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를 주마간산하다(1)
오스트리아를 주마간산하다(1)
시차 때문인지 4시 반에 눈을 떴지만 어제의 강행군 탓에 몸은 천근만근이다.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는 다시 잠을 청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잠이 달아난 나는 트위터를 뒤져본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덕이다. 어제 밤늦게 숙소에 든 탓인지 오늘 아침 일정은 678로 간다.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한다는 말이다.
가지고 온 옷 가운데 제일 두꺼운 옷을 입기로 했다. 이번 여행경로 가운데 가장 북쪽이라서 추운 하루가 될 수도 있다. 버스에 오르니 아침 기온이 7도이다. 밤사이에 비가 더 내린 듯 공기가 상쾌하다. 어제는 몰랐지만 호텔은 호숫가에 있었다.
인구 857만(2015년 기준)의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중앙, 알프스산맥에 걸쳐 있는 내륙국가로 북쪽으로는 독일과 체코, 동쪽으로는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남쪽으로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그리고 서쪽으로는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9개의 연방 주로 이루어졌고, 수도는 동쪽 끝에 위치한 빈이다.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적으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이 꼽힐 정도로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독일과 함께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갈라진 것이 역사의 시작이다. 즉, 샤를마뉴 대제 시절 설립된 행정관구 오스트마르크(Ostmark)가 오스트리아의 기원이다.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세를 키운 합스부르크왕가가 15세기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하게 되면서 오스트리아왕국은 부르봉왕가의 프랑스왕국과 함께 유럽을 지배하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은 18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겨 부침을 겪다가 나폴레옹에게 패하면서 1806년 해체되었다.
이어진 오스트리아제국 역시 나폴레옹 이후 전개된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제국 내 다양한 민족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된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성립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듯 했다.
하지만 1914년 6월 28일 발생한 사라예보사건을 계기로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한 것이 발단이 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으로 참전했다가 패전하면서 대부분의 영토를 주변국가에 할양하게 되었다. 1918년 11월 11일 제국은 해체되었고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이 들어섰다.(1)
버스가 출발하면서 가이드가 린츠(Linz)을 소개한다. 린츠는 오스트리아 북부의 오버외스터라이히 주의 주도이며 193,814명(2014년 기준)이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체코국경으로부터 30km 남쪽에 있으며 도나우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태양계 행성의 운동법칙을 만든 수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와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가 린츠에서 살았으며, 아돌프 히틀러가 린츠 근처의 브라우나우암인에서 태어나 린츠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나치는 린츠에 대규모 건축을 계획했고, 산업화를 진행했다.(2)
린츠는 제철소가 유명한데, 철광석은 나지 않지만 도나우강을 통하여 독일에서 수입하는 철광석을 가공하여 수출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오스트리아 특히 린츠와의 인연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포항제철을 지을 때 일본에서 설비를 들여왔지만, 포항제철의 성장을 우려한 일본이 기술제공을 꺼렸다고 한다.
이때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는 푀스트알피네(Voestalpine)의 기술지원을 받게 되는데, 초대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여사가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다는 인연으로 가능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포항제철이 오늘날 세계최고의 철강회사로 성장할 것을 잘 예측했지만, 협력을 통한 상생을 모색하지 못하는 좁은 시야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오스트리아의 푀스트알피네는 더 넓은 시야를 가졌던 것 같다.
린츠시내를 빠져나간 버스는 이내 고속도로를 타고 슬로베니아로 향한다. 오스트리아 알프스를 따라 내려온 산록에는 구획이 잘된 초지가 펼쳐지고, 가끔은 노란 꽃이 만발한 유채밭이 애교처럼 섞여있다. 어려서 읽은 동화의 주인공 하이디가 어디선가 금방 나타날 것 같다. 손에 잡힐 듯한 산허리에는 이른 아침의 골안개인지 구름인지가 스멀스멀 흘러내린다.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영화 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이 영화에서 줄리엣 비노쉬는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제목의 연극에 시기를 달리하여 두 차례 출연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는 젊었을 때의 상대역을 맡으면서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말로야 스네이크’는 스위스의 실스마리아에 있는 말로야 계곡에서 볼 수 있는 구름 현상을 말한다. 고개를 넘어온 구름이 뱀처럼 흘러 순식간에 계곡을 뒤덮는 모습을 나타낸 이름이다. 이곳의 구름은 예측이 어렵고 잔혹한 뱀의 속성처럼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이 불가하고 은밀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3)
버스가 잘츠부르크 근처 휴게소에 섰다. 장거리운행 버스(Long Distance Coach)의 운전자에 대한 EU의 규제조치 때문이다. 휴게소 아래에 있는 호수는 한 폭의 그림이다. 건너편으로는 호수를 시립하듯 서 있는 산들의 허리에 목도리를 걸친 듯 구름이 걸쳐있고, 잔잔한 호수에는 요트들이 점점이 떠있다. 휴게소로 들어가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 하겠지만, 휴게소 안보다는 주변풍경이 더 눈길을 끈다. 그리고 보니 호숫가에 서 있는 나무들이 알록달록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들러보지도 못한 잘츠부르크(Salzburg)는 인구 146,631명으로 오스트리아에서 4번째로 크고, 음악도시로 알려져 있다. 위대한 지휘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가 이곳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현대의 뛰어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역시 이곳에서 태어났다. 과학자로는 도플러효과를 발견한 크리스티안 도플러(Christian Doppler)가 이곳 태생이다.
700년 경, 이 도시는 암염채굴을 통하여 만든 소금이 주요 산물이었다. ‘Salz’는 독일어로 소금을 뜻하므로 잘츠부르크라는 이름은 ‘소금의 도시’라는 의미이다.(4) 오스트리아에 음악을 유학하고 있는 700여명의 한국유학생들 가운데 많은 수가 잘츠부르크에서 학업에 전념하고 있을 것이다. 유학생중 일부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1999년 주오스트리아 대사 재직할 당시 창단한 한-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를 지나면서 빈 이야기를 빠트릴 수가 없겠다. 흔히 크루아상(croissant)이 프랑스빵으로 알려진 것은 1839년 말 오스트리아의 포병 장교였던 아우구스트 창(August Zang)이 파리에 개업한 빈풍의 빵집(Boulangerie Viennoise)에서 만들면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설에 따르면 헝가리에서 만들어진 빵으로 1683년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전해졌고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가지고 갔다고 전한다. 하지만 13세기에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미 킵펠(Kipferl)이라는 초생달 모양의 빵을 먹고 있었다.
크루아상의 유래에 관한 속설 가운데 이슬람과의 전투와 관련된 것도 있다. 732년 프랑크왕국이 우마이야의 공세를 격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과 1683년 오스트리아가 오스만제국의 침략을 격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이는 크루아상을 금지하기 위한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다.(5)
오스만제국이 빈을 공격할 때 한밤중에 터널을 뚫는 소리를 들은 제빵사의 신고로 터널을 파던 오스만군을 격퇴할 수 있었고, 왕실에서 이에 대한 보답으로 오스만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게 했다는 이야기는 마치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당시 오스만군의 땅굴전술은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의 장편소설 에서 자세히 적고 있다. 땅굴 파는 전문가로 구성된 부대가 있었고, 상대진영에서도 이 전술에 대책을 가지고 있었고, 오스만군은 이를 감추기 위하여 땅굴을 팔 때 발생하는 소음을 감추기 위하여 지상군이 포탄을 발사하였다는 것이다.(6) 역시 속설을 사실인양 믿어서는 안되겠다.
참고자료
(1) 위키백과. 오스트리아.
(2) Wikipedia. Linz.
(3) 오종희. [영화 읽기: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뱀의 몸짓. 웹진 2015.01.29
(4) Wikipedia. Salzburg.
(5) Wikipedia. Croissant.
(6)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지음.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 91-109쪽, 문학동네, 2007년.
시차 때문인지 4시 반에 눈을 떴지만 어제의 강행군 탓에 몸은 천근만근이다.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는 다시 잠을 청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잠이 달아난 나는 트위터를 뒤져본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덕이다. 어제 밤늦게 숙소에 든 탓인지 오늘 아침 일정은 678로 간다.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한다는 말이다.
가지고 온 옷 가운데 제일 두꺼운 옷을 입기로 했다. 이번 여행경로 가운데 가장 북쪽이라서 추운 하루가 될 수도 있다. 버스에 오르니 아침 기온이 7도이다. 밤사이에 비가 더 내린 듯 공기가 상쾌하다. 어제는 몰랐지만 호텔은 호숫가에 있었다.
인구 857만(2015년 기준)의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중앙, 알프스산맥에 걸쳐 있는 내륙국가로 북쪽으로는 독일과 체코, 동쪽으로는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남쪽으로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그리고 서쪽으로는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9개의 연방 주로 이루어졌고, 수도는 동쪽 끝에 위치한 빈이다.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적으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이 꼽힐 정도로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독일과 함께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갈라진 것이 역사의 시작이다. 즉, 샤를마뉴 대제 시절 설립된 행정관구 오스트마르크(Ostmark)가 오스트리아의 기원이다.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세를 키운 합스부르크왕가가 15세기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하게 되면서 오스트리아왕국은 부르봉왕가의 프랑스왕국과 함께 유럽을 지배하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은 18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겨 부침을 겪다가 나폴레옹에게 패하면서 1806년 해체되었다.
이어진 오스트리아제국 역시 나폴레옹 이후 전개된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제국 내 다양한 민족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된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성립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듯 했다.
하지만 1914년 6월 28일 발생한 사라예보사건을 계기로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한 것이 발단이 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으로 참전했다가 패전하면서 대부분의 영토를 주변국가에 할양하게 되었다. 1918년 11월 11일 제국은 해체되었고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이 들어섰다.(1)
버스가 출발하면서 가이드가 린츠(Linz)을 소개한다. 린츠는 오스트리아 북부의 오버외스터라이히 주의 주도이며 193,814명(2014년 기준)이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체코국경으로부터 30km 남쪽에 있으며 도나우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태양계 행성의 운동법칙을 만든 수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와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가 린츠에서 살았으며, 아돌프 히틀러가 린츠 근처의 브라우나우암인에서 태어나 린츠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나치는 린츠에 대규모 건축을 계획했고, 산업화를 진행했다.(2)
린츠는 제철소가 유명한데, 철광석은 나지 않지만 도나우강을 통하여 독일에서 수입하는 철광석을 가공하여 수출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오스트리아 특히 린츠와의 인연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포항제철을 지을 때 일본에서 설비를 들여왔지만, 포항제철의 성장을 우려한 일본이 기술제공을 꺼렸다고 한다.
이때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는 푀스트알피네(Voestalpine)의 기술지원을 받게 되는데, 초대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여사가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다는 인연으로 가능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포항제철이 오늘날 세계최고의 철강회사로 성장할 것을 잘 예측했지만, 협력을 통한 상생을 모색하지 못하는 좁은 시야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오스트리아의 푀스트알피네는 더 넓은 시야를 가졌던 것 같다.
린츠시내를 빠져나간 버스는 이내 고속도로를 타고 슬로베니아로 향한다. 오스트리아 알프스를 따라 내려온 산록에는 구획이 잘된 초지가 펼쳐지고, 가끔은 노란 꽃이 만발한 유채밭이 애교처럼 섞여있다. 어려서 읽은 동화의 주인공 하이디가 어디선가 금방 나타날 것 같다. 손에 잡힐 듯한 산허리에는 이른 아침의 골안개인지 구름인지가 스멀스멀 흘러내린다.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영화 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이 영화에서 줄리엣 비노쉬는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제목의 연극에 시기를 달리하여 두 차례 출연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는 젊었을 때의 상대역을 맡으면서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말로야 스네이크’는 스위스의 실스마리아에 있는 말로야 계곡에서 볼 수 있는 구름 현상을 말한다. 고개를 넘어온 구름이 뱀처럼 흘러 순식간에 계곡을 뒤덮는 모습을 나타낸 이름이다. 이곳의 구름은 예측이 어렵고 잔혹한 뱀의 속성처럼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이 불가하고 은밀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3)
버스가 잘츠부르크 근처 휴게소에 섰다. 장거리운행 버스(Long Distance Coach)의 운전자에 대한 EU의 규제조치 때문이다. 휴게소 아래에 있는 호수는 한 폭의 그림이다. 건너편으로는 호수를 시립하듯 서 있는 산들의 허리에 목도리를 걸친 듯 구름이 걸쳐있고, 잔잔한 호수에는 요트들이 점점이 떠있다. 휴게소로 들어가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 하겠지만, 휴게소 안보다는 주변풍경이 더 눈길을 끈다. 그리고 보니 호숫가에 서 있는 나무들이 알록달록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들러보지도 못한 잘츠부르크(Salzburg)는 인구 146,631명으로 오스트리아에서 4번째로 크고, 음악도시로 알려져 있다. 위대한 지휘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가 이곳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현대의 뛰어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역시 이곳에서 태어났다. 과학자로는 도플러효과를 발견한 크리스티안 도플러(Christian Doppler)가 이곳 태생이다.
700년 경, 이 도시는 암염채굴을 통하여 만든 소금이 주요 산물이었다. ‘Salz’는 독일어로 소금을 뜻하므로 잘츠부르크라는 이름은 ‘소금의 도시’라는 의미이다.(4) 오스트리아에 음악을 유학하고 있는 700여명의 한국유학생들 가운데 많은 수가 잘츠부르크에서 학업에 전념하고 있을 것이다. 유학생중 일부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1999년 주오스트리아 대사 재직할 당시 창단한 한-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를 지나면서 빈 이야기를 빠트릴 수가 없겠다. 흔히 크루아상(croissant)이 프랑스빵으로 알려진 것은 1839년 말 오스트리아의 포병 장교였던 아우구스트 창(August Zang)이 파리에 개업한 빈풍의 빵집(Boulangerie Viennoise)에서 만들면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설에 따르면 헝가리에서 만들어진 빵으로 1683년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전해졌고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가지고 갔다고 전한다. 하지만 13세기에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미 킵펠(Kipferl)이라는 초생달 모양의 빵을 먹고 있었다.
크루아상의 유래에 관한 속설 가운데 이슬람과의 전투와 관련된 것도 있다. 732년 프랑크왕국이 우마이야의 공세를 격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과 1683년 오스트리아가 오스만제국의 침략을 격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이는 크루아상을 금지하기 위한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다.(5)
오스만제국이 빈을 공격할 때 한밤중에 터널을 뚫는 소리를 들은 제빵사의 신고로 터널을 파던 오스만군을 격퇴할 수 있었고, 왕실에서 이에 대한 보답으로 오스만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게 했다는 이야기는 마치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당시 오스만군의 땅굴전술은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의 장편소설 에서 자세히 적고 있다. 땅굴 파는 전문가로 구성된 부대가 있었고, 상대진영에서도 이 전술에 대책을 가지고 있었고, 오스만군은 이를 감추기 위하여 땅굴을 팔 때 발생하는 소음을 감추기 위하여 지상군이 포탄을 발사하였다는 것이다.(6) 역시 속설을 사실인양 믿어서는 안되겠다.
참고자료
(1) 위키백과. 오스트리아.
(2) Wikipedia. Linz.
(3) 오종희. [영화 읽기: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뱀의 몸짓. 웹진 2015.01.29
(4) Wikipedia. Salzburg.
(5) Wikipedia. Croissant.
(6)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지음.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 91-109쪽, 문학동네, 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