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주 80시간 근무제…뚜껑도 열기 전 갑론을박

발행날짜: 2013-11-25 07:00:42
  • 학회 "PA 없으면 진료 공백", 중소병원 "의료기관 망한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수련환경 개선책의 핵심 사안인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 상한제를 놓고 전공의와 병원, 학회가 연신 주판알을 튕기는 모습이다.

바람직한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보다는 이에 대한 부작용에만 초점을 맞춘 채 이를 상쇄하기 위한 대안을 얻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

전공의들 "법제화 없이는 근무시간 상한제 무용지물"

대한외과학회가 23일 추계학술대회에서 개최한 '외과 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 무엇이 문제인가' 세션에서도 이같은 논란이 재연됐다.

우선 당사자인 전공의들은 기본적인 수련환경 개선책이 나온 것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강제화된 조항 없이는 무용지물일 뿐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앙대병원 서상균 외과 전공의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시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무려 30.7%의 전공의가 100시간 이상의 근무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이러한 면에서 주당 80시간으로 근무시간 상한을 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근무시간상한제가 지켜지는가에 대한 모니터링과 처벌 조항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며 "표준근로계약서와 근무시간 상한제에 대한 국회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피교육자로서 전공의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입법과정을 통해 이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의학회 등 PA 도입 전제 "보조인력 없이는 시행 무리"

하지만 의학회와 외과학회 등은 근무시간상한제 시행은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우려하며 PA(Physician assistant) 도입 등의 대안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한의학회 김재중 수련이사는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며 "하지만 국내 병원계의 특성상 전공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서 수련환경 개선은 이상적 목표가 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전공의들의 업무를 줄이기 위해 전문의를 투입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인력 낭비가 될 수 있다"며 "결국 간호사를 적절히 교육시켜 PA를 양성하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했다.

외과학회도 이같은 의견에 힘을 보탰다. PA 없이 근무시간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대한외과학회 이길연 부총무는 "전공의 근무시간이 80시간으로 제한되면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해야 하며, 평일에 한번, 주말에 한번 당직을 서면 이에 맞춰 평일과 주말에 휴일을 줘야 한다"면서 "이렇게 하면 현재 대비 적어도 주당 40시간 이상 공백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또한 "결국 진료 보조인력 없이는 근무시간 상한제를 지키기 어렵다는 뜻"이라며 "PA에 대한 제도적 보완을 통해 전공의 업무 일부를 간호사에게 일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소병원 "근무시간 상한제 무리수…병원 망한다"

그러나 중소병원들은 PA 도입도 대안이 될 수 없다며 근무시간 상한제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중소병원의 몰락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경고다.

한전병원 우고운 외과 주임과장은 "우리 병원도 외과 전문 간호사만 4명이 근무중이지만 이들이 의사의 업무를 대신할 수는 없다"며 "결국 우리는 외과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을 줄이지 못해 수련병원 자격이 취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이는 비단 우리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이미 중소병원들의 수련병원 자격 취소 사태는 몇 해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그는 만약 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가 실시될 경우 외과 수련제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대형병원만이 수련을 시킬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 과장은 "중소병원들이 줄줄이 수련병원 자격을 잃으면 일부 대형병원에서만 외과 수련이 이뤄질 수 밖에 없다"면서 "결국 기본 술기조차 참여하지 못한 채 구경만 하다가 수련을 마치는 기형적인 전문의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또한 중소병원의 붕괴로 외과 전문의를 따고 나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며 "정부와 대한병원협회가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현재 도출된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를 안착시키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인제대 의학교육학교실 노혜린 교수는 "선진국 사례를 보더라도 근무시간 상한제를 도입한 후 전공의들에 삶의 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하지만 전공의 업무가 교수들에게 전가되면서 피로감으로 오히려 교육과 수련이 부실화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결국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부작용을 해결해 가는 대처방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전공의는 물론, 교수와 환자의 삶의 질을 모두 높일 수 있는 정책으로 다듬어 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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