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만(법무법인 가교) 변호사
대법원은 최근 환자와 대면하지 않고 전화나 기타 통신매체 등을 통해 진찰한 후 처방전을 발급한 의사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항소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는 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자신이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 검안서, 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구 의료법 제18조 제1항(현행 의료법 제17조 제1항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다)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처방전 등의 발급주체를 제한한 규정이지 진찰방식의 한계나 범위를 규정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고 전제했다.
또 의사가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전화나 화상 등을 이용해 환자의 용태를 스스로 듣고 판단해 처방전 등을 발급했다면 '자신이 진찰한 의사'가 아닌 자가 처방전 등을 발급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이 같이 판결한 것이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구 의료법 제18조 제1항의 '자신이 진찰한 의사'와 현행 의료법 제17조 제1항의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는 동일한 의미이므로, 현행 의료법으로도 전화나 화상 등을 이용해 환자의 용태를 스스로 듣고 판단해 처방전 등을 발급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현행 의료법 상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처방전 등을 작성해 교부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의사자격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따라서 위와 같은 형법적, 행정적 제재 때문에 의사가 직접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 전화나 기타 통신매체 등을 통해 환자에 대한 진찰을 하고 환자에게 처방전 등을 작성할 수 있는지 실무에서 문제가 되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 이전까지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처방전 등을 발급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이유는 전화의 방법으로는 환자의 병상 및 병명을 구명하여 판단하는 진단방법 중 문진만 가능하고, 다른 진단방법을 사용할 수 없어 '최선을 다하여 환자가 치료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의사의 진료의무'가 소홀해질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전화를 받는 상대방이 의사인지 아닌지, 전화를 하는 상대방이 환자 본인인지 아닌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약물의 오남용의 우려도 매우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원심 판결도 위와 같은 이유로 해당 의사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것이다.
실제로 전화 등으로 진찰한 후 처방전을 발급할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남용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대법원 판결의 사안도 여러 사정에 의해 의사를 직접 방문하기 어려워 전화상으로 처방전을 발급받은 사례였다.
이에 대해 원심은 환자들은 의사가 아닌 병원의 직원을 통해 처방전을 교부받기도 하였고 그 과정에서 적절히 사용되지 않으면 인체에 해가 될 수 있는 약품의 처방에 필요한 사항들에 대한 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와 같은 전화 등의 방법으로 진찰하는 경우 건강보험제도의 운영을 통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비대면진료를 허용한다거나 보험수가를 조정하는 방법 등으로 비대면진료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전화 등의 방법으로 진찰을 하고 처방전 등을 발급, 교부하는 것이 전면적으로 허용되었지만, 앞에서 남용의 위험성 때문에 보건당국은 머지않아 소위 비대면진료에 대한 허용범위 등(예컨대, 의사가 직접 진료한 환자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만 처방전을 발급할 수 있다는 규정)에 대한 관련 규정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비대면진료에 대하여 어떻게 규율할 지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필자는 그 동안 국민의 건강권 및 보험재정 등을 이유로 무조건 보건법령의 범위를 확대하던 기존 판례의 경향과 다른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죄형법정주의에 충실한 타당한 판결이라고 본다.
이제 전화 등의 방법으로 진찰하고 처방전을 작성 교부하는 게 허용되지만,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오진, 남용 등의 위험성이 있을 수 있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있다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원칙이 아닌 예외적인 것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