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형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리더십'
고주형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리더십'
1. 연재를 시작하며
이 땅의 보건의료 지성을 꿈꾸는 자에게 묻고자 한다.
업(業)을 진화시킬 10년,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정으로 보건의료인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과언이 아니다. 해마다 선택의 기로에 선다. 정보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이미 알고 있던 길이나 지인의 의견에 매몰되기도 한다. 자존감과 사회적 직분을 유지하고 업(業)의 사명감을 느끼려면 다양한 경로를 탐색하고 각오를 다지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제약이 많다. 중요한 시기일수록 결정하기가 더욱 어렵다.
시대가 바뀌어도 예비 의료인의 고민 방식은 왜 변하지 않는가? 이 연재는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된다.
내 꿈을 좇을 것인가, 남의 꿈에 굴복할 것인가.
대학 입학을 기점으로 과거 12년을 돌아보고, 고개를 돌려 앞으로의 시간을 그려본다. 타 업종에 비해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다. 동기들도 같은 하루를 보낼 거라는 안도감, 사회가 존중해마지 않는 기관에 소속되었다는 것에 안주하기에는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너무 길다. 그리고 이 긴 기간이 개인에게 미칠 파급효과는 적지 않다.
대학과 개원가, 교육·연구와 진료, 혹은 학계와 업계로 양분되는 진로 획일화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학계에 적을 두더라도 끊임없이 업계와 소통한다. 경영진으로 경력 전환을 꿈꾼다. 보건의료 이외 직업군으로의 전환도 확대되고 있다. 본업과 생업의 분리는 지식인 사회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예비 의료인에게 진로결정이란 보기 많은 객관식에서 답 하나 고르는 과정처럼 보인다. 다 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결국 자기 외적 상황에 의해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사례를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그것에 맞추는 자신을 발견한다.
해내겠다고 결심한 일인가. 모아둔 나 자신을 모두 소진해서 얻은 결론인가. 스스로를 납득했는가.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다시 기회가 주어져도 결심의 변화는 없는가.
변혁은 졸업을 앞두고 시작한다
예비 의료인이 접하는 글은 제한적이다. 공부법과 전공과목 소개, 경험담을 담은 조언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가 길다. 그럼에도 예비 의료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미래를 그린 책은 적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라 추측한다. 본인 전공이 아닌 분야를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대학 선생의 학자적 겸손함일 수 있다.
실제로 A 선생은 교수로서 후배에게 줄 수 있는 경험의 깊이가 있다는 점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전공이 아니면 아는 것이 없어 한계를 절감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한 적도 있다. 그에게는 해당 선배를 연결해주거나 담당교수에게 문의하라는 말이 최선의 방법일지 모른다.
다른 분야에 비해 의료계의 현실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일 수 있고, 그 정도 배웠으면 학생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기대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학은 인술(仁術)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마음의 텃밭을 마련해야 한다', '헌신을 생활화해야 한다' 등의 일반적인 조언은 개인별 장래 선택에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최적의 길로 안내하는 데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본 연재의 핵심독자층을 졸업을 앞둔 의학·간호·보건대생으로 정했다. 다른 길을 간 고교 동기생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 더 이상 봐줄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시기. 지금 결정이 평생을 좌우할 것 같은 압박의 시기. 무엇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시기이다.
이 시점의 전환점이야말로 난생처음으로 초심이라는 것을 만들고 업의 관을 구축하기에 적기이다. 본인이 아닌 자기를 불태우고 늘 남처럼 살아온 삶에 종지부를 찍기를 바란다. 필자는 그들이 느끼는 강제적 변화의 종용에, 객관화라는 기댈 어깨를 내주고 싶었다.
나무를 심는 한마음, '희망'
통일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썼다는 지증대사탑비 비문에 이런 글이 있다. "지증대사는 홀로 깨치기를 좋아하고 지식을 전파하는 데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한 나무꾼이 나타나 먼저 안 사람이 나중에 깨우칠 사람을 위해 배운 것을 가르치는 데 소홀이 하면 안 된다고 꾸짖고 사라졌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지증대사는 법당을 세워 대중을 향한 법회를 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필자 역시 다년간의 경영자문을 통해 느낀 것을 후배들에게 알릴 의무를 느낀다. 본 연재를 통해 작은 희망이라도 남겨두고 싶다. 그러나 열심히 하면 뭐든 될 수 있다고 부추기는 딱딱한 글이 아니기를 바란다. 후배들이 꿈꾸는 과정을 지원하는 디딤돌로, 힘껏 밟고 넘기를 바란다.
독자 중에는 다른 생각의 틀로 바라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혹시 필자의 편향된 시각을 발견했다면 비판적으로 생각하되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생각이란 경험과 환경의 영향을 받을 뿐 정답이 없다.
본 연재는 크게 '예비 의료인의 마인드셋', '업을 진화시키는 앞으로의 10년', '자생력을 확보할 실행방안', 그리고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라는 네 가지 틀로 구성한다. 사람은 책에서 읽은 글귀가 내 마음속 이상과 일치할 때 힘을 얻는다고 한다.
필자는 이 글이 예비 의료인을 포함한 미래사회의 의료인이 꿈을 발견하고 밝은 내일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단 한 문장이라도 독자의 가슴을 울렸다면 필자는 의무를 다한 것이다. 그것이 '희망'이라는 단어로 발현되어 각자 독특한 길을 걷는다면 필자는 그 길의 갓길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1. 연재를 시작하며
이 땅의 보건의료 지성을 꿈꾸는 자에게 묻고자 한다.
업(業)을 진화시킬 10년,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정으로 보건의료인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과언이 아니다. 해마다 선택의 기로에 선다. 정보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이미 알고 있던 길이나 지인의 의견에 매몰되기도 한다. 자존감과 사회적 직분을 유지하고 업(業)의 사명감을 느끼려면 다양한 경로를 탐색하고 각오를 다지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제약이 많다. 중요한 시기일수록 결정하기가 더욱 어렵다.
시대가 바뀌어도 예비 의료인의 고민 방식은 왜 변하지 않는가? 이 연재는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된다.
내 꿈을 좇을 것인가, 남의 꿈에 굴복할 것인가.
대학 입학을 기점으로 과거 12년을 돌아보고, 고개를 돌려 앞으로의 시간을 그려본다. 타 업종에 비해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다. 동기들도 같은 하루를 보낼 거라는 안도감, 사회가 존중해마지 않는 기관에 소속되었다는 것에 안주하기에는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너무 길다. 그리고 이 긴 기간이 개인에게 미칠 파급효과는 적지 않다.
대학과 개원가, 교육·연구와 진료, 혹은 학계와 업계로 양분되는 진로 획일화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학계에 적을 두더라도 끊임없이 업계와 소통한다. 경영진으로 경력 전환을 꿈꾼다. 보건의료 이외 직업군으로의 전환도 확대되고 있다. 본업과 생업의 분리는 지식인 사회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예비 의료인에게 진로결정이란 보기 많은 객관식에서 답 하나 고르는 과정처럼 보인다. 다 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결국 자기 외적 상황에 의해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사례를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그것에 맞추는 자신을 발견한다.
해내겠다고 결심한 일인가. 모아둔 나 자신을 모두 소진해서 얻은 결론인가. 스스로를 납득했는가.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다시 기회가 주어져도 결심의 변화는 없는가.
변혁은 졸업을 앞두고 시작한다
예비 의료인이 접하는 글은 제한적이다. 공부법과 전공과목 소개, 경험담을 담은 조언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가 길다. 그럼에도 예비 의료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미래를 그린 책은 적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라 추측한다. 본인 전공이 아닌 분야를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대학 선생의 학자적 겸손함일 수 있다.
실제로 A 선생은 교수로서 후배에게 줄 수 있는 경험의 깊이가 있다는 점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전공이 아니면 아는 것이 없어 한계를 절감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한 적도 있다. 그에게는 해당 선배를 연결해주거나 담당교수에게 문의하라는 말이 최선의 방법일지 모른다.
다른 분야에 비해 의료계의 현실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일 수 있고, 그 정도 배웠으면 학생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기대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학은 인술(仁術)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마음의 텃밭을 마련해야 한다', '헌신을 생활화해야 한다' 등의 일반적인 조언은 개인별 장래 선택에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최적의 길로 안내하는 데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본 연재의 핵심독자층을 졸업을 앞둔 의학·간호·보건대생으로 정했다. 다른 길을 간 고교 동기생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 더 이상 봐줄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시기. 지금 결정이 평생을 좌우할 것 같은 압박의 시기. 무엇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시기이다.
이 시점의 전환점이야말로 난생처음으로 초심이라는 것을 만들고 업의 관을 구축하기에 적기이다. 본인이 아닌 자기를 불태우고 늘 남처럼 살아온 삶에 종지부를 찍기를 바란다. 필자는 그들이 느끼는 강제적 변화의 종용에, 객관화라는 기댈 어깨를 내주고 싶었다.
나무를 심는 한마음, '희망'
통일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썼다는 지증대사탑비 비문에 이런 글이 있다. "지증대사는 홀로 깨치기를 좋아하고 지식을 전파하는 데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한 나무꾼이 나타나 먼저 안 사람이 나중에 깨우칠 사람을 위해 배운 것을 가르치는 데 소홀이 하면 안 된다고 꾸짖고 사라졌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지증대사는 법당을 세워 대중을 향한 법회를 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필자 역시 다년간의 경영자문을 통해 느낀 것을 후배들에게 알릴 의무를 느낀다. 본 연재를 통해 작은 희망이라도 남겨두고 싶다. 그러나 열심히 하면 뭐든 될 수 있다고 부추기는 딱딱한 글이 아니기를 바란다. 후배들이 꿈꾸는 과정을 지원하는 디딤돌로, 힘껏 밟고 넘기를 바란다.
독자 중에는 다른 생각의 틀로 바라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혹시 필자의 편향된 시각을 발견했다면 비판적으로 생각하되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생각이란 경험과 환경의 영향을 받을 뿐 정답이 없다.
본 연재는 크게 '예비 의료인의 마인드셋', '업을 진화시키는 앞으로의 10년', '자생력을 확보할 실행방안', 그리고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라는 네 가지 틀로 구성한다. 사람은 책에서 읽은 글귀가 내 마음속 이상과 일치할 때 힘을 얻는다고 한다.
필자는 이 글이 예비 의료인을 포함한 미래사회의 의료인이 꿈을 발견하고 밝은 내일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단 한 문장이라도 독자의 가슴을 울렸다면 필자는 의무를 다한 것이다. 그것이 '희망'이라는 단어로 발현되어 각자 독특한 길을 걷는다면 필자는 그 길의 갓길에서 즐거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