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14년, 사후 평가가 필요한 이유(하)

김홍식
발행날짜: 2014-05-03 06:09:40
  • 김홍식 원장(부산 김홍식내과의원, 전 의협 정책이사)

김홍식 원장.
개선 없는 의약품 유통구조

정부가 의약분업을 시행하면서 의약품 유통을 일원화하여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하였다. 의사들이 의약품 거래에서 받는 리베이트(Rebate)를 근절하여 그 만큼 약값도 낮추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약분업 도입 14년이 지나도록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복제약품 가격도 그대로이고 Rebate도 쌍벌제라는 법규정까지 만들며 근절하겠다고 한다. 정부 스스로 의약분업 제도로는 의약품 유통구조를 개선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것이다.

완전분업에 불편해진 의료기관 이용

사회 모든 분야가 간소화되어 불편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데 의약분업만은 원스텝 의료서비스에서 투스텝 서비스로 바뀌어 많이 불편해졌다. 진료와 조제가 분리된 과정도 불편해졌고 약국에서 조제의약품 준비가 미흡하여 환자들이 원외처방전을 들고 여러 약국을 전전해야 하는 것과 처방전을 먼저 제출하고 나중에 조제약을 받기위해 약국을 두 번 이상 방문하는 것도 불편해진 것이다. 고령사회로 접어들어 노인 환자들이 급증하는데 의료기관 이용은 의약분업으로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불편해 진 것이다.

완전분업에 조제료 부담

의료기관에서 원내조제를 하는 경우 조제료를 책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강제분업으로 인해 원외처방전마다 모두 조제료가 붙는다. 일본은 선택분업을 실시하고 있고 현재 원내조제와 약국조제가 절반 정도라 전체 처방전 건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국조제에서만 조제료가 붙으니 우리나라보다 조제료를 절반이나 줄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강제분업을 하고 있어 일본보다 훨씬 많은 조제료를 국민들이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저수가 환경 악화와 의사의 자율성 침해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출발 시 초저수가로 시작하여 수가현실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에 정부는 1977년 의무보험이 도입될 때 4년 연속 11~20%를 인상하고 1988년 전국민의료보험이 도입될 때 12% 수가인상을 하였으며 최소한 연 6% 이상의 수가인상률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의약분업으로 재정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상황이 급변했다. 2002년에 수가를 2.9% 인하했으며 매년 1~2%의 수가인상률만 유지하였는데 그 수가는 4%의 실질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였다. 인건비는 올라가고 소모품비도 급등하는데 수가는 물가인상률에조차 미치지 못하니 의약분업 이후 저수가 환경이 더욱 악화되었다.

그뿐 아니라 과다처방 약제비 환수와 같은 제도를 만들어 저수가마저 제대로 보존해주지 않았다. 건강보험공단의 과다처방 약제비환수는 법원에서 부당한 행정으로 판결났지만 법원 판결 이후에도 환수를 지속하였다. 의약분업으로 재정 지출이 늘어나자 정부는 재정에 연계한 의료정책을 남발하였고 그 결과 의약분업 도입을 반대하였던 의사들이 오히려 심사기준 등으로 자율성을 침해당하였고 저수가마저도 제대로 보존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의약분업 재평가 필요

대개의 선진국에서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매우 신중하게 추진한다. 준비 과정에 단계별로 검증하고 시행된 후에라도 지속적인 평가 작업을 통해 개선하면서 제도를 안착시킨다.

또한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인센티브 등 활성화 방안으로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전문인들을 정책 입안과 조정 과정에 대거 참여시켜 정책의 전문성을 기한다. 제도를 잘못 도입하면 사회 관습과 질서가 무너지고 사회 부담이 급증한 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으로 제도 도입에는 항상 신중한 자세로 임하며 바른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료정책 도입은 다른 선진국들과 많이 다르다. 의약분업 도입 과정만 봐도 드러난다. 일본은 의약분업 관련 법안을 1874년에 제정하였지만 법 제정 후 무려 80년이 지난 1956년에야 비로소 완전 의약분업을 도입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그마저도 완전분업이 아닌 임의분업을 시행하고 있다.

의약분업은 일본처럼 제도가 잘 구축된 선진국에서조차 섣불리 접근할 수 없는 제도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1953년 약사법 제정 이후 분업을 논의했다고 하지만 본격적인 협의는 1993년 약사법 개정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불과 7년 만에 시범사업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완전-강제 분업으로 강행해 버렸다. 분업 당사자인 의사협회가 파업까지 감행하며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성향이 강한 보건사회학자와 일부 시민단체를 앞세워 공권력을 동원하여 국민적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의약분업을 도입해야 하는 명분을 제시했지만 분업 시행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가 국민들에게 홍보했던 효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국민들의 부담만 3배 이상 늘었으며 의약분업으로 인한 재정 지출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시민단체, 국회, 언론 등 의약분업 도입에 앞장섰던 자들은 지난 14년 동안 드러난 의약분업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 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의약분업에 끌려와 돈을 더 부담해야 하는 국민들을 배신하는 일이다.

이제 지난 14년간 발생한 의약분업의 문제들을 공정하게 평가하여 그 평가결과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의·약사가 받는 리베이트를 근절하자면 국민 부담이 급증하는 의약분업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근절할 수 있다. 제약회사와 약사들 먹여 살리기 위해 재정파탄을 불러오고 국민들에게 불편과 부담만 주는 의약분업을 유지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의약분업이 불편하기만 하고 실익이 없는 제도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국민들은 의약분업 도입을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은 의약분업 도입 시 재정 부담에 대해서도 합의해준 적이 없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추가 재정 부담이 없다고 하여 시작한 분업이니 국민의 부담이 급증하는 것으로 밝혀진 지금은 의약분업에 대한 새로운 국민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다.

만약 의약분업이 재평가 결과 재정 부담과 국민 불편 때문에 국민적 합의를 받아내지 못한다면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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