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같은 기록·증거, 법원 판단 '정반대'

박양명
발행날짜: 2016-06-04 05:00:57
  • 1심 "병원 책임 70%, 1억6천만원 배상"…2심 "과실 아냐"

자료사진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기관절개술을 받은 후 간호사에게 흡인 처치를 받던 중 호흡곤란으로 저산소성 뇌손상이 찾아와 사망에 이르게 된 환자가 있다.

유족 측은 의료과실에 의한 사고라 주장하며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기록, 같은 증거에 대한 법원 판단은 정반대였다. 1심에서는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70%로 제한하고 1억5958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의료진의 의료과실이 아니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오른쪽 턱 아래쪽이 붓고 통증 및 발열 증상으로 대학병원을 찾은 A씨. 의료진은 심부 안면 및 심경부감염(루트비히앙기나)이라 진단하고 농양배액술이 필요한 상태라 판단했다.

그리고 의료진은 기관절개술을 시행하고 절개와 배액술을 시행해 설하, 익돌하악, 측두, 인두위주 공간에 있는 농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수술 후, 환자는 아들에게 가래를 제거하고 싶다면서 간호사를 불러달라고 했고, 아들은 가래 제거를 위한 흡인 처치를 요청했다.

사고 발생 당일 환자 상태 및 의료진 처치 내용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흡인 처치를 요청한 지 17분 후부터 환자는 호흡곤란을 일으켰고, 간호사는 재차 기도 흡인을 시행한 후 산소 공급량을 5리터로 증가시켰다. 하지만 3분 후 환자 의식이 저하되기 시작했고 간호사는 담당 의사 및 심폐소생술팀에게 연락했다.

심폐소생술팀은 25분쯤 기관내튜브를 제거하고 기도내관튜브를 삽입해 산소를 공급했고 27분부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하지만 환자는 이미 심각한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뇌사상태로 중환자실에서 두 달 가까이 투병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유족 측은 "흡인 처치를 담당한 간호사가 산소 공급을 제대로 하지 않고 무리하게 흡인 처치한 과실이 있고, 호흡곤란을 일으킨 후 응급처치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1심 재판부는 병원의 과실을 상당 부분 인정했다.

인천지방법원 제17민사부(재판장 도진기)는 "간호사가 흡인을 가하는 시간이 길어졌거나 흡인 시 기도 내 분비물을 충분히 제거하지 못한 과실로 환자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응급처치 과실에 대해서도 "저산소증 기간이 5분 이상이면 뇌에 비가역적인 손상이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며 "환자가 호흡곤란을 호소한 시점부터 최소 10분 이상 지나서 기도내관튜브 삽입을 통한 산소 공급이 이뤄졌다. 응급처치상 과실로 저산소증 상태에 오래 노출돼 심각한 뇌손상을 입고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시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의료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상황을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재판장 성기문)는 "흡인 카테터 내경이 환자 기도 보다 굵거나 흡인 시간이 길어지면 환자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할 수 있지만 흡인 자체로 자극이 돼 밑에 고여있던 분비물이 올라오면서 그 양이 많아지게 되고 이를 충분히 흡인하지 않으면 호흡곤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의 상태는 3분 사이 급격히 악화됐다"며 "기관지 삽관을 통해 다량의 분비물이 나온 것으로 보아 흡인 처치 당시 갑자기 분비물이 기도를 막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기도폐쇄 후 5분 정도 지나야 심정지가 발생하므로 심폐소생술 팀이 도착한 시간 환자가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심정지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심폐소생술팀은 도착 즉시 심폐소생술 일련의 과정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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