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4]
의대 졸업과 국가고시에 무사히 합격하면, 의사 면허와 함께 한 명의 의사가 탄생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차 진료의와 일반 개원의 제도가 뚜렷하지 않다. 졸업 직후 개원할 만한 여력도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없다.
그래서 졸업 후 제일 먼저 택하는 길은 종합병원 인턴이 되는 것이다. 졸업 직후 바로 환자를 진료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하고 겁도 난다. 의사들 스스로도 전공이 없으면 불안하고 의료사회에서 다소 무시 당하는 풍토가 있어 종합병원에서의 인턴–레지던트 과정은 당연시 되고 있다.
2008년 이후 꾸준히 배출되는 한해 의사 수는 점차 줄었다. 2011년도에는 3095명의 의사가 배출되었다. 전국에 필요한 종합병원의 인턴 수는 3800여 명 정도로, 올해(2015년)에는 700~800여 명이나 인턴 숫자가 부족해서 수급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통은 의과대학–모교병원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모교병원에서 인턴을 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방 2차병원의 경우 인턴 이후의 전공 선택 전망이 밝지 않아서, 혹은 모교병원보다 더 큰 병원에서 인턴을 하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올해 졸업한 동기들 중, 입대하는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교 병원에 인턴을 지원했다.
모교 졸업생은 매해 대략 37~40명 사이이고 모교 병원에서 필요한 인턴수는 150~160명 가량 되기 때문에 다른 학교 출신의 선생님들과 지내게 된다. 선배들에 따르면 6년 동안 좁은 의대를 벗어나 100명이 넘는 새로운 동기들이 생기는 것은 꽤나 흥분되는 일이라고 했다. 나 역시 다른 학교 출신동기들과 함께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것만 같았다.
종합병원에 따라 규모도, 복리후생도, 월급도, 이후의 전공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병원 간에도 공공연하게 서열이 존재하고 인턴 지원 시기에는 병원 배치표도 있다. 의과대학 시절 내신과 국시 시험 점수에 따른 병원 배치표가 묘했다. 대학 입시와는 달리 인턴 지원을 도와주는 학원 시설이 없기 때문에 배치표는 선배들의 선례나 학생들의 성향 등을 자체 수합해서 만든 것이었다. 좁은 사회에서 서로 지원하고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오히려 배치표가 배치를 만드는 경향도 존재하는 듯했다.
면접이라 해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몰랐는데 선배들의 인계로는 그냥 가서 보고 오면 된다고 했다. 병원 교육수련부 홈페이지에 있는 ‘시술교육동영상’ 중 부족한 부분을 보는 정도로 준비를 마쳤다.
아침 7시 40분까지 6층 대강당으로 지원자들이 소집되었다. 모교 동기들은 인턴 원서 접수 첫날과 마지막 날에 대거 몰려 접수를 했기 때문에 접수번호 1~20번과 60~80번에 몰려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학교에서 온 지원자들은 큰 강당에 띄엄띄엄 앉거나 삼삼오오 앉아있었다. 반면 우리는 한곳에 모여 낄낄되면서 기다렸다. 그래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매한가지.
전년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기 시험은 안내문에 나온 항목 이외에도 아주 뜬금없는 항목들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설사 못하더라도 합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긴장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예전에 출제되었던 천식흡입제의 사용 방법은 학생 강의나 실습 때 들은 이후로는 까마득했기에 혹여 생뚱맞은 항목들은 모두가 모르는 것이 나왔으면 했다.
내가 실기 시험을 본 두 가지 항목은 소아기도폐색과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vertical mattress)이었다. 소아기도폐색과 봉합법 모두 국시 항목이라 크게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봉합 역시 법이라고 하지만 학생 때 외과 실습을 돌면 한 번쯤 해보기 때문에 무리는 없었다.
국시를 볼 때는 시험 장소에 들어가면 인사하지 않고 바로 모형을 가지고 실기시험을 치르도록 안내가 되었다. 그 기억 때문에 면접실에 들어가며 인사를 쭈뼛쭈뼛하니 교수님으로부터 애정이 담긴 꾸지람을 들었다. “또 울산대야. 야 너! 들어왔으면 인사를 똑바로 해야 할 것 아니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데. 쭈뼛쭈뼛대지 말고 다시 인사해.”
힘차게 수험 번호와 이름을 다시 말하고 인사를 드리고는 소아기도폐색 실기를 시행했다. 소아기도폐색은 국시에서도 매우 쉬운 항목에 속하기에 어려움 없이 시행했다. 추가적으로 한두 번의 반복 시행 이후에도 기도 이물질이 제거되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행 도중 아이의 의식이 소실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의식이 있을 동안에 는 이물질이 배출될 때까지 5번까지 반복 시행하여야 하고, 의식 소실 때에는 소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것이라고 무난하게 대답하고 나왔다.
면접이 끝난 후 당황한 동기들의 에피소드도 있었다. ‘의식 소실이 되면 당황하지 말고 바로 윗연차 레지던트에게 알린다’ ‘개흉수술을 준비한다’ 등의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동기 중 한 명은 최근에 본 의학 만화 때문에 빨대로 이물질을 한쪽 기관지에 밀어 넣어 다른 한쪽 폐로 호흡을 일단 유지하게 한다고 대답했단다. 순간 교수님 세 분이 빵 하고 웃음이 터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두 번째는 봉합법.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이었는데, 외과 실습을 돌면서 자주 해봤기 때문에 역시나 무리 없이 끝냈다. 면접관 중에 산부인과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대충 하지마라 봉합은 중요하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길을 주어 더욱 열심히 했다.
이후 면접은 평이하게 진행되었고 간단한 자기소개와 질문들이 오가며 마무리가 되었다. <5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 제일 먼저 택하는 길은 종합병원 인턴이 되는 것이다. 졸업 직후 바로 환자를 진료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하고 겁도 난다. 의사들 스스로도 전공이 없으면 불안하고 의료사회에서 다소 무시 당하는 풍토가 있어 종합병원에서의 인턴–레지던트 과정은 당연시 되고 있다.
2008년 이후 꾸준히 배출되는 한해 의사 수는 점차 줄었다. 2011년도에는 3095명의 의사가 배출되었다. 전국에 필요한 종합병원의 인턴 수는 3800여 명 정도로, 올해(2015년)에는 700~800여 명이나 인턴 숫자가 부족해서 수급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통은 의과대학–모교병원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모교병원에서 인턴을 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방 2차병원의 경우 인턴 이후의 전공 선택 전망이 밝지 않아서, 혹은 모교병원보다 더 큰 병원에서 인턴을 하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올해 졸업한 동기들 중, 입대하는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교 병원에 인턴을 지원했다.
모교 졸업생은 매해 대략 37~40명 사이이고 모교 병원에서 필요한 인턴수는 150~160명 가량 되기 때문에 다른 학교 출신의 선생님들과 지내게 된다. 선배들에 따르면 6년 동안 좁은 의대를 벗어나 100명이 넘는 새로운 동기들이 생기는 것은 꽤나 흥분되는 일이라고 했다. 나 역시 다른 학교 출신동기들과 함께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것만 같았다.
종합병원에 따라 규모도, 복리후생도, 월급도, 이후의 전공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병원 간에도 공공연하게 서열이 존재하고 인턴 지원 시기에는 병원 배치표도 있다. 의과대학 시절 내신과 국시 시험 점수에 따른 병원 배치표가 묘했다. 대학 입시와는 달리 인턴 지원을 도와주는 학원 시설이 없기 때문에 배치표는 선배들의 선례나 학생들의 성향 등을 자체 수합해서 만든 것이었다. 좁은 사회에서 서로 지원하고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오히려 배치표가 배치를 만드는 경향도 존재하는 듯했다.
면접이라 해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몰랐는데 선배들의 인계로는 그냥 가서 보고 오면 된다고 했다. 병원 교육수련부 홈페이지에 있는 ‘시술교육동영상’ 중 부족한 부분을 보는 정도로 준비를 마쳤다.
아침 7시 40분까지 6층 대강당으로 지원자들이 소집되었다. 모교 동기들은 인턴 원서 접수 첫날과 마지막 날에 대거 몰려 접수를 했기 때문에 접수번호 1~20번과 60~80번에 몰려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학교에서 온 지원자들은 큰 강당에 띄엄띄엄 앉거나 삼삼오오 앉아있었다. 반면 우리는 한곳에 모여 낄낄되면서 기다렸다. 그래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매한가지.
전년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기 시험은 안내문에 나온 항목 이외에도 아주 뜬금없는 항목들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설사 못하더라도 합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긴장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예전에 출제되었던 천식흡입제의 사용 방법은 학생 강의나 실습 때 들은 이후로는 까마득했기에 혹여 생뚱맞은 항목들은 모두가 모르는 것이 나왔으면 했다.
내가 실기 시험을 본 두 가지 항목은 소아기도폐색과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vertical mattress)이었다. 소아기도폐색과 봉합법 모두 국시 항목이라 크게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봉합 역시 법이라고 하지만 학생 때 외과 실습을 돌면 한 번쯤 해보기 때문에 무리는 없었다.
국시를 볼 때는 시험 장소에 들어가면 인사하지 않고 바로 모형을 가지고 실기시험을 치르도록 안내가 되었다. 그 기억 때문에 면접실에 들어가며 인사를 쭈뼛쭈뼛하니 교수님으로부터 애정이 담긴 꾸지람을 들었다. “또 울산대야. 야 너! 들어왔으면 인사를 똑바로 해야 할 것 아니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데. 쭈뼛쭈뼛대지 말고 다시 인사해.”
힘차게 수험 번호와 이름을 다시 말하고 인사를 드리고는 소아기도폐색 실기를 시행했다. 소아기도폐색은 국시에서도 매우 쉬운 항목에 속하기에 어려움 없이 시행했다. 추가적으로 한두 번의 반복 시행 이후에도 기도 이물질이 제거되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행 도중 아이의 의식이 소실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의식이 있을 동안에 는 이물질이 배출될 때까지 5번까지 반복 시행하여야 하고, 의식 소실 때에는 소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것이라고 무난하게 대답하고 나왔다.
면접이 끝난 후 당황한 동기들의 에피소드도 있었다. ‘의식 소실이 되면 당황하지 말고 바로 윗연차 레지던트에게 알린다’ ‘개흉수술을 준비한다’ 등의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동기 중 한 명은 최근에 본 의학 만화 때문에 빨대로 이물질을 한쪽 기관지에 밀어 넣어 다른 한쪽 폐로 호흡을 일단 유지하게 한다고 대답했단다. 순간 교수님 세 분이 빵 하고 웃음이 터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두 번째는 봉합법.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이었는데, 외과 실습을 돌면서 자주 해봤기 때문에 역시나 무리 없이 끝냈다. 면접관 중에 산부인과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대충 하지마라 봉합은 중요하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길을 주어 더욱 열심히 했다.
이후 면접은 평이하게 진행되었고 간단한 자기소개와 질문들이 오가며 마무리가 되었다. <5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