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진료실에서 문득 떠오른 의약분업 악몽

발행날짜: 2013-07-05 06:47:39
  • 창간기획미래 개원의의 한숨 "또다시 재정 파탄 고통 분담하라니"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두달여 남았다. 새로운 대통령 후보들이 어김없이 장미빛 보건복지 공약을 내놓으면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5년전 박 대통령이 내놓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 공약은 계획대로 진행된 듯하다. 수치상으로는 4대 중증질환자들의 보장성이 확실히 높아졌으니까.

하지만 오늘도 난 환자들에게 시달렸다. 병원비가 왜 이렇게 비싸냐는 항의다. 4대 중증질환만 병이냐는 것이다.

정부는 5년동안 박 대통령 공약에만 치중했다. 앞으로 다른 질환에서 보장성 강화를 확대하겠다고 하는데 대통령도 곧 바뀌는 마당에 과연이라는 의문만 든다.

이 환자는 왜 이렇게 비용이 많이 나오냐, 내가 아픈건 아픈 것도 아니냐며 나한테 따졌다. 아무한테도 못하니까 나한테 털어놓는 한탄이었다… 환자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기는 것 같다.

여기다가 이미 처음부터 예견됐던 문제도 나왔다. 정부가 '돈'이 없단다. 건보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언론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올해까지 약 9조원의 건보재정이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 나갔다고 한다. 여기에 간병비,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등 3대 비급여 대책도 나오면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만 재정을 쏟아부었다.

자동적으로 다른 질환에 보장성 확대는 최소한으로 이뤄지고 있다. 거기다가 해마다 진행되는 수가협상 결과도 탐탁치 않다. 정부가 돈이 없다니까 할 말도 없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 1년만에 건보재정이 무려 2조 3000억원이나 적자를 기록했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에는 재정이 진짜 파탄 난 것이다.

이 때 동료 의사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정부는 보험료를 결국 8%나 올려서 적자분을 메웠다. 진찰료도 통합하고 급여기준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허위부당청구 감시도 강화해서 우리를 압박했다.

17년이 지났는데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서 두렵다. 4대 중증질환자는 보장성이 확대되면서 그냥 자동적으로 '큰 대학병원'을 찾는다. 자동적으로 문닫는 중소병원들이 늘고 있다. 몸으로 느낄 정도다.

결국 우리가 매번 주장하고 있는 '적정수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살길은 '비급여'다. 정부는 나쁜 비급여를 색출해내고, 우리는 새로운 비급여 방법을 계속 만들어 낸다. 이 악순환은 언제쯤 끝날까.

2017년 12월 어느날. 진료실에서.

개원의 입장에서 써본 5년 후 어느 날의 일기다. 2017년은 박근혜 정부 임기가 끝나는 해다. 이 때 4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 정책도 완료된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이대로 밀고 나가면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시점인 5년 후에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또 어떤 문제점들이 나타날까.

보장성 강화 정책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지속가능성'이다. 한정된 재원을 얼마나 효율적,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지 말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내놓은 현 시점이 중요한 기로라고 입을 모은다.

나아갈 방향을 개괄적으로 설정한 상황에서, 세부적인 실행방안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위협을 줄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언론기고를 통해 "정부는 건강보험 누적적립금 4조 6000억원을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 쓰겠다 했을 뿐 나머지 재원 대책이 없다"며 "적립금은 한해 건보 지출 50조원의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구가 고령화 되고 고가의 신약 및 신의료기술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기 때문에 건보 재정은 언제든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정부가 제시한 필수의료와 선별의료 구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건강보험 수입지출 구조 변화와 대응방안' 보고서에는 건보적자 규모가 2030년에는 28조, 2040년에는 65조 6000억원, 2050년에는 102조 2000억원에 달한다고 나와있다.

이는 비관적 시나리오를 적용했을 때다.

고령층 건강상태가 좋아지고 피부양률 감소 추세가 현재와 비슷하다는 낙관적 시나리오를 적용해도 재정 적자는 마찬가지였다.

2030년에는 16조 2000억원, 2050년에는 59조 3000억원, 2060년에는 70조 4000억원으로 불어났다.

현재 4조 6000억원이라는 누적 적립금은 명함도 못내미는 액수다. 그리고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라는 '복병'은 고려하지도 않은 수치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임기 안에 세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은 상황이다. 그런데 보장성은 100%로 확대하겠다는 모순된 공약을 추진하고 있다.

급여 원칙에 대한 절차 투명화하고, 환자간 형평성도 문제

정부가 새롭게 도입한 '선별급여'에 대한 절차적 투명성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4대 중증질환자가 아닌 환자들과의 형평성도 문제로 나오고 있다.

선별급여는 비급여를 급여권으로 들여놓는 과정 중 하난데 캡슐내시경, 고가항암제, 로봇수술 등이 그 대상으로 검토되면서 선별급여에 대한 원칙을 잘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대석 교수는 "환자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상태가 좋아질 수 있는 의료기술은 모두 필수의료로 분류되기를 바란다. 정부가 어떤 근거자료와 원칙에 따라 선별의료를 구분했는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가항암제 또한 다국적 제약사의 배만 불려주게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윤 연구소장은 보장성 확대를 위해서는 비급여 관리가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급여 영역에서 수가가 너무 낮다보니 비급여 영역이 확대돼 왔다. 이런 역사적 맥락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급여 중에서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해 나쁜 비급여가 팽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일단 선별급여 개념을 도입해 비급여를 구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나갈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선별급여 구분 방법으로는 절차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제안했다.

연세대 정형선 교수도 "급여 우선순위의 원칙을 객관화 시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4대 중증질환자가 아닌 환자들과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도 고민만 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정부의 방침에 따라 비급여는 다 없애고 보장성을 높이면 혼란이 커질 것은 자명하다. 어떤 환자만 보장성을 높여주고 누군 안해주면 논란이 더질 수밖에 없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국정과제 외에도 국민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에도 신경써야 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재정조달 방안을 찾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공급자 단체 등의 공감을 위한 설득 작업이 필요하다"고 난감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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