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외처방약값 환수 논란, 성분명처방으로 번질라

안창욱
발행날짜: 2013-10-15 06:32:06
  • 대법원 판결 이후 1, 2심 재판부 따라 공단-병원 책임비율 제각각

|초점|원외처방약제비사건과 법원 판결

대법원이 지난 3월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약제비를 의료기관으로부터 환수한 것은 정당하지만, 제반 사정을 감안해 건보공단과 의료기관의 책임 비율을 산정하라고 확정 판결하자 재판부에 따라 황금비율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최근 일부 재판부가 약제비를 지급받은 약국에 대해 공단 손해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향후 성분명처방 도입 요구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대법원 1부(재판장 박병대)는 지난 3월 28일 서울대병원과 건보공단간 원외처방약제비 소송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공단은 서울대병원이 2001년 6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전을 발급해 약 40억원의 손해를 발생시켰다며 진료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은 어느 경우든 요양급여 대상에 포함될 수 없기 때문에 의료기관은 이를 요양급여 대상으로 삼아 처방전을 발급해선 안된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에 앞서 서울고법은 서울대병원 의사들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 중 5건의 경우 최선의 진료를 다하기 위해 의학적 근거와 임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했고, 구체적인 사정을 증명했다며 공단이 해당 진료비까지 환수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을 파기했다.

반면 대법원은 "의료기관이 원외처방으로 직접적으로 취한 경제적 이익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원외처방전으로 공단에게 발생한 손해를 모두 서울대병원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고 주문했다.

서울대병원이 최선의 진료의무를 다하기 위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갖춘 처방 사례가 있어 이런 손해배상책임을 감경할 사유에 대한 심리, 판단을 누락한 채 공단의 손해액 전부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은 위법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여기에다 환자가 약국에 지급한 본인부담금(약 20%)까지 환수한 것 역시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은 당시 서울고법, 서울서부지법 등에 계류중이던 원외처방약제비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서울고법의 상당수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약제비에 대한 공단과 의료기관의 책임 비율을 20%대 80%로 정했다.

다시 말해 공단이 의료기관으로부터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약제비 1억원(이중 환자 본인부담금 2천만원)을 환수했다면 환자 본인부담금 외에 8천만원의 20%에 해당하는 1600만원을 추가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서울고법 민사15부는 지난 9월 C병원 원외처방약제비 사건에 대해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비율을 50%로 제한한다는 파격적인 판결을 선고했다.

비록 C병원의 원외처방이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최선의 진료의무를 다하기 위해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은 물론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나 처방할 필요성 등을 갖춘 처방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무엇보다 약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민사15부 재판부는 "약사 역시 원외처방전에 기재된 조제약이 비급여 대상에 해당해 그 약제비를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할 수 없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면서 "약사의 요양급여비용 청구에 의해 발생한 손해의 모든 책임을 의료기관이나 의사에게만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환기시켰다.

여기에다 서울고법 민사20부는 최근 K대학병원사건에 대한 선고에서 공단이 환수한 9억여원 전액을 돌려주라고 선고했다.

의료기관이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을 했다고 하더라도 약국이 약제비 상당의 요양급여비용 이득을 취했고, 환자가 공단이 지급한 약제비 상당액을 부당이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약제비를 의료기관에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행정편의적인 해결방법으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의 위법한 원외처방전 발급으로 인한 비용은 급여를 수령한 약사, 환자가 순차적으로 부담하도록 하고, 사후에 의료기관과 환자 사이에서 병원의 진료, 처방행위의 위법 여부를 가려 손해배상 범위를 정하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이런 제반 사정을 참작해 보면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비율을 50%로 제한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문했다.

원외처방약제비 사건을 공단-병원의 양 당사자 책임으로 국한해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공단-병원-약국 3자 또는 공단-병원-약국-환자 4자 문제로 보느냐에 따라 엇갈린 판결이 내려진 셈이다.

이와 관련 이들 병원의 법률 대리인인 현두륜(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14일 "2심 판결에 대해 일부 의료기관, 공단이 상고할 가능성이 높아 대법원이 책임제한비율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고 밝혔다.

한편 만약 의사가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전을 발급한 것에 대해 약국이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한 책임을 묻는다면 결국 약사의 약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성분명처방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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