던 고 원장은 이제 30평 남짓 규모의 성장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네트워크병의원이 아닐 뿐더러 검사 장비라곤 청진기밖에 없지만 그는 "환자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의료장비와 검사수치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서 진료를 할 수 있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15년차 개원의가 들려주는 개원 스토리
이영훈 공보의(가명, 34)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개원 8년차 선배 개원의의 정신적 멘토를 함께 만났다.
이 공보의에게는 까마득한 선배였지만, 그가 개원 이후 겪은 경험들이 이제 막 개원시장에 발을 딛으려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 원장의 여유로움에서 잠시나마 개원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고시환 원장의 개원 스토리로 돌아가 보자.
네트워크병의원 대표원장으로서 모든 게 완벽했던 순간, 그는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수년간 정성을 다했던 사업도 병원도 접었고 한국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온라인 상에서 구설수에 오르면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에는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수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해 갑자기 장모가 돌아가시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루에 30명만 진료했다. 홈메이드 이유식 사업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이 있듯이 '사업은 사업가가 해야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던 기질 때문일까? 2년 전 경기도 광주시로 이사를 하면서 직장인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직접 재배한 채소를 이용한 샐러드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양학에 관심이 많은 의사로서 바른 음식들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사업성은 없지만 영양학에 관심이 많은 의사로서 마냥 즐겁단다. 도시락 배달은 하루 30~50명 정도.
고 원장이 매일 새벽마다 직접 텃밭에서 채소를 수확하고 담당 영양사와 조리사가 도시락을 만들어 필요로 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배달해준다. 수량도 많지 않고 수익도 별로 없지만 고 원장은 이를 '힐링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잘 나가던 시절 친구들이 말하길 내 얼굴에 독기가 있었다고 하더라. 그땐 정말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만약 네트워크병의원을 운영했다면 더욱 핍박해져서 이상한 사람이 돼 있을 것 같다"고 환기시켰다.
그는 이어 "요즘에는 혈액검사, 엑스레이 촬영 등 모든 검사를 주변 병원으로 보낸다. 이것저것 안하니까 속 편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경쟁하면 그 뿐이다"고 했다.
개원의, 30대부터 60대까지 똑같은 고민
당장 개원이 걱정인 이영훈 공보의는 진료 이외에 끊임없이 다양한 것을 시도하는 고 원장이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고 원장은 우리나라의 개원시장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학창시절 날고뛰던 학생들이 의사면허를 받는 순간 생각의 틀에 갇혀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했다.
"30대 개원의와 40대, 50대, 60대 개원의들이 생각하는 게 똑같다는 것이다. 다들 어떻게 하면 환자가 늘어날 것인가를 고민한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행복한 개원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의사들 왜 똑같은 진료만 해야하지?"
고시환 원장은 여느 소아청소년과와 달리 영양학을 접목한 성장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환자의 식습관을 개선해주고 필요한 경우 영양제를 처방해준다.
자연스럽게 환자 상담시간은 길어지고,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는 적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병원에서 영양제를 처방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의사라고 왜 똑같은 진료를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는 "영양학은 자칫하면 약장사가 된다. 영양제 처방건수만 늘리려다 보면 환자도 거부감을 느껴 다신 오지 않는다"면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그가 영양제를 섭취해야 하는지 이해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영훈 공보의에게 개원가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요즘 개원의는 대학병원 뿐만 아니라 보건소와 경쟁해야 한다. 이처럼 치열함 속에서 생존하려다보니 의사가 테크니션의 기로에 서 있다. 의사 스스로 테크니션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직원을 가족처럼…병원이 잘 돌아간다
욕심을 버리면서 삶의 여유를 찾았다는 그는 병원 직원들도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다.
평소 고 원장과 친분이 있는 8년차 개원의는 "우연히 영양사 직원에게 들었는데 자신의 대학원 학비는 물론이고 자녀 유학비용까지 지원하고 있다고 하더라. 직원들이 장기근속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도 고 원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단한 건 아니다. 나 또한 그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답했다.
"얼마 전에는 직원 5명 중 한명이 그만 뒀는데 직원들이 충원할 필요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럼 직원 한명 분의 월급을 나눠서 지급하겠다고 했더니 더 열심히 일해주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지난 1999년 대학병원에서 소아 내분비질환을 치료하던 고시환 원장(50)은 운동처방사, 영양사 등을 모두 데리고 나와서 개원했다.
당시만 해도 개원가에서 운동처방사와 영양사까지 두는 곳은 많지 않았던 터라 주목을 받았고, 성장가도를 달리며 네트워크병의원으로 키웠다.
또한 영양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홈메이드 배달 이유식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처럼 한때 전국 20여곳의 네트워크병의원의 대표원장이자 CEO로 활동했던 고 원장은 이제 30평 남짓 규모의 성장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네트워크병의원이 아닐 뿐더러 검사 장비라곤 청진기밖에 없지만 그는 "환자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의료장비와 검사수치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서 진료를 할 수 있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15년차 개원의가 들려주는 개원 스토리
이영훈 공보의(가명, 34)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개원 8년차 선배 개원의의 정신적 멘토를 함께 만났다.
이 공보의에게는 까마득한 선배였지만, 그가 개원 이후 겪은 경험들이 이제 막 개원시장에 발을 딛으려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 원장의 여유로움에서 잠시나마 개원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고시환 원장의 개원 스토리로 돌아가 보자.
네트워크병의원 대표원장으로서 모든 게 완벽했던 순간, 그는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수년간 정성을 다했던 사업도 병원도 접었고 한국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온라인 상에서 구설수에 오르면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에는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수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해 갑자기 장모가 돌아가시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루에 30명만 진료했다. 홈메이드 이유식 사업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이 있듯이 '사업은 사업가가 해야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던 기질 때문일까? 2년 전 경기도 광주시로 이사를 하면서 직장인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직접 재배한 채소를 이용한 샐러드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양학에 관심이 많은 의사로서 바른 음식들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사업성은 없지만 영양학에 관심이 많은 의사로서 마냥 즐겁단다. 도시락 배달은 하루 30~50명 정도.
고 원장이 매일 새벽마다 직접 텃밭에서 채소를 수확하고 담당 영양사와 조리사가 도시락을 만들어 필요로 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배달해준다. 수량도 많지 않고 수익도 별로 없지만 고 원장은 이를 '힐링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잘 나가던 시절 친구들이 말하길 내 얼굴에 독기가 있었다고 하더라. 그땐 정말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만약 네트워크병의원을 운영했다면 더욱 핍박해져서 이상한 사람이 돼 있을 것 같다"고 환기시켰다.
그는 이어 "요즘에는 혈액검사, 엑스레이 촬영 등 모든 검사를 주변 병원으로 보낸다. 이것저것 안하니까 속 편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경쟁하면 그 뿐이다"고 했다.
개원의, 30대부터 60대까지 똑같은 고민
당장 개원이 걱정인 이영훈 공보의는 진료 이외에 끊임없이 다양한 것을 시도하는 고 원장이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고 원장은 우리나라의 개원시장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학창시절 날고뛰던 학생들이 의사면허를 받는 순간 생각의 틀에 갇혀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했다.
"30대 개원의와 40대, 50대, 60대 개원의들이 생각하는 게 똑같다는 것이다. 다들 어떻게 하면 환자가 늘어날 것인가를 고민한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행복한 개원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의사들 왜 똑같은 진료만 해야하지?"
고시환 원장은 여느 소아청소년과와 달리 영양학을 접목한 성장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환자의 식습관을 개선해주고 필요한 경우 영양제를 처방해준다.
자연스럽게 환자 상담시간은 길어지고,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는 적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병원에서 영양제를 처방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의사라고 왜 똑같은 진료를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는 "영양학은 자칫하면 약장사가 된다. 영양제 처방건수만 늘리려다 보면 환자도 거부감을 느껴 다신 오지 않는다"면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그가 영양제를 섭취해야 하는지 이해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영훈 공보의에게 개원가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요즘 개원의는 대학병원 뿐만 아니라 보건소와 경쟁해야 한다. 이처럼 치열함 속에서 생존하려다보니 의사가 테크니션의 기로에 서 있다. 의사 스스로 테크니션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직원을 가족처럼…병원이 잘 돌아간다
욕심을 버리면서 삶의 여유를 찾았다는 그는 병원 직원들도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다.
평소 고 원장과 친분이 있는 8년차 개원의는 "우연히 영양사 직원에게 들었는데 자신의 대학원 학비는 물론이고 자녀 유학비용까지 지원하고 있다고 하더라. 직원들이 장기근속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도 고 원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단한 건 아니다. 나 또한 그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답했다.
"얼마 전에는 직원 5명 중 한명이 그만 뒀는데 직원들이 충원할 필요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럼 직원 한명 분의 월급을 나눠서 지급하겠다고 했더니 더 열심히 일해주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리얼개원스토리] 주인공 이영훈 씨는 어떤 의사… |
이영훈(가명·34)씨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현재 강원도 모 민간병원에서 공중보건의사로 복무 중이며 오는 4월 전역하는 즉시 이비인후과의원을 개원할 예정이다. 그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비인후과의원을 꿈꾸고 있으며 이를 위해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며 개원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