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환자 무자격자 조제 사기죄 적용 "병원 걸면 다 걸린다"
대법원은 지난 10월 건강보험공단이 지방의 H병원에 대해 23억여원 환수처분을 내린 것이 정당하다고 확정 판결했다.
사기, 약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H병원의 홍모 원장은 한달 뒤 대법원으로부터 2천만원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어쩌면 홍 원장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는 사기죄가 적용됨에 따라 조만간 면허정지 8개월에 이어 업무정지 8개월 처분을 감수해야 한다.
200병상급 H병원에 사실상 강제 폐업 선고가 내려지는 셈이다.
H병원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H병원은 2007년 50병상으로 개원했다.
당시 H병원은 의료법상 약사를 두지 않아도 상관 없었지만 월, 수, 금요일만 근무하는 조건으로 어렵게 모셨다.
그러던 2011년 초 갑작스럽게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H병원에서 퇴사한 직원이 내부고발한 것이다.
결국 홍 원장을 포함한 병원 관계자 4명이 기소됐는데 가장 뼈아픈 게 약사법 위반과 조제료 사기죄 적용이었다.
H병원에 근무했던 조모 약사는 경찰 조사에서 주 3일 근무할 때에도 마약류만 관리했을 뿐 약을 조제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무자격자 조제 약사법 위반, 조제료는 사기죄
그러자 경찰은 의사가 약을 직접 조제하지도 않았고, 약사 면허가 없는 조제실 직원 4명이 조제 업무를 했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은 H병원의 약사나 의사가 아닌 무자격자가 약을 조제한 것은 약사법 위반이며, 이 경우 건강보험공단에 조제료를 청구할 수 없음에도 18억여원을 지급받았다며 이례적으로 사기죄를 적용했다.
약사법 제23조 제1항에 따르면 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다.
다만 같은 법 제23조 제4항은 입원환자, 약국이 없는 지역 등에 대해서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가 '직접 조제'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H병원은 의약분업에 따라 약사가 약을 조제해야 하지만 의사가 입원환자의 약을 직접 조제할 수 있어 약사법 위반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대법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2007년 판례를 인용했다.
2004년 정형외과의원을 운영중인 문모 원장은 간호사가 입원환자 약을 조제하도록 지시했다가 약사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문 원장은 "의원은 약사를 따로 두지 않고, 의사가 처방하면 간호조무사가 이를 보고 약을 포장한다"면서 "이러한 간호조무사의 행위는 의사의 조제행위를 단순히 기계적으로 보조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과 관련, 대법원은 2007년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조제실 직원이 조제할 때 이를 의사 자신의 직접 조제로 평가할 수 있는 법률상 조건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의사가 실제 간호사 등의 조제행위를 구체적이고 즉각적으로 지휘 감독했거나 적어도 의료기관 규모, 입원환자 수, 조제실 위치, 사용된 약의 종류와 효능 등에 비춰 그런 지휘 감독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 조항으로 인해 문 원장은 약사법 위반 유죄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 대법원 판례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에 대해 현두륜(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의사는 자신이 직접 의료행위를 하거나 간호사, 의료기사 등에게 지시를 하고 이를 지도 감독할 권한이 있다"고 환기시켰다.
이어 현 변호사는 "하지만 대법원은 의사의 '직접 조제' 규정을 일반적인 지도 감독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지휘 감독'으로 판단했다"면서 "이는 사실상 간호사 옆에서 지켜보거나 직접 조제하라는 것으로, 의료 현실상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약사법 제23조 제4항 헌법소원심판 청구
의사는 물리치료, 검사, 주사 등을 직접 하지 않고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병리사 등에게 지시하고 지휘 감독할 수 있음에도 치료행위의 일부인 약에 대해서는 유독 의사가 '직접 조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H병원은 얼마전 약사법 제23조 제4항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나섰다.
현 변호사는 "의사의 조제를 포괄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의사가 '직접 조제'하도록 강제한 약사법 조항은 의료법상 의사의 진료권, 간호사의 진료보조권과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의사가 직접 조제하지 않으려면 일단 약사를 일정 수 이상 고용해야 한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들은 약사를 쉽게 구할 수 있을까?
홍 원장은 "약사가 턱없이 부족하고 중소병원을 기피한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면서 "일주일에 3일 근무하는 약사를 구한 것도 기적같은 일"이라고 토로했다.
의료법 시행규칙을 보면 100병상을 초과하는 병원은 최소한 1명 이상의 약사를 둬야 한다.
주 40시간 근무, 휴일 등을 감안해 실질적으로 1년 24시간 약사가 조제하기 위해서는 최소 7명이 필요하다.
의료법에 약사 인력 기준을 명시하고 있지만 의료수가를 보면 정부는 날강도와 다를 바 없다.
H병원은 한달에 약 280만원을 조제료로 받아왔다. 약사 1명 월급도 안되는 수준이다.
약사가 24시간 조제하기 위해 7명을 고용한다면 연간 수억원의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병원 의약품 관리료는 30원. 병원 밖 약국이 같은 명목으로 1890원을 받는다는 것만 보더라도 수가 불균형이 심각하다.
"대한민국의 병원은 모두 걸면 걸리는 게 현실"
약사를 구하기 어렵고, 월급도 감당 안되는 조제료, 의사의 포괄적인 약 조제 지도 감독권조차 인정하지 않는 상황.
병원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H병원은 형사처벌, 행정처분을 받았지만 여전히 약사 1명만 두고 있다.
홍 원장은 "지금도 약사법을 어기고 있고, 앞으로 영원히 약사법을 충족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법을 어겨가며 조제료를 도둑질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 의료 현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홍 원장은 "기자님, 병원에 입원하면 약사가 약을 줍니까? 서울대병원도 간호사가 주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에 의사가 직접 조제하는 병원은 한 곳도 없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법원의 의사 직접조제 판례가 깨지지 않은 한 모든 병원은 사기를 치는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나라는 약사공화국이냐"고 되물었다.
현두륜 변호사는 "약사를 의무적으로 고용하면, 그 비용을 보존하고, 아니면 의사 직접 조제를 위한 조제료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이런 게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 직접조제 조항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밝혔다.
사기, 약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H병원의 홍모 원장은 한달 뒤 대법원으로부터 2천만원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어쩌면 홍 원장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는 사기죄가 적용됨에 따라 조만간 면허정지 8개월에 이어 업무정지 8개월 처분을 감수해야 한다.
200병상급 H병원에 사실상 강제 폐업 선고가 내려지는 셈이다.
H병원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H병원은 2007년 50병상으로 개원했다.
당시 H병원은 의료법상 약사를 두지 않아도 상관 없었지만 월, 수, 금요일만 근무하는 조건으로 어렵게 모셨다.
그러던 2011년 초 갑작스럽게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H병원에서 퇴사한 직원이 내부고발한 것이다.
결국 홍 원장을 포함한 병원 관계자 4명이 기소됐는데 가장 뼈아픈 게 약사법 위반과 조제료 사기죄 적용이었다.
H병원에 근무했던 조모 약사는 경찰 조사에서 주 3일 근무할 때에도 마약류만 관리했을 뿐 약을 조제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무자격자 조제 약사법 위반, 조제료는 사기죄
그러자 경찰은 의사가 약을 직접 조제하지도 않았고, 약사 면허가 없는 조제실 직원 4명이 조제 업무를 했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은 H병원의 약사나 의사가 아닌 무자격자가 약을 조제한 것은 약사법 위반이며, 이 경우 건강보험공단에 조제료를 청구할 수 없음에도 18억여원을 지급받았다며 이례적으로 사기죄를 적용했다.
약사법 제23조 제1항에 따르면 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다.
다만 같은 법 제23조 제4항은 입원환자, 약국이 없는 지역 등에 대해서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가 '직접 조제'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H병원은 의약분업에 따라 약사가 약을 조제해야 하지만 의사가 입원환자의 약을 직접 조제할 수 있어 약사법 위반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대법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2007년 판례를 인용했다.
2004년 정형외과의원을 운영중인 문모 원장은 간호사가 입원환자 약을 조제하도록 지시했다가 약사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문 원장은 "의원은 약사를 따로 두지 않고, 의사가 처방하면 간호조무사가 이를 보고 약을 포장한다"면서 "이러한 간호조무사의 행위는 의사의 조제행위를 단순히 기계적으로 보조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과 관련, 대법원은 2007년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조제실 직원이 조제할 때 이를 의사 자신의 직접 조제로 평가할 수 있는 법률상 조건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의사가 실제 간호사 등의 조제행위를 구체적이고 즉각적으로 지휘 감독했거나 적어도 의료기관 규모, 입원환자 수, 조제실 위치, 사용된 약의 종류와 효능 등에 비춰 그런 지휘 감독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 조항으로 인해 문 원장은 약사법 위반 유죄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 대법원 판례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에 대해 현두륜(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의사는 자신이 직접 의료행위를 하거나 간호사, 의료기사 등에게 지시를 하고 이를 지도 감독할 권한이 있다"고 환기시켰다.
이어 현 변호사는 "하지만 대법원은 의사의 '직접 조제' 규정을 일반적인 지도 감독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지휘 감독'으로 판단했다"면서 "이는 사실상 간호사 옆에서 지켜보거나 직접 조제하라는 것으로, 의료 현실상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약사법 제23조 제4항 헌법소원심판 청구
의사는 물리치료, 검사, 주사 등을 직접 하지 않고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병리사 등에게 지시하고 지휘 감독할 수 있음에도 치료행위의 일부인 약에 대해서는 유독 의사가 '직접 조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H병원은 얼마전 약사법 제23조 제4항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나섰다.
현 변호사는 "의사의 조제를 포괄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의사가 '직접 조제'하도록 강제한 약사법 조항은 의료법상 의사의 진료권, 간호사의 진료보조권과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의사가 직접 조제하지 않으려면 일단 약사를 일정 수 이상 고용해야 한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들은 약사를 쉽게 구할 수 있을까?
홍 원장은 "약사가 턱없이 부족하고 중소병원을 기피한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면서 "일주일에 3일 근무하는 약사를 구한 것도 기적같은 일"이라고 토로했다.
의료법 시행규칙을 보면 100병상을 초과하는 병원은 최소한 1명 이상의 약사를 둬야 한다.
주 40시간 근무, 휴일 등을 감안해 실질적으로 1년 24시간 약사가 조제하기 위해서는 최소 7명이 필요하다.
의료법에 약사 인력 기준을 명시하고 있지만 의료수가를 보면 정부는 날강도와 다를 바 없다.
H병원은 한달에 약 280만원을 조제료로 받아왔다. 약사 1명 월급도 안되는 수준이다.
약사가 24시간 조제하기 위해 7명을 고용한다면 연간 수억원의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병원 의약품 관리료는 30원. 병원 밖 약국이 같은 명목으로 1890원을 받는다는 것만 보더라도 수가 불균형이 심각하다.
"대한민국의 병원은 모두 걸면 걸리는 게 현실"
약사를 구하기 어렵고, 월급도 감당 안되는 조제료, 의사의 포괄적인 약 조제 지도 감독권조차 인정하지 않는 상황.
병원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H병원은 형사처벌, 행정처분을 받았지만 여전히 약사 1명만 두고 있다.
홍 원장은 "지금도 약사법을 어기고 있고, 앞으로 영원히 약사법을 충족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법을 어겨가며 조제료를 도둑질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 의료 현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홍 원장은 "기자님, 병원에 입원하면 약사가 약을 줍니까? 서울대병원도 간호사가 주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에 의사가 직접 조제하는 병원은 한 곳도 없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법원의 의사 직접조제 판례가 깨지지 않은 한 모든 병원은 사기를 치는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나라는 약사공화국이냐"고 되물었다.
현두륜 변호사는 "약사를 의무적으로 고용하면, 그 비용을 보존하고, 아니면 의사 직접 조제를 위한 조제료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이런 게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 직접조제 조항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