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 사고 보상재원 부담, 의료계-정부 여전히 평행선

박양명
발행날짜: 2015-12-16 05:15:23
  • 제도 초기부터 불신의 문제…환자단체마저 "차라리 제도 폐기하라"

국가가 70%, 의료계가 30%로 설정 돼 있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사업 재원 분담비율이 적정할까?

제도는 2012년부터 시행됐지만 정부와 의료계·학계의 시각차는 여전했다. 심지어 시민단체도 요구하지 않는 제도라며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낫겠다는 강도높은 비난까지 제기됐다.

정부는 내년 4월 8일까지 관련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이와 관련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5일 서울 전국경제인연합 회관에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사업의 효율적 재원 운영 방안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발주로 보사연은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연구책임을 맡은 윤강재 부연구위원은 7:3의 분담비율을 유지하되 탄력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임상현장에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의료기관이 재원 분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이충훈 부회장은 "지난 3년간 불가항력 의료분쟁 보상금으로 고작 10건에 2억원이 쓰였다"며 "뇌성 마비 보상은 0건이고 10건이 모두 산모 또는 신생아 사망 부분이다. 초기 설정된 재정 22억원이 남아있는데 이대로라면 앞으로 10년은 더 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인에게 과실이 없음에도 불가항력적이라는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사회적 차원에서 국가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제도 설정 때부터 정부와 의료계의 불신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는 진단도 나왔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의료분쟁조정법TFT 김암 위원장(서울아산병원)은 "수년이 지났음에도 제도가 충분히 정착되지 않은 것의 근간은 상호 불신"이라며 "산부인과 의사들은 삶의 질을 표기하면서까지 새 생명 하나라도 무사히 태어나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도 분담금을 내야 한다니 좌절감이 엄청나다"고 토로했다.

이어 "산모와 태아가 의사 손에서 사망했을 때 그 상황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며 "의사들이 정부를 믿을 수 있으면 제도는 정착될 것이다. 현재 22억원의 재원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정확한 통계가 없는 상황이다. 통계를 갖고 예산을 짜려면 5년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소윤 교수
제도 초기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 설계에 참여했던 연세의대 김소윤 교수는 국가 100% 부담을 강조했다.

김소윤 교수는 "이 제도는 일본의 보상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라며 "일분은 산모들이 출산 전 보험료를 내고, 출산에 문제가 없으면 국가가 출산 축하금에 산모들이 낸 보험료를 더해서 지급한다. 뇌성마비 같은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모두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무리 제도 초기 논의를 다시 돌이켜봐도 (의료계에 부담을 지우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며 "이 제도를 산부인과에 먼저 적용한 것은 기피과였던 산부인과의 기를 살려주고 산부인과 의사들이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정부 제도에 협조했더니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됐다"고 비판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도 제도가 만들어질 때부터 반기지 않은 제도라며 힘을 실었다.

안기종 대표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를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요구한 사람이 없다. 굳이 예산을 들여 연구할 필요도 없다"며 "그냥 폐지하면 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3년 동안 10건에 보상이 됐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며 "이미 만들어진 제도니 잘 활용하려면 보상 한도를 최소 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적어도 불가항력은 의료분쟁 조정 신청이 들어오면 자동 개시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위 확장 가능성 열려있는 문제…국가 전액 부담 무리"

국가가 100% 부담하는 것은 무리라는 정반대의 의견도 나왔다. 주로 정부 관계자들이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재정연구본부 최성은 연구위원은 "이 제도 자체가 앞으로 산부인과에만 한정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다"며 "범위를 넓히고자 할 때는 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전액 지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재정분담방식"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얼마나 분담해야 하냐는 문제는 통계가 축적돼야 한다"며 "지금도 다시 논의하기에는 기금이 축적된 상태로 굉장히 시기 상조다. 적립금을 소진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어느 정도 소진한 다음 다시 논의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내년 4월까지는 개선책을 내놔야 하는 복지부는 보사연 연구 결과를 비롯해 좀 더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정영훈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정책적인 설계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토로하며 "제도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저출산 문제나 의료사고의 전반적인 문제 등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분담금 100%를 부담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국회와 논의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분담하자는 것이 재정 분배에서 기본 원칙"이라고 못을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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