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만으로 돌아가는 A대학병원 심초음파 검사실

발행날짜: 2018-08-27 06:00:59
  • 기획 간호사가 10~15분 간격으로 쉴새없이 초음파 검사…현장 어디에도 의사 없어

|기획| 비의사 초음파 검사 이대로 괜찮나

최근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 과정에서 의료계 관행으로 자리잡은 '비의사의 초음파 검사'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복지부가 의사가 실시하는 검사에 한해 급여로 적용할 방침을 정하자 방사선사 단체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방사선사에 의한 검사도 급여로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의사의 실시간 지도감독하에'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선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메디칼타임즈>는 의료 현장의 비의사의 초음파검사 실태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상> A 대형 대학병원의 심초음파 검사실 현장
8월 어느날 오후 2시경 찾아간 소위 빅5병원으로 꼽히는 A대형 대학병원 심초음파 검사실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환자 이송요원이 예약된 검사시간에 맞춰 입원복을 입은 환자를 검사실로 데려와 대기하면 곧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검사자가 나와 환자를 검사실로 옮겨간다.

검사를 마치면 휠체어나 침대로 환자를 옮겨 다시 데리고 나온다. 환자가 검사실로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대략 10~15분이 소요된다.

오른쪽에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검사자가 환자 검사를 마친후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심초음파 검사실은 총 6곳. 검사자는 검사를 마친 환자가 나가면 잠시 후, 다음 대기 환자를 검사실로 데려가 침대에 눕혔다.

기자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심초음파 검사실 앞에서 대기하며 지켜본 결과, 검사실에는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4~5명의 검사자 이외 의사 등 다른 의료인은 없었으며 이들이 전담해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초록색 수술복을 입고 명찰을 달고 있었지만 이들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환자는 없었다. 한 60대 남성환자는 "전에도 와봤지만 이런 검사는 의사가 안 해. 간호사나 의료기사가 하겠지 뭐"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들은 누구일까. 해당 대학병원을 통해 이름과 신분을 확인한 결과 간호사들이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미국 소노그래퍼(Sonographer) 자격증을 취득한 간호사로, 심초음파 검사 분야에서는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갖췄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 대학병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소노그래퍼들이 미국 자격증(American Registered Diagnostic Medical Sonographer, ARDMS)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홍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합법일까. 유감스럽게도 현행법상 불법이다.

복지부에 확인한 결과, 방사선사 등 의료기사의 경우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간호사는 초음파 검사를 할 수 없다.

최근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 과정에서 의사가 한 공간 내에서 1:1로 실시간 지도감독 한다는 조건 하에 방사선사의 초음파 검사를 급여로 인정해줬지만 간호사는 현행법상 초음파 검사 자체가 불법이다.

의료법상 비의사가 단독으로 초음파 검사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 자격정지 3개월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A대학병원 측은 "심초음파 검사실 내에서 검사는 비의사가 실시하더라도 모두 모니터를 통해 전문의가 판독하는 등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검사자가 간호사인 이상 불법을 면하기 어렵다.

미국 소노그래퍼 자격증(American Registered Diagnostic Medical Sonographer, ARDMS)을 취득을 통해 전문성을 높일수는 있지만, 이를 국내 의료인 면허체계에서 인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법 여부를 뒤집을 순 없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사실은 이는 A대학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내과 전문의는 "A대학병원 이외 빅5병원으로 알려진 B, C대형 대학병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간호사가 해당 병원에서 심초음파 검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대형 대학병원 한 내과교수는 "비의사에 의한 심초음파 검사는 새로운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라며 "그 많은 검사를 어떻게 내과 교수들이 일일이 하겠나. 저수가 체계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검사자가 검사를 마친 후 환자를 휠체어에 태워 나오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선 불법을 자행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심장학회 한 임원은 "현재 정해진 인력 및 수가체계 내에서 오는 환자를 해결하다보면 법에서 정한 테두리를 넘어가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의사는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편법적으로 진료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고 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전했다.

그는 이어 "시설이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만 환자를 적게 진료하고 그 이외에는 대기하도록 하면 좋겠지만 병원 경영진 입장에선 생각이 다르다보니 자칫 공장처럼 돌아가기도 한다"며 "환자는 낮은 가격에 빨리 진료를 볼 수 있으니 좋겠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실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서 쓴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 불법 초음파 검사에 대해 거듭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변화로 이끌지는 못한 채 불법 행위가 고착화되고 있다.

실제로 대한영상의학회가 지난 2016년 비의사의 초음파검진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선전포고를 한데 이어 의사의 실명이 적힌 오렌지색 명찰과 배지를 배포하고 착용하도록 하는 '초음파 의사 실명 캠페인'에 나서고 있지만 관행의 고리를 끊기에는 역부족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안치현 회장은 "전공의협의회 차원에서 매년 2회 초음파 교육을 실시하는데 3초만에 접수가 마감이 된다. 젊은 의사들은 이처럼 배우고 싶은 의지가 높은데 일부 선배 의사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아 우려스럽다"면서 "불법이 만연하니 합법화하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정부 또한 버젓이 불법행위가 있음에도 방치하고 있다"면서 "바로잡기 보다는 이를 어떻게 합법화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거듭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대한임상초음파학회 한 임원은 "간호사에 의한 심초음파 검사는 엄연히 불법으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대학병원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사실 상당수 대학병원도 이와 다르지 않은 상황으로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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