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직해제 통보 잇따라…교수들 "평가는 해외서도 일반적"
최근 대학병원이 경영난이 극심해지면서 나태한 교수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겸직해제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며 이같은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메디칼타임즈>는 병원계 파격적인 변화의 빛과 그림자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상> 정년보장 교수도 실적 없으면 퇴출
<하> 교수들 '실적'에 매몰되나
# H대학병원은 지난 주, 정년을 몇년 앞둔 정형외과 모 교수를 겸직해제하기로 결정했다. 월 수술 건수는 5건에 못미쳤고, 그나마도 의료사고 등 환자 민원이 발생했다. 게다가 무리하게 비급여 진료를 요구한다는 레지던트의 제보까지 이어졌다.
해당 병원은 최근 경영난까지 겹치면서 모 교수를 도저히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해 칼을 뽑은 것이다.
최근 서울대병원을 시작으로 H대학병원 등 대학병원들이 나태한 교수에 대한 강도높은 개혁을 시작하고 있다. 한번 정교수로 임용되면 정년을 보장받던 시절은 이제 끝난 셈이다.
H대학병원은 올해 초 1명(외과) 겸직해제 통보한 데 이어 최근 1명(정형외과)을 추가로 겸직해제를 결정했다. 앞서 서울대병원은 1명(흉부외과)을 겸직해제한 상태다.
두 대학병원 사례 모두 해당 교수가 가처분신청을 제기, 처벌 규정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병원 측이 패소했지만 이 같은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서울에 위치한 S대학병원 경우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진료 및 연구실적이 부진한 교수에 대한 겸직해제 통보를 시작했다.
한 해에도 수명씩 겸직해제 처분을 하고, 진료는 물론 연구실도 배정해주지 않는다. 일부 교육 혹은 봉사 부문에 집중하면서 의과대학 교수직만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괴감을 느껴 결국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병원 고위관계자는 "이번 소송에서 패소한 원인은 처분 규정이 없다는 이유였다"며 "이를 계기로 규정을 마련, 이와 같은 상황에 대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즉, 실적이 부진한 의대교수에 대한 징계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H대학병원장 또한 "과거에는 교수 겸직해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규정이 없었지만, 이번에 틀을 마련함에 따라 앞으로는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첫번째 교수 사례는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최근 두번째 사례는 다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겸직해제 된 교수는 정형외과 교수 평균 진료실적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진료 이외에도 연구, 교육 분야에서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은 지 오래됐다"고 덧붙였다.
"정년보장 교수도 평가 당연…해외 의과대학 이미 도입"
주목할 점은 이를 긍정적인 변화로 바라보는 교수가 상당수라는 것이다.
평가 기준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이라는 조건이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평가는 필요하다는 게 이를 찬성하는 교수들의 생각이다.
서울대병원 A교수는 "한번 교수는 평생 교수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라며 "미국만 해도 정년보장 교수에 대해서도 정기적인 평가를 실시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H대학병원 B교수는 "교수 선발과정에서 평가받고 이후로는 평가가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최근 불거지는 사례는 수십년 째 묵혀있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즉, 지금까지는 감히 추진할 수 없던 문제가 병원 경영악화와 맞물리면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울대병원 또 다른 교수는 "교수 한명으로 인해 동료 교수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며 "교수에 대한 평가제도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일반적인 것"이라고 했다.
연구 및 진료 실적이 우수한 의료진을 영입하려면 평가를 통해 그렇지 못한 교수를 내보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그의 설명.
또 다른 대학병원 모 교수는 "의대교수의 겸직해제는 단지 병원의 경영악화 때문이 아니다. 교수라는 직함만 갖고 자리만 차지하는 일부 교수가 실제로 있다"며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대교수는 단순히 교육을 전담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그에 대한 평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대학병원에는 중증도 높은 환자를 치료하는 만큼 평가에 고려돼야 할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