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가는 해외여행[16]

양기화
발행날짜: 2015-02-03 05:47:14
  • 우리는 스페인으로 간다

꿈꾸는 카사블랑카

카사블랑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12세기 무렵 이 지역에는 '안파'라고 불리는 베르베르족의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이 유럽국가의 배를 공격하는 해적들의 기지가 되면서 1468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 마을을 파괴했다. 1515년에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곳을 점령하여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카사블랑카라고 명명했다.

카사블랑카는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파괴되면서 잊혀졌다가 18세기 말에 알라위의 술탄 시디 무하마드 이븐 아브드 알라가 재건했다. 처음에는 스페인과 그 밖의 유럽 상인들이 주로 정착하다가, 얼마 후 프랑스인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메종블랑슈(프랑스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카사블랑카 못지않게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여행 7일째이다. 5시에 모닝콜, 6시에는 식사를 하고, 7시에 호텔을 나선 것은 러시아워 전에 카사블랑카를 빠져나가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어제 저녁에 카사블랑카에 들어올 때 거리에서 버린 시간을 생각하면 이른 아침에 움직이는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도 좋을 듯하다. 이날 패스를 거쳐 탕헤르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모닝콜에 눈을 뜨면서 멍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밤새 불을 켜고 잤기 때문이다. 날아다니는 바퀴벌레가 나온다고 해서이다. 바퀴벌레는 환한 곳에는 돌아다니지 않는다.

여명의 무하메드5세 광장.
호텔을 출발한 버스가 처음 멈춘 곳은 무하메드5세 광장이다. 동쪽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이른 시간이라서 우리 같은 관광객을 제외하고 현지 사람들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그래도 모로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는데, 이 도시의 중심이라는 무하메드5세 광장이 한낮에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다. 분명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곳곳에 앉아서 그렇게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는 이어서 하산2세 모스크에 멈춘다. 이 모스크는 1983년 공사를 시작해서 1993년에 완공을 보았다. 국민이 10년을 먹고살 수도 있는 10억불을 국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모아 공사비로 썼다고 해서 국민적 불만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슬람국가에서는 모스크가 사람들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하산2세 모스크 건설을 결정했을 것이지만, 그래도 국민들의 부담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경복궁 중수에 당백전을 발행했던 대원군 역시 백성들의 원한을 샀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금 경복궁은 우리 국민은 물론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의 명소가 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하산2세 모스크의 건설에는 종교적 의미 이외에도 미래지향적인 판단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산2세 모스크(좌), 출입문의 아라베스크 장식(우).
하산2세 모스크는 카사블랑카의 동쪽 끝 대서양 해안을 매립하여 지었는데, '알라의 성좌는 물 위에 세워져 있다'라는 코란의 구절이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서양 쪽에서 바라보면 물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건물의 모습을 보면 특히 코로도바에서 본 옛 이슬람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12세기 이후 가톨릭의 지배를 받은 이베리아반도의 무어인 건축가들이 이슬람 전통 건축양식에서 만들어낸 칼리프 양식에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을 적절하게 가미한 '무데하르 양식'을 현대적으로 다시 해석하여 지어낸 것 같다. 말발굽모양의 회랑구조나 벽면을 장식하는 정교한 이슬람 전통문양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모습이다.

하산2세 모스크 미나렛(우)과 광장(좌).
길이 200m 폭 100m의 하산2세 모스크는 바다를 배경으로 앉았고, 사원 앞으로는 널따란 광장을 두어 사원 내부에 2만5천명 외부에 8만 명이 모여 동시에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한다. 광장 앞으로는 기도에 참석하는 사람을 위한 여러 개의 공중목욕탕과 이슬람 학교, 모로코 역사박물관, 도서관, 그리고 주차장이 들어서 있어 전체 면적이 9헥타르에 달하는 복합건축물이다. 하산2세 모스크는 메카에 있는 알 하람 모스크,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 모스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210m에 달하는 미나렛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은 물론 모스크 내부시설은 최고의 모스크라고 한다.

하산2세 모스크에서 바라본 카사블랑카 등대.
하산2세 모스크에서 건너다보이는 서쪽에는 카사블랑카등대가 아스라하게 보인다. 1905년에 건설된 카사블랑카 등대는 전체 높이 65m로 하산2세 모스크의 미나렛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제일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하산2세 모스크에서 카사블랑카 등대 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는 일몰의 광경이 매우 아름답다고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아침 시간에 찾는 바람에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카사블랑카를 빠져나가는데 가이드가 "저곳이 영화 <카사블랑카>에 나오는 릭스카페"라고 가르쳐준다. 영화 카사블랑카는 전날 이곳으로 오는 길에 버스에서 DVD로 보았는데, 자꾸 끊기는 바람에 집중할 수 없었다. TV를 통해서 여러 번 감상했지만, 잉그리드 버그만이 타고 있는 비행기가 안개가 자욱한 활주로를 차고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험프리 보가드의 모습만 기억에 남아 있다.

마이클 커티스감독의 1942년작 <카사블랑카>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으로 어수선한 프랑스령 모로코 제1의 항구도시 카사블랑카에서는 암시장과 도박이 판을 치고 있었다. 이곳에서 미국인인 릭(험프리 보가트)은 릭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미국으로 가기 위해 비자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틈에 섞여 레지스탕스 리더인 라즐로(폴 헨라이드)와 아내 일자(잉그리드 버그만)가 릭의 카페를 찾는다. 일자는 릭이 파리에서 지낼 무렵 사랑하던 사람이다.

라즐로는 릭에게 미국으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을 부탁하지만 아직도 일자를 잊지 못하는 릭은 선뜻 라즐로의 청을 들어주지 못한다. 라즐로는 뒤쫓는 경찰서장 르노와 독일군 소령 스트라세는 릭의 카페를 감시하지만, 결국 릭은 라즐로와 함께 일자를 떠나보낸다. 재미있는 것은 카사블랑카에 릭스 카페가 두곳이 있다던가? 그리고 영화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한 장면도 찍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영화 <카사블랑카>의 후광을 업고 카페가 등장한 셈이다.

의사 가운처럼 생긴 하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보니 카사블랑카도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 같다. 서둘렀음에도 도로는 차들로 채워지고 있어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이제 우리는 패스로 간다. 구절양장 같은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는 11시쯤 패스를 50킬로 앞둔 휴게소에 멈춘다.

이곳에서 모로코의 한인들 사이에 전설로 통한다는 한국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차진 쌀로 지은 밥에 앙배추로 담근 김치, 깍두기, 고추절임, 계란말이 등을 반찬으로 곁들인 깔끔한 차림이다. 여행을 떠나고는 처음 먹는 한식이라서인지 속이 차분하게 가라 않는다. 더해서 진한 커피까지 마시니 금상첨화이다.

패스는 모로코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이다. 사실 자유여행을 하는 분들은 마라케시를 추천한다는데 단체상품에서는 빠지는이유를 모르겠다. 카사블랑카 남쪽에 있는 아틀라스 산맥 북쪽 기슭에 위치한 마라케시는 1062년 베르베르인이 세운 알모라비데 왕국의 수도로 건설되었고, 이어 들어선 알모아데 왕국에서도 수도였다. 따라서 모로코에서는 페스 다음으로 오래 된 도시이다.

옛 이슬람 시가지는 붉은 색으로 채색된 미로와 같은 시가와 독특한 건물들로 눈길을 끌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마라케시가 이 지역을 다스리는 왕국의 이름으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오늘날의 모로코라는 국명의 어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의 저자 린 마틴 부부 역시 모로코에서는 마라케시에서 머물면서 모로코의 음식과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특히 밤이 되면 자마엘프나광장에 들어서는 수백 개의 노천식당은 경이롭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에 프랑스 화가 자크 마조렐이 설계하고 이브 생 로랑이 별장으로 사용했다는 마조렐 정원만을 언급하고 옛 이슬람 시가지는 가보지 않은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관심사가 우리와는 다른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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