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석 교수, 의료진간 지침 공유·정부 지원 필요성 강조
|연명의료결정법,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평소 의사 개인이 갖고 있던 상식이나 의학적 판단을 기준으로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하면 자칫 법적인 책임을 묻는 불상사를 겪을 수 있다."
내년 8월 시행 예정인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을 두고 의료계 내부에선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말기와 임종과정에 대한 정의 및 의학적 판단지침(안) 총괄 책임을 맡은 서울아산병원 고윤석 교수는 관련 학회 간담회에 이어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등 구체적인 지침 마련에 돌입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을 앞두고 의료계는 앞으로 어떤 논의를 진행해야하는지, 법 시행 이후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 지에 대해 고윤석 교수에게 직접 물어봤다.
이번 연구를 총괄한 고윤석 교수(서울아산병원·호흡기내과)는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은 임상에도 큰 변화를 몰고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사, 뻔한 얘기라고 생각했다간 큰코 다친다"
'연명의료'라고 하면 다수의 의료진이 자신과는 무관한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만 법 시행 이후에는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의사 상당수가 '나는 정직하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의료윤리는 시대적·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에 의사 개인의 판단 및 가치관과는 다를 수 있는데 이를 무시한 채 개인적 결정만 고집해서는 환자 및 보호자로부터 소송을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의사가 말기암 환자 A씨의 항암치료를 고집했다고 치자. 의사는 최신 의료기술을 동원해 환자를 살리려고 했지만, 환자가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연명의료결정권을 내세우면서 선택의 권리를 박탈당했다며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고윤석 교수는 "법을 통해 말기와 임종기를 인위적으로 구분, 해당하는 과정에 대한 행위를 제공해야하는 법적인 규범이 생긴 것"이라면서 "환자가 말기상태에 이르면 의사는 완화의료에 대한 정보를 제공, 제안해야하는 시점이라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사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말기와 임종과정에 대한 정의 및 의학적 판단지침' 즉, 어떤 순간에 '사전돌봄계획'을 세우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것인지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앞서 선결과제로 '의료인의 교육'을 꼽는 이유다.
향후 논의해야 할 쟁점은?
당장 내년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보험급여를 적용하려면 어떤 환자를 말기, 임종기로 볼 것인지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사실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짓는 도구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의사의 판단이 중요하고 이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야하고 자신의 상식 및 가치관과 다르더라도 이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말기 돌봄의료행위에 대한 급여적용을 위해서는 세부적인 진료지침을 마련해야한다.
가령, 말기환자 각 단계별로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하며 어떤 행위지침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일단 말기와 임종기에 대한 판단지침을 공유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 어렵다"면서 "지침 초안을 보다 많은 의사들이 공유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의사의 희생만 강요하는 연명의료는 실패…정부 지원 필요"
고윤석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연착륙하기 위한 조건으로 정부의 지원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전국 연 사망환자는 26만 6000여명에 달한다. 유가족까지 합치면 1년에 약 100만여명이 연명의료에 대해 고민하는 셈"이라면서 정부 예산을 투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장 법이 시행되면 각 의료기관들은 병원 내에 의료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하는데 대학병원을 제외한 다수의 의료기관이 현실적으로 위원회 운영이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전돌봄, 완화의료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의료진이 시간을 투자해야하는데 이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의료기관에선 인력 및 시설, 시간 등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것은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막연하게 '의사니까 해야지'라는 강요로는 법 취지를 살릴 수 없다"면서 "의료기관이 알아서 연명의료에 필요한 의사를 고용하고 위원회를 운영하라고 하면 누가 나서겠나. 특정군의 희생이나 헌신을 요구하는 시스템은 유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한 법 조항에 따르면 국립연명관리의료기관을 주축으로 통계 산출 결과가 지침을 개선, 수가와 연동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관 선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왜 연명의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가
고윤석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의 핵심은 환자의 권익 보호. 아직은 의사도 환자 및 보호자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는 "의사 대부분이 갖고 있는 의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긍정적으로 얘기하면 '끝까지 환자를 살려보겠다'는 의지이지만 과연 환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 환자 보호자가 연명의료 동의서에 사인한 직후 중환자실에 기도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연결한 모습에 충격을 받고 입장을 바꾸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고.
중환자실을 수년간 지켜온 고 교수가 연명의료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것도 '과연 환자가 원하는 죽음이 이런 것일까. 보호자들은 이에 동의하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표가 커진데 따른 것이다.
그는 "자칫 의사가 환자의 생명연장을 정하는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이는 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의사는 환자와 보호자의 의견을 듣는 중재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근까지도 보호자에게 연명의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치료할 의지가 없는 의사라는 오해와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꾸준히 우리의 뜻을 설명하면 언젠가는 문화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