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앞길 막는 건 못본다" 팔 걷고나선 부모들

발행날짜: 2013-05-20 12:00:19
  • 기획부실 의대·수련병원에 대항 "불이익 좌시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히 약했던 A씨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의사를 꿈꿨다.

부모의 꿈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 의대를 졸업하고 대형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하면서 그의 꿈은 완성돼 가는 듯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체력이 유난히 약했던 그는 빠듯한 수련일정을 따라가는데 한계를 느꼈다.

결국 몇 달 전 어느날 그는 심각한 과로증상으로 수련에 참여하지 못했다. 체력의 한계를 느낀 그는 휴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휴가는 단 하루. 하루동안 집에서 휴식을 취했지만 이미 한계에 부딪힌 체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일주일 만에 다시 휴가계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전공의들도 힘든데 왜 너만 따라오지 못하냐는 핀잔만 들어야 했다.

이 때부터 그의 생활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실수하지 않던 부분에서 자꾸 실수가 나왔고 당직 근무중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휴가계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를 보는 의국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의 이러한 모습에 동료들도 하나둘씩 수근대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는 의국에서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그는 결국 병가계를 제출하기로 마음 먹었다. 더이상 의국에 피해를 입혀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 병가계는 병원에 제출되지 못했다. 직속 선배 전공의가 무슨 병가냐며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두번의 시도도 결국 무산됐다. 마지막으로 병가계를 제출하려 했을 때는 갈기갈기 찢어진 종이를 얼굴에 집어던졌다. 병가를 쓸꺼면 차라리 병원을 나가라는 욕설과 함께.

참다 못한 그는 결국 병원을 대상으로 사실상 법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에 그는 참여하고 있지 않다. 그의 부모가 나섰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봉기…"불이익 참지 않겠다"

병가계를 찢은 종이로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A씨의 모친은 분노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병원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응방법을 고민하던 중 그는 이러한 부모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의대생 ·전공의 가족협의회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우리 아들보다 더한 사례들도 많더라고요. 도대체 전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왜 바뀌지 않나 생각했어요. 결국 전공의들 힘으로는 이를 바꾸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개별적인 소송보다는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공론화가 쉽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전공의 가족협의회를 통해 계속해서 정보를 모으며 대응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이같은 사례는 비단 A씨의 문제만이 아니다. 자녀를 대신해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뭉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A씨와 같이 불합리한 수련환경에 고통받는 부모들은 전공의가족협의회로 몰려들고 있다.

지난 3월 개설한 포털사이트 카페에는 이미 130명이 넘는 부모들이 모였고 각자의 상황을 전달하며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단순히 그들끼리 의견을 개진하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같은 세를 바탕으로 정부와 대화의 통로도 열었다.

지난달에는 보건복지부 고득영 의료자원과장과 면담했고, 최근에는 노환규 의사협회장과도 의견을 개진했다.

협의회는 여기서 나아가 보건복지부 장관과 면담을 성사시켜 수련환경 개선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부실의대 문제도 깊숙히 개입…정책 개선 도모

이같은 움직임이 비단 전공의들에게 국한된 내용은 아니다. 최근 서남의대 사태를 기점으로 학부모들의 모임이 짜임새를 갖춰가고 있다.

최근 부실의대 논란에 휩쌓인 관동의대 학부모 모임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관동의대가 부속병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정원이 감축되고 의대 인증평가에서도 인증 유예 판정을 받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최근 교과부가 서남의대 폐교를 결정하고 관동의대 문제에 칼을 빼들자 이를 기점으로 회원수도 500명을 넘어섰다.

관동의대 전체 학생수가 300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다수 학부모가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틀을 바탕으로 협의회는 18일 전체 가족모임을 열고 관동의대 폐교를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재단을 압박하기로 했다.

관동의대의 부실교육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의지를 모은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명지학원은 물론, 교육부에 이같은 의견을 전달하고 조속한 정상화를 촉구할 계획이다.

협의회 관계자는 "재단을 비롯해 학교와 수차례 대화를 시도한 결과 관동의대를 정상화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며 "대안없이 학교를 끌고 가느니 폐교를 하는 것도 답이될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전했다.

이러한 관동의대 학부모들의 움직임은 서남의대 사태가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말 교육부가 서남대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부실 실습교육을 문제 삼아 재학생과 졸업생의 학점, 학위 취소를 명령하자 서남의대 학부모들은 격하게 반발하며 모임을 만들었다.

이후 그들은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한편, 결의문을 발표하고 교육부에 항의 방문을 하며 폐교를 주창했고 결국 서남의대는 폐교가 결정됐다.

사실상 최초의 학부모 모임이 뜻한 바를 이뤄내면서 다른 모임이 활성화되는 동기가 부여된 것이다.

전공의가족협의회 관계자는 "학생과 전공의들은 조직에 포함된 당사자인데다 물리적, 시간적으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다"며 "결국 이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가족들만이 불합리한 환경을 바꿀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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