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 본과 4학년 김정화 씨
새내기 PK를 위한 헌내기 PK 회고록②
병원에서 살아남기, PK의 Pre-rounding을 소개합니다.
Pre-rounding 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교수님들의 아침 회진 전, 새벽 6시 쯤 부터 전공의 혹은 인턴이 혼자서 도는 회진을 뜻합니다. 밤새 환자는 괜찮았는지, 필요한 검사나 술기 오더가 빠지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진짜 회진 때 보고할 사항을 정리하는 준비 시간입니다. 제대로 안하면 정신적 신체적 몽둥이가 날아오는 만큼 Pre-rounding은 상당히 절박하고 바쁜 점검시간이라고 하네요.
나이도 어리고 등록금도 내는(!) PK는 종종 병원 내의 귀여움의 대상이지만, 무지가 드러날 때면 가끔 몽둥이가 날아오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몽둥이 방어를 위한 PK버젼 Pre-rounding을 소개합니다.
실습 전날, 주요 질환명과 임상증상 만이라도!
우선 학교에서 배부하는 실습 책자를 펴봅시다. 한림대학교는 '임상실습 지침서'와 '임상수기수첩'을 교부하고 있습니다. 임상실습 지침서에는 각 과의 학습 목표와 주된 증상 및 질환, 진단법, 치료법이 간단히 적혀있고, 임상수기수첩에는 그 과에서 보아야 할 수기들의 체크리스트가 있는데요. 책에서 제시한 항목 전부를 전날 몇 시간 안에 숙지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다만 주된 임상증상과 주요 질환명 정도는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합니다. 질환의 분류체계와 이름만 훑어도 실습 첫 날 '여기는 무얼 하는 곳인가?'하는 아노미 상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모르는 게 죄'라는 속담을 병원만큼 뼈저리게 느끼는 곳도 없습니다. 어떤 08학번 선배는 자신이 그 과에서 본 질환만큼은 국시 문제집의 개념만이라도 읽어보라고 권했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합당한 조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원의 일상: 회진, 외래, 수술 그리고 질문
병원의 하루는 아침 컨퍼런스와 회진으로 시작됩니다. 보통 8시 이전에 컨퍼런스가 끝나고 아침 회진이 시작됩니다.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지만 PK에겐 졸리고 배고픈 시간이죠.
덜 졸리고, 덜 배고프고 싶다면? 안타깝지만 회진에 집중하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옵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약간의 회진준비는 오히려 회진시간을 빨리 지나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전공의 선생님이 챙겨주시는 환자명단이나 I/O chart를 꼭 가져가서 병명과 특이사항을 읽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실습 둘째 날부터는 관심 가는 환자 몇 명의 EMR 경과기록지를 회진 전에 미리 확인해봅시다. 특히 전날 수술했던 환자는 그 다음 날 아침 경과기록지와 환자 상태가 집도의의 '성적표'라고 합니다. 소소한 예습으로 교수님과 어색하지 않은 회진을 돌 수 있습니다.
외래는 환자를 다루고 대하는 방법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지식보다는 환자를 유심히 살펴보는 교수님을 관찰해봅시다. 아래는 정형외과의 모 교수님이 외래에서 제게 직접 해주신 말씀으로, '살펴봄'의 의미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의사는 환자가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 모습, 말, 행동, 옷차림 등을 예민하게 관찰해야 하고, 이전 외래 때보다 나아졌는지 나빠졌는지 한번에 알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엔 지식으로 보지만 나중엔 의학적 직관, 느낌이 중요하다. 또 그런 자기 느낌을 믿을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온다."라고 말이죠.
수술은 병원에 처음 온 실습생들에게 가장 흥미가 많은 일정입니다. TV에서 보던 녹색 파랑색 수술보와 메스라니! 하지만 정작 수술대는 외과의사, 간호사, 마취과 의사 등등 사람으로 온통 가려지고 설령 비디오로 수술과정을 보여줘도 '빨간 건 피, 흰 건 뭐지?' 갸우뚱 한 채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종종 스크럽을 서기도 하지만 또 몇 시간 수술기구를 붙잡고 서 있다보면 슬슬 피곤이 몰려옵니다.
보통 한 수술을 최소 2-3번 이상 봐야 Anatomy와 Approach 과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회진과 마찬가지로 '아는 만큼' 집중할 수 있는 거죠. 여러 수술을 참관하다보면 꼬꼬마 학생들도 눈치가 생기는데, 신기하게도 잘 되는 수술은 시원시원 재미가 느껴지고, 집도의가 힘들어하는 수술은 참관하는 학생도 힘이 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회진, 외래, 수술 - 세 가지 일정 곳곳에선 예기치 못한 질문들이 날아오기도 합니다. 답을 못하고 우물거리는 게 대부분인데, 운 좋으면 교수님이 친절히 알려주시지만, 보통은 핀잔과 함께 새로운 숙제가 탄생합니다.
일단 대답은 많이 해봅시다. 맞으면 칭찬받아서 좋고, 틀리면 부끄러워서 좋습니다. 당장은 무안하지만, 그런 수치심(?)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안 틀려야지' 다짐도 되고요. 병원 생활에는 몇 가지 진리가 있는데, 하나는 '모르는 것은 반드시 즉시 찾아본다', 그리고 '한 번 질문한 것은 나중에 또 질문한다'입니다. 두 가지만 기억하시면 즐거운 질문타임을 보낼 수 있습니다.
PK 실습의 꽃, 프레젠테이션 준비 백서!
PK 생활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제일 발전하게 되는 스킬(?) 중 하나가 프레젠테이션입니다. 대표적으로 교수님이나 레지던트 선생님이 지정해주는 환자에 대한 케이스 발표와, 논문을 읽고 요약하는 논문 발표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케이스 발표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케이스 발표란 환자가 해당 병원에 내원하게 된 증상과 이전 병력, 내원 이후 퇴원하기까지(또는 현재까지) 질병경과와 시행한 치료법을 정리한 뒤 해당 질병에 대해 교과서 및 논문을 바탕으로 한 Disease Review를 덧붙이는 프레젠테이션입니다. 보통 발표 주제를 월요일에 받고,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발표를 하게 됩니다.
병원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시간엄수'입니다. 보통 학생들의 케이스 발표는 5-10분이 주어집니다. 실제로 학회에서 한 꼭지 발표도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으니, 비슷한 분량의 발표를 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핵심을 간결하게 요약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핵심은 '질병'보다 '증상'
여기서 핵심이란 환자가 '가장 불편해하는 증상, 증상 조절을 위해 시행한 치료, 그로 인한 증상의 경과'입니다. 경험이 쌓인 교수님들은 질병보다는 증상 중심으로 환자를 돌보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습 초기 발표 당시, 학생이나 의사 초년병 선생님들은 질병에 집중하다보니 종종 환자의 호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예를 들어, 암 환자 같은 장기 입원환자는 변비가 무척 중요한 증상이라고 합니다. 입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면 거의 대부분 변비가 생기는데, 큰 질병 치료(증상보다 질병의 병태생리를 바꿔주는 치료-증상 개선과 꼭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에만 집중하여 방치하다보면 변비를 조기에 manage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부터 강한 하제를 쓰는데, 점점 더 많은 양을 처방하다가 마비성 장폐색이나 장 천공, 장 출혈 등이 발생해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환자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암질환 뿐만 아니라 변비증상에도 주목해야 하는 거죠.
수술에는 '수술일기' 환자에겐 '케이스일기'
케이스 발표의 또 다른 의의는 '환자 manage를 복습하는 공부'라는 것입니다. 몇 달 전 생로병사 100회 특집 1부에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님 편이 방송되었는데 놀라웠던 것은 교수님이 20대 레지던트 때부터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자신이 참여한 모든 수술을 기록해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교수님은 수술이 끝나는 즉시, 어떻게 병소에 접근을 했고 위기상황에 어떤 대처를 했는지 상세히 기록하면 그 수술을 두 번 해보는 것과 마찬가지고, 잘한 점 잘 못한 점 등을 찾아 스스로 개선할 수 있어 자신감이 쌓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방송을 보고서, 수술을 수술일기로 복습하는 것처럼 케이스 발표는 자신이 환자를 돌보았던 방식을 복습하고 피드백하는 중요한 절차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당연한 정의이지만, 개인적인 경험에서 이것을 기억하며 준비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발표의 질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국시에도 도움 되는 '착한' 케이스
사실 이런 큰 의미가 아니더라도, 케이스로 주어지는 환자들은 대부분 매우 협조적이며 전형적인 질병 경과를 밟는 좋은 표본(?)이기 때문에 질병공부(Disease Review)만 해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만약 케이스를 직접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해당 과의 가장 주된 질환을 가진 환자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소화기 내과의 위 궤양, 산부인과의 조산, 신경외과의 지주막하 출혈 등등) 케이스 준비는 짧게는 1시간, 길면 이틀이나 사흘도 소요되는 에너지 소모가 많은(!) 활동입니다. 이왕 시간과 체력을 쓸 바에야 값어치 있고 국시에도 출제되는 메이저 질환을 맡는 게 좋겠죠.
Disease Review의 참고자료는 각 과의 교과서(내과-Hasrrison, 외과-Sabiston, 산부인과-Novak & Williams 등등)이나 최신 Review 논문이 추천됩니다. 도표나 그림은 교과서, PPT 본문은 Review 논문에서 따오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논문은 인용지수가 어느 정도 보장된(SCI, SCIE) 저널에 실린 것인지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외국 의과대학 수업자료 역시 신뢰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영상의학 자료 판독은 Learing Radiology (http://www.learningradiology.com/), Radiopaedia (http://radiopaedia.org/) 가 도움이
됩니다.
모든 의대와 병원 PPT가 그렇듯 화면에 글씨가 무척 많을 수 밖에 없지만, 틈틈이 그림과 도표를 넣어야 듣는 사람들도 지치지 않고 집중할 수 있습니다. 어떤 PK들은 매끄러운 발표를 위해 대본을 준비하지만, 대본은 특별히 준비하라는 지시사항이 없다면 안 보는 것이 좋습니다.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깔끔한 설명과 꼭 필요한 글, 그림만이 포함된 발표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쓰다보니 장황한 Pre-rounding이 되었습니다. 일부 독자분들에겐 벌써 회진이 끝나고, 몽둥이도 맞았을지도 모르겠군요. 다들 아실테지만 실습 막판으로 갈수록 괴이한 스킬이 늘어납니다. 회진에 늦어도 안 들키기, 외래/수술 자체 방학하기. 질문에 대답 끝까지 안하기, 환자 한 번도 안보고 PPT 만들기. 경과 기록 10일치 뭉뚱그리기, 내가 모르는 검사기록 없애기, 퍼시픽으로 질병 리뷰하기, 나눠서 발표하기로 한 논문 한 명에게 몰아주기, 교수님 말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잊어버리기 등등 셀 수도 없는데, 사실 저만큼 재밌는 PK생활의 소소한 추억거리도 없습니다.
다만 가끔은 원칙을 지켜 성실히 실습에 임하는 뿌듯함 역시 큰 추억으로 남기에, PK의 Pre-rounding을 적극 추천드리는 바 입니다.
병원에서 살아남기, PK의 Pre-rounding을 소개합니다.
Pre-rounding 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교수님들의 아침 회진 전, 새벽 6시 쯤 부터 전공의 혹은 인턴이 혼자서 도는 회진을 뜻합니다. 밤새 환자는 괜찮았는지, 필요한 검사나 술기 오더가 빠지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진짜 회진 때 보고할 사항을 정리하는 준비 시간입니다. 제대로 안하면 정신적 신체적 몽둥이가 날아오는 만큼 Pre-rounding은 상당히 절박하고 바쁜 점검시간이라고 하네요.
나이도 어리고 등록금도 내는(!) PK는 종종 병원 내의 귀여움의 대상이지만, 무지가 드러날 때면 가끔 몽둥이가 날아오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몽둥이 방어를 위한 PK버젼 Pre-rounding을 소개합니다.
실습 전날, 주요 질환명과 임상증상 만이라도!
우선 학교에서 배부하는 실습 책자를 펴봅시다. 한림대학교는 '임상실습 지침서'와 '임상수기수첩'을 교부하고 있습니다. 임상실습 지침서에는 각 과의 학습 목표와 주된 증상 및 질환, 진단법, 치료법이 간단히 적혀있고, 임상수기수첩에는 그 과에서 보아야 할 수기들의 체크리스트가 있는데요. 책에서 제시한 항목 전부를 전날 몇 시간 안에 숙지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다만 주된 임상증상과 주요 질환명 정도는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합니다. 질환의 분류체계와 이름만 훑어도 실습 첫 날 '여기는 무얼 하는 곳인가?'하는 아노미 상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모르는 게 죄'라는 속담을 병원만큼 뼈저리게 느끼는 곳도 없습니다. 어떤 08학번 선배는 자신이 그 과에서 본 질환만큼은 국시 문제집의 개념만이라도 읽어보라고 권했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합당한 조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원의 일상: 회진, 외래, 수술 그리고 질문
병원의 하루는 아침 컨퍼런스와 회진으로 시작됩니다. 보통 8시 이전에 컨퍼런스가 끝나고 아침 회진이 시작됩니다.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지만 PK에겐 졸리고 배고픈 시간이죠.
덜 졸리고, 덜 배고프고 싶다면? 안타깝지만 회진에 집중하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옵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약간의 회진준비는 오히려 회진시간을 빨리 지나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전공의 선생님이 챙겨주시는 환자명단이나 I/O chart를 꼭 가져가서 병명과 특이사항을 읽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실습 둘째 날부터는 관심 가는 환자 몇 명의 EMR 경과기록지를 회진 전에 미리 확인해봅시다. 특히 전날 수술했던 환자는 그 다음 날 아침 경과기록지와 환자 상태가 집도의의 '성적표'라고 합니다. 소소한 예습으로 교수님과 어색하지 않은 회진을 돌 수 있습니다.
외래는 환자를 다루고 대하는 방법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지식보다는 환자를 유심히 살펴보는 교수님을 관찰해봅시다. 아래는 정형외과의 모 교수님이 외래에서 제게 직접 해주신 말씀으로, '살펴봄'의 의미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의사는 환자가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 모습, 말, 행동, 옷차림 등을 예민하게 관찰해야 하고, 이전 외래 때보다 나아졌는지 나빠졌는지 한번에 알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엔 지식으로 보지만 나중엔 의학적 직관, 느낌이 중요하다. 또 그런 자기 느낌을 믿을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온다."라고 말이죠.
수술은 병원에 처음 온 실습생들에게 가장 흥미가 많은 일정입니다. TV에서 보던 녹색 파랑색 수술보와 메스라니! 하지만 정작 수술대는 외과의사, 간호사, 마취과 의사 등등 사람으로 온통 가려지고 설령 비디오로 수술과정을 보여줘도 '빨간 건 피, 흰 건 뭐지?' 갸우뚱 한 채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종종 스크럽을 서기도 하지만 또 몇 시간 수술기구를 붙잡고 서 있다보면 슬슬 피곤이 몰려옵니다.
보통 한 수술을 최소 2-3번 이상 봐야 Anatomy와 Approach 과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회진과 마찬가지로 '아는 만큼' 집중할 수 있는 거죠. 여러 수술을 참관하다보면 꼬꼬마 학생들도 눈치가 생기는데, 신기하게도 잘 되는 수술은 시원시원 재미가 느껴지고, 집도의가 힘들어하는 수술은 참관하는 학생도 힘이 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회진, 외래, 수술 - 세 가지 일정 곳곳에선 예기치 못한 질문들이 날아오기도 합니다. 답을 못하고 우물거리는 게 대부분인데, 운 좋으면 교수님이 친절히 알려주시지만, 보통은 핀잔과 함께 새로운 숙제가 탄생합니다.
일단 대답은 많이 해봅시다. 맞으면 칭찬받아서 좋고, 틀리면 부끄러워서 좋습니다. 당장은 무안하지만, 그런 수치심(?)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안 틀려야지' 다짐도 되고요. 병원 생활에는 몇 가지 진리가 있는데, 하나는 '모르는 것은 반드시 즉시 찾아본다', 그리고 '한 번 질문한 것은 나중에 또 질문한다'입니다. 두 가지만 기억하시면 즐거운 질문타임을 보낼 수 있습니다.
PK 실습의 꽃, 프레젠테이션 준비 백서!
PK 생활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제일 발전하게 되는 스킬(?) 중 하나가 프레젠테이션입니다. 대표적으로 교수님이나 레지던트 선생님이 지정해주는 환자에 대한 케이스 발표와, 논문을 읽고 요약하는 논문 발표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케이스 발표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케이스 발표란 환자가 해당 병원에 내원하게 된 증상과 이전 병력, 내원 이후 퇴원하기까지(또는 현재까지) 질병경과와 시행한 치료법을 정리한 뒤 해당 질병에 대해 교과서 및 논문을 바탕으로 한 Disease Review를 덧붙이는 프레젠테이션입니다. 보통 발표 주제를 월요일에 받고,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발표를 하게 됩니다.
병원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시간엄수'입니다. 보통 학생들의 케이스 발표는 5-10분이 주어집니다. 실제로 학회에서 한 꼭지 발표도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으니, 비슷한 분량의 발표를 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핵심을 간결하게 요약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핵심은 '질병'보다 '증상'
여기서 핵심이란 환자가 '가장 불편해하는 증상, 증상 조절을 위해 시행한 치료, 그로 인한 증상의 경과'입니다. 경험이 쌓인 교수님들은 질병보다는 증상 중심으로 환자를 돌보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습 초기 발표 당시, 학생이나 의사 초년병 선생님들은 질병에 집중하다보니 종종 환자의 호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예를 들어, 암 환자 같은 장기 입원환자는 변비가 무척 중요한 증상이라고 합니다. 입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면 거의 대부분 변비가 생기는데, 큰 질병 치료(증상보다 질병의 병태생리를 바꿔주는 치료-증상 개선과 꼭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에만 집중하여 방치하다보면 변비를 조기에 manage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부터 강한 하제를 쓰는데, 점점 더 많은 양을 처방하다가 마비성 장폐색이나 장 천공, 장 출혈 등이 발생해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환자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암질환 뿐만 아니라 변비증상에도 주목해야 하는 거죠.
수술에는 '수술일기' 환자에겐 '케이스일기'
케이스 발표의 또 다른 의의는 '환자 manage를 복습하는 공부'라는 것입니다. 몇 달 전 생로병사 100회 특집 1부에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님 편이 방송되었는데 놀라웠던 것은 교수님이 20대 레지던트 때부터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자신이 참여한 모든 수술을 기록해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교수님은 수술이 끝나는 즉시, 어떻게 병소에 접근을 했고 위기상황에 어떤 대처를 했는지 상세히 기록하면 그 수술을 두 번 해보는 것과 마찬가지고, 잘한 점 잘 못한 점 등을 찾아 스스로 개선할 수 있어 자신감이 쌓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방송을 보고서, 수술을 수술일기로 복습하는 것처럼 케이스 발표는 자신이 환자를 돌보았던 방식을 복습하고 피드백하는 중요한 절차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당연한 정의이지만, 개인적인 경험에서 이것을 기억하며 준비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발표의 질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국시에도 도움 되는 '착한' 케이스
사실 이런 큰 의미가 아니더라도, 케이스로 주어지는 환자들은 대부분 매우 협조적이며 전형적인 질병 경과를 밟는 좋은 표본(?)이기 때문에 질병공부(Disease Review)만 해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만약 케이스를 직접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해당 과의 가장 주된 질환을 가진 환자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소화기 내과의 위 궤양, 산부인과의 조산, 신경외과의 지주막하 출혈 등등) 케이스 준비는 짧게는 1시간, 길면 이틀이나 사흘도 소요되는 에너지 소모가 많은(!) 활동입니다. 이왕 시간과 체력을 쓸 바에야 값어치 있고 국시에도 출제되는 메이저 질환을 맡는 게 좋겠죠.
Disease Review의 참고자료는 각 과의 교과서(내과-Hasrrison, 외과-Sabiston, 산부인과-Novak & Williams 등등)이나 최신 Review 논문이 추천됩니다. 도표나 그림은 교과서, PPT 본문은 Review 논문에서 따오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논문은 인용지수가 어느 정도 보장된(SCI, SCIE) 저널에 실린 것인지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외국 의과대학 수업자료 역시 신뢰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영상의학 자료 판독은 Learing Radiology (http://www.learningradiology.com/), Radiopaedia (http://radiopaedia.org/) 가 도움이
됩니다.
모든 의대와 병원 PPT가 그렇듯 화면에 글씨가 무척 많을 수 밖에 없지만, 틈틈이 그림과 도표를 넣어야 듣는 사람들도 지치지 않고 집중할 수 있습니다. 어떤 PK들은 매끄러운 발표를 위해 대본을 준비하지만, 대본은 특별히 준비하라는 지시사항이 없다면 안 보는 것이 좋습니다.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깔끔한 설명과 꼭 필요한 글, 그림만이 포함된 발표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쓰다보니 장황한 Pre-rounding이 되었습니다. 일부 독자분들에겐 벌써 회진이 끝나고, 몽둥이도 맞았을지도 모르겠군요. 다들 아실테지만 실습 막판으로 갈수록 괴이한 스킬이 늘어납니다. 회진에 늦어도 안 들키기, 외래/수술 자체 방학하기. 질문에 대답 끝까지 안하기, 환자 한 번도 안보고 PPT 만들기. 경과 기록 10일치 뭉뚱그리기, 내가 모르는 검사기록 없애기, 퍼시픽으로 질병 리뷰하기, 나눠서 발표하기로 한 논문 한 명에게 몰아주기, 교수님 말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잊어버리기 등등 셀 수도 없는데, 사실 저만큼 재밌는 PK생활의 소소한 추억거리도 없습니다.
다만 가끔은 원칙을 지켜 성실히 실습에 임하는 뿌듯함 역시 큰 추억으로 남기에, PK의 Pre-rounding을 적극 추천드리는 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