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이사 출신도 삭감 못이겨 의원 폐업…이것이 현실"

발행날짜: 2017-03-22 05:00:58
  • 좌훈정 전 의협 보험이사 "이유도 알 수 없는 융단삭감, 누가 버티겠나"

동대문구의사회 보험이사. 대한개원의협의회 보험이사.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좌훈정 원장이 걸어온 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건강정책심의위윈회 위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의신청위원회 위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 위원.

보험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아 의사단체부터 심평원부터 공단, 복지부 등 정부 기관 업무까지 두루 거치며 20여년간 보험 전문가로 이름을 날려온 것이 좌 원장이다.

그런 그가 수년간 운영해온 정든 병원의 문을 스스로 닫았다. 무차별 삭감에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전언.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20여년 경력의 보험 전문가도 넘지 못한 현실의 벽

"소신 진료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어요. 도저히 참다 못해 이의신청을 한 서류만 라면박스로 몇박스가 넘어요.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죠.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어요."

그는 그렇게 수년간 운영한 원주성모의원의 문을 닫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는 아직도 왜 삭감을 당했는지,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며 입을 열었다.

좌훈정 원장은 "보험이사를 포함해 구의사회, 서울시의사회, 개원의협의회, 의협 임원으로 10년을 넘게 보냈다"며 "일선 의사들처럼 마냥 최선의 진료, 소신 진료를 주창했던 것도 아니라는 의미"고 운을 띄웠다.

그는 "건강보험 체제 속에서 결국 최선 진료가 아닌 적정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러한 나조차도 무엇이 원인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삭감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냐"고 덧붙였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괴롭힌 것일까. 그는 원인조차 확인할 수 없는 심사 시스템의 문제를 가장 먼저 꼽았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수 조차 없는 시스템이 큰 스트레스였다는 것이다.

"보험이사만 몇 년을 했는데 고시에 나와있는 내용을 확인 못하겠어요? 계속해서 삭감을 당하는데 고시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고 심사 기준은 밝힐 수 없다고 하고, 담당자 실명도 알려주지 않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잖아요. 그러니 계속 같은 걸로 삭감을 당하며 무기력해지는 거에요."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으로서 입원실을 운영하는데 큰 한계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도저히 넘지 못할 현실의 벽이 존재했다는 것.

좌 원장은 "염좌로 환자가 들어오면 2주 안에 무조건 퇴원을 시키지 않으면 삭감이 된다"며 "그 사람이 일주일간 집에서 끙끙 앓다가 병원에 왔다해도 일주일안에 퇴원시켜야 한다는 의미"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결국 환자가 들어오면 증상을 보기도 전에 언제 사고가 났는지부터 물어보는 나를 보며 자괴감이 들었다"며 "하루만 날짜가 넘어가도 행위료는 물론, 입원료와 하물며 식대까지 모조리 삭감을 당하니 무조건 적자를 보는 날이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의원급 병상은 모조리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어느 의원도 이러한 잣대를 들이대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좌훈정 원장은 "그나마 병원급 의료기관은 틈이 좀 있고 삭감에 대응할 인력도 있지만 의원급은 원장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며 "20년 보험통인 나조차도 이의신청을 하다 지쳐서 포기하는데 일반 의사들은 아예 두려워서 신청조차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이대로 간다면 우리나라에서 의원급 병상은 점점 더 줄어만 갈텐데 정부가 이걸 노리고 있는지까지 의심이 드는 상황"이라며 "의원급 병상이 없어지면 환자들은 결국 종합병원으로 향할 것이고 이는 곧 진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결국 포기한 의원급 병상 "소신 진료는 멈추지 않을 것"

이러한 현실은 그에게 스스로 정든 의원 문을 닫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처음 의원을 열었던 동대문구 인근 서울 중구 황학동으로 돌아왔다.

"왜 의원급 의료기관들이 자보 환자를 기피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입원실을 왜 열지 않는지도요. 환자 만족도는 높아 보람은 있지만 삭감으로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인데 어떻게 더 버티겠어요. 입원실을 포기한 이유에요."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의원 이름도 '서울정통의원'으로 진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비록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입원실을 포기했지만 소신 진료와 적정 진료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에서다.

"의사회, 협회일만 20여년을 했어요. 그건 사명감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거든요. 그런 제가 얼마나 상업적으로 변할 수 있겠어요. '서울정통의원'으로 이름을 붙인 것도 같은 이유에요. 초심을 잃지 않고 원칙적인 진료를 하겠다는 의지죠."

그가 '의사가 직접 설계하는 도수치료'라는 타이틀을 건 것도 같은 이유다. 도수치료에 대한 논란이 많은 가운데서 도수치료의 합리적인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

좌 원장은 "지금 도수치료가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도수 공장'때문"이라며 "마치 컨베이어처럼 덤핑으로 도수 치료를 하는 곳이 늘다 보니 의사들이 아예 도수 치료를 포기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꼴이 바로 지금의 도수 치료"라며 "의사가 직접 도수 치료를 설계하고 치료에 참여하며 질을 높이는 개원가 도수 치료 모델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전했다.

또한 급속하게 고령화시대가 오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 통증 치료의 모델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20년의 경력을 바탕으로 일차의료기관들과 심평원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 또한 지속적으로 모색해 보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심평원은 가입자과 공급자를 중재하는데 존재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가입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공단의 업무를 하고 있는 셈이죠. 이대로 가다간 심평원의 존립 근거도 흔들릴 수 밖에 없어요. 의사들이 심평원을 신뢰하고 중재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의사도 심평원도 함께 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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