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훈정 대한의사협회 전 감사
지난 2007년 필자가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로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위원으로 활동할 때 일이다. 언젠가 회의 도중 쉬는 시간에 이웃한 자리의 어느 가입자 단체 대표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당시에도 의원급 의료기관의 어려움이 큰 화두였고, 일차의료를 살리기 위해 어떤 수가 있겠느냐는 얘기 중에 나는 진료비 지불 과정의 문제점도 있다고 지적하고 그걸 '진료비 선불제'로 바꿔보는 건 어떻겠냐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주치의 제도를 도입한 후라면 검토해볼만 하다고 답했었다(필자는 주치의제 도입에 부정적이다).
현행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는 '제3자 지불제도'를 취하고 있다. 즉 수진자(受珍者)가 진료를 받은 뒤 총 진료비 중 건강보험의 적용이 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본인부담금)만 요양기관에 지불하고, 건보 적용 금액은 요양기관의 청구를 거쳐 제3자인 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진료비 선불제'란 이와 달리 진료비 전액을 일단 수진자가 요양기관에 지불하고 추후 건보 적용 금액을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환급받는 방식으로서 '수진자 직불제'라는 용어가 더 적당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을 취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프랑스가 있다.
사실 프랑스의 경우 주치의제도가 도입되어 있고 당뇨병 등 일부 만성질환에 대해서는 진료비를 전액 환급하는 등 우리와 차이점이 많아 평면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어쨌든 당시 건정심 가입자 위원은 그런 전반적인 제도의 변화라면 검토해볼 수도 있다는 뜻으로 얘기했던 것 같다.
다만 재미있는 점은 프랑스도 우리나라의 민간보험(실손보험)에 해당하는 '민간보충보험'을 한 개 이상 가입한 국민들이 무려 89%에 이른다는 것이다(2012년 통계).
사회의료보험에서 제3자 지불제도를 도입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수진자가 우선 부담하는 금액을 줄여주고, 환급 과정의 번거로움 또한 줄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 도입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5천 달러 정도로서 국민의 의료비 부담 능력이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웃도는 상황에서 제3자 지불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요양기관 입장에서는 이 제도를 통해 총 진료비의 수령 시기가 늦어지고 심사·삭감을 비롯한 다양한 행정적 부담까지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제3자 지불제도의 문제점은 심사제도
필자가 생각하는 우리 건강보험 제3자 지불제도의 가장 큰 단점은 심사 및 삭감 문제다. 지난 2000년 건강보험의 보험자인 건보공단과 공급자인 요양기관(의료기관) 사이에서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심사와 평가를 위해 설립되었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관료화되고 보험자 편향적으로 흐르면서 의사의 소신 진료를 저해하고 의료기관의 경영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의사가 의학적인 판단 하에 환자를 진료한 뒤 청구한 진료비가 심평원에서 뭉텅 삭감당하여 훨씬 적은 돈을 공단으로부터 지급받는다면, 제3자 지불제도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건강보험의 제3자 지불제도의 전제조건은 의학적 판단의 존중이다. 진료비를 직접 지불하는 비보험 진료나 민간보험에서는 의사가 청구한 진료비용에 이의가 있을 경우 당사자 간의 대화나 분쟁 절차를 통해 해결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경우 수진자(受珍者)를 배제하고 심평원이 의사의 진료를 심사하고 비용을 삭감함으로써, 심평원 설립 이후 의사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종종 수진자의 진료 기회가 박탈되기도 한다.
우리 건강보험이 제3자 지불제도를 유지하려면 일단 요양기관이 청구한 진료비(수진자 본인부담금을 제외한)를 즉시 지불해야 한다. 만약 그 비용에 이의가 있으면 추후 보험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구성된 심사기구를 통해서 보험급여기준에 맞는지 등 적정성을 가려야 한다.
현재는 말로만 제3자 지불제도지 정부 산하기관인 심평원이 자의적으로 심사하고 지불 금액을 결정하는 '직권(職權) 지불제도'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 참에 '진료비 선불제(수진자 직불제)'로 바꿔보자는 목소리도 높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권리 주장일 수는 있으나 이미 30년 동안 익숙해진 제도를 갑자기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일단 진료비 전액을 지불하는데 따른 환자들의 부담도 있지만 이를 건보공단에 청구하는 불편이 더욱 크다. 요양기관 입장에서는 환자들이 부담을 느껴 의료 이용을 줄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중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단기간에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요양기관들이 진료비를 건보공단에 직접 청구하는 방식을 요구하는 게 어떨까 한다. 제3자 지불제를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조건은 보험자인 공단은 '제3자'로서 진료비를 지불할 뿐이지 이를 직접 심사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비용에 이의가 있을 경우 보험자와 공급자 동수로 구성된 중립적 심사기구를 통해서 적정성을 평가하면 된다.
지금 왜곡된 제3자 지불제도 하에서 심평원은 중립적인 기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심평원이 그 역할에 맞게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새로운 제3자 지불제도에서 심사기구의 역할을 맡기엔 부적당하고 새 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
당시에도 의원급 의료기관의 어려움이 큰 화두였고, 일차의료를 살리기 위해 어떤 수가 있겠느냐는 얘기 중에 나는 진료비 지불 과정의 문제점도 있다고 지적하고 그걸 '진료비 선불제'로 바꿔보는 건 어떻겠냐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주치의 제도를 도입한 후라면 검토해볼만 하다고 답했었다(필자는 주치의제 도입에 부정적이다).
현행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는 '제3자 지불제도'를 취하고 있다. 즉 수진자(受珍者)가 진료를 받은 뒤 총 진료비 중 건강보험의 적용이 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본인부담금)만 요양기관에 지불하고, 건보 적용 금액은 요양기관의 청구를 거쳐 제3자인 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진료비 선불제'란 이와 달리 진료비 전액을 일단 수진자가 요양기관에 지불하고 추후 건보 적용 금액을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환급받는 방식으로서 '수진자 직불제'라는 용어가 더 적당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을 취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프랑스가 있다.
사실 프랑스의 경우 주치의제도가 도입되어 있고 당뇨병 등 일부 만성질환에 대해서는 진료비를 전액 환급하는 등 우리와 차이점이 많아 평면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어쨌든 당시 건정심 가입자 위원은 그런 전반적인 제도의 변화라면 검토해볼 수도 있다는 뜻으로 얘기했던 것 같다.
다만 재미있는 점은 프랑스도 우리나라의 민간보험(실손보험)에 해당하는 '민간보충보험'을 한 개 이상 가입한 국민들이 무려 89%에 이른다는 것이다(2012년 통계).
사회의료보험에서 제3자 지불제도를 도입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수진자가 우선 부담하는 금액을 줄여주고, 환급 과정의 번거로움 또한 줄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 도입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5천 달러 정도로서 국민의 의료비 부담 능력이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웃도는 상황에서 제3자 지불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요양기관 입장에서는 이 제도를 통해 총 진료비의 수령 시기가 늦어지고 심사·삭감을 비롯한 다양한 행정적 부담까지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제3자 지불제도의 문제점은 심사제도
필자가 생각하는 우리 건강보험 제3자 지불제도의 가장 큰 단점은 심사 및 삭감 문제다. 지난 2000년 건강보험의 보험자인 건보공단과 공급자인 요양기관(의료기관) 사이에서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심사와 평가를 위해 설립되었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관료화되고 보험자 편향적으로 흐르면서 의사의 소신 진료를 저해하고 의료기관의 경영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의사가 의학적인 판단 하에 환자를 진료한 뒤 청구한 진료비가 심평원에서 뭉텅 삭감당하여 훨씬 적은 돈을 공단으로부터 지급받는다면, 제3자 지불제도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건강보험의 제3자 지불제도의 전제조건은 의학적 판단의 존중이다. 진료비를 직접 지불하는 비보험 진료나 민간보험에서는 의사가 청구한 진료비용에 이의가 있을 경우 당사자 간의 대화나 분쟁 절차를 통해 해결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경우 수진자(受珍者)를 배제하고 심평원이 의사의 진료를 심사하고 비용을 삭감함으로써, 심평원 설립 이후 의사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종종 수진자의 진료 기회가 박탈되기도 한다.
우리 건강보험이 제3자 지불제도를 유지하려면 일단 요양기관이 청구한 진료비(수진자 본인부담금을 제외한)를 즉시 지불해야 한다. 만약 그 비용에 이의가 있으면 추후 보험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구성된 심사기구를 통해서 보험급여기준에 맞는지 등 적정성을 가려야 한다.
현재는 말로만 제3자 지불제도지 정부 산하기관인 심평원이 자의적으로 심사하고 지불 금액을 결정하는 '직권(職權) 지불제도'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 참에 '진료비 선불제(수진자 직불제)'로 바꿔보자는 목소리도 높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권리 주장일 수는 있으나 이미 30년 동안 익숙해진 제도를 갑자기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일단 진료비 전액을 지불하는데 따른 환자들의 부담도 있지만 이를 건보공단에 청구하는 불편이 더욱 크다. 요양기관 입장에서는 환자들이 부담을 느껴 의료 이용을 줄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중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단기간에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요양기관들이 진료비를 건보공단에 직접 청구하는 방식을 요구하는 게 어떨까 한다. 제3자 지불제를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조건은 보험자인 공단은 '제3자'로서 진료비를 지불할 뿐이지 이를 직접 심사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비용에 이의가 있을 경우 보험자와 공급자 동수로 구성된 중립적 심사기구를 통해서 적정성을 평가하면 된다.
지금 왜곡된 제3자 지불제도 하에서 심평원은 중립적인 기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심평원이 그 역할에 맞게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새로운 제3자 지불제도에서 심사기구의 역할을 맡기엔 부적당하고 새 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