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제 얼굴 보면서 진료하시면 안돼요?"

안창욱
발행날짜: 2013-07-22 06:34:26
  • 예비 의사의 진료체험기…"환자의 권리와 의무가 뭔지 생소했다"

모 의대 본과 2학년인 나는 최근 7학점 짜리 큰시험을 몇 일 앞두고 심한 감기를 앓는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향했지만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가 시험이 3일 앞으로 다가온 터라 감기 증세를 완화하면서 졸림을 유발하지 않는 약을 처방받기 위해 동네 내과의원을 찾아갔다.

물론 수업 결석 사유서를 제출하기 위해서라도 진료확인서가 필요했다.

늦은 오후 시간, 대기 환자는 3명 남짓. 잠시 기다리다가 진료실에 들어가 낯익은 원장님을 만났다.

흔한 감기 증상을 말하고, 개인적 사정과 원하는 바를 간단히 설명했으니 특별히 기대할 것도, 실망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조제하고 나니 졸음을 유발하는 항히스타민제 등의 약이 꽤나 섞여 있었다.

원장님께 그렇게 부탁드렸건만.

'왜 이러지'라는 생각을 하며 학교에 가서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하나 같이 "그 원장님의 처방은 바뀌지 않더라"면서 다른 의원을 추천했다.

환자가 그 내과 원장에게 과한 요구를 한 것일까?

시험을 치루고 난 다음 날, 메디칼타임즈 기자와 모 대학병원 앞에서 만났다.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진료 받기로 예약을 해 둔 상황.

본과 2학년 예비 의사의 진료 체험기

우선 대학병원 근처에 있는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진료의뢰서를 받아 가기로 했다.

주증상은 '이명증'. 평소에 증상이 나타나는 편이지만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진짜 환자는 아니었던 셈.

얼마전 메디칼타임즈에서 재미있는 제안이 들어왔다. 일종의 진료체험. 선배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으면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표현해 달라는 것이었다.

흔히 의사는 '갑', 환자는 '을'이라고 말한다.

예비의사가 아니라 환자 입장에서 이런 '갑을 문화'가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제안에 응했다.

'이명증'은 강의를 들을 적에도 그렇게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ClinicalKey에서 논문도 검색해 공부했다.

원인이나 동반증상, 치료 등을 자세히 파악하고, 실제 진료 시나리오도 구상해 돌발 상황에 대비했다.

의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점심 시간이 살짝 지난 뒤라 대기 환자는 없었다. 바로 접수를 하고 원장님과 마주했다.

단순히 진료의뢰서만 받지 말고 진지하게 상담을 받아보기로 하고 원장께 먼저 증상을 말하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여쭸다.

원장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최근 앓았던 감기로 인해 심해졌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짧은 대답이 그날 진료의 전부였다. 걱정되는 점을 말씀 드렸더니 괜찮아질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정작 환자를 안심시키려는 목적은 담겨 있지 않았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 아쉬웠다"

자세히 검사해보고 싶어서 대학병원에 예약했다고 하자 바로 진료의뢰서를 써주셨다.

그 순간에도 아쉬움이 남아 또 다른 질문을 드렸는데 돌아오는 답은 "대학병원에 가면 비싼 기계들이 많으니 검사를 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더 이상의 질문을 막았다.

그제서야 이 의원은 정작 진료의뢰서를 받기 위해 내원하는 환자가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환자를 대하는 원장의 태도를 아쉬워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얼마전 아버지가 들여준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아버지는 갑상선 진료를 받기 위해 대학병원 외래를 방문했다.

아버지는 교수가 계속 모니터만 응시한 채 말씀을 하시자 "의사 선생님, 제 얼굴을 보면서 말하면 안돼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교수가 당황한 목소리로 "얼굴을 보고 말하면 환자들이 자꾸 질문을 해서…."라고 말해 아버지가 황당했다고 말하셨다.

그 때는 '뭐 저런 교수가 다 있어'라고 웃어 넘겼는데 이런 게 현실이었다.

대학병원 수납직원이 나눠 준 '환자의 권리와 의무'
미리 예약해 둔 대학병원에 도착해 먼저 수납·접수 창구로 갔다.

잠시 대기하다가 내 순서가 와 접수창구 앞에 섰다.

예약한 교수는 특진비가 청구된다는 점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더니 큰 액정화면에 서명하라고 했다. 순식간에 넘어가는 화면에 세번 쯤 서명하고 하니 1만원이 넘는 특진비가 포함된 3만원 가량의 진찰 접수가 끝났다.

이비인후과에 도착하니 간호사는 청력검사를 한다며 다시 수납을 하라고 했다. 다시 특진비 약 1만 5천원이 포함한 5만원 수납.

수납을 마치고 조금 기다리니 전공의가 와서 청력검사를 했다. 약 10분 후 검사가 끝났고, 다시 30분 정도 기다린 뒤 외래 진료를 받았다.

의원에서 했던 것처럼 증상을 설명했더니 큰 차이가 없었다. 청력 검사 결과는 당연히 정상소견.

몇 만 원 특진비까지 추가로 붙은 청력검사지만 "청력은 정상이네…" 말 한마디가 끝이었다.

더 이상의 진찰이나 검사도 없었다.

교수는 수면 부족 등으로 인해 이명증이 올 수 있다며 수면 유도제 등을 처방해 주었다.

약 먹고 푹 쉬면서 지켜보다가 한 달 뒤에 보자는 교수의 말은 효용이 없었다. "처방전 받아 가세요" 라는 말을 뒤로 한 채 병원을 빠져나왔다.

"환자는 약자의 입장에서 의사를 강자로 생각한다"

의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대학병원에 가려는 환자들에게 진료확인서만 손에 쥐어주기를 원하고, 종합병원은 환자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모습.

적어도 나의 이 날 경험은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형태라던가 제도상의 문제라던가 하는 것과는 큰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따뜻한 공감, 혹은 환자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한 노력은 그렇게 큰 비용이 들지도 않고, 때로는 그 자체만으로 내원의 목적을 다할 수도 있다.

가까운 의원들 중에서도 어디는 한산하고 어디는 발 디딜 틈이 없다는 이야기를 이곳저곳에서 듣는다. 다들 알면서도 그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닐까.

의료라는 특성상 환자는 약자의 입장에서 의사를 강자로 생각한다는 의료 윤리 수업 내용을 곱씹어볼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수납할 때 무감정의 톤으로 나눠준 '환자의 권리와 의무'라는 종이에는 '환자는 자신의 질병에 대하여 설명을 충분히 듣고 치료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당연한 말인데도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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