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훈정 대한개원의협의회 보험부회장
며칠 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에 개설 허가된 투자개방형 병원(이른바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으로 논란이 뜨겁다.
여러 보건의료시민단체나 노조 등은 영리병원이 의료의 공공성을 해치고 국민건강보험을 붕괴시킨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즉 투자개방형 시스템이 병원의 영리화를 부추겨 의료비가 폭등하고, 고소득자들이 영리병원을 선호하여 건강보험제도가 무너지는 연쇄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한민국 국민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개원을 한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필자의 임상 경험으로는 여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국내에서 영리병원의 개념이 도입된 지는 이미 오래다. 지난 2002년 김대중정부가 경제자유구역 내의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에 대한 근거법률을 제정하였고, 2005년 노무현정부 때 제주도 내에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이번에 허가된 녹지국제병원은 관련 법률에 의해 개설되며, 역시 관련 조례에 의해 ‘외국인만 진료하는 조건’으로 허가되었다. 바꿔 말하면 당초 설립 목적에 반하여 내국인 진료로 확대될 경우 개설이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병원이 행정소송을 통해 조례에 근거한 행정처분의 취소를 다툴 여지가 없지 않지만, 현실적인 여건 상 실익이 적어 보인다.
제주녹지국제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기관으로서, 똑같은 진료를 받고도 환자의 부담이 건보 적용 병원에 비해 서너 배는 크다. 다른 병원들보다 얼마나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지 모르겠으나, 내국인 환자들이 그 정도 추가 비용 부담을 감수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외국인 환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관광객들이나 단기 체류 외국인들은 우리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기 어려우며, 어차피 그렇다면 건보 적용이 되지 않는 영리병원을 이용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은 세계 정상급이지만, 하향평준화를 강제하는 국민건강보험제도 하에서는 박리다매식 진료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의료소비자의 불만 역시 적지 않기 때문이다.
건보 적용 안 되는 영리병원에 누가 갈까
이번 참에 ‘영리병원’의 개념에 대해서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유시장경제 하에서 구성원들의 경제활동은 모두 영리(營利; 영업이익) 추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의사나 의료기관들도 당연히 영리를 위해 일을 한다. 학교재단 등 일부 ‘비영리법인’ 의료기관들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의 대부분 병의원들은 사실상 다 ‘영리병원’인 것이다.
지금 언론에서 회자되는 영리병원은 의료기관 개설자 외의 다른 투자자들이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투자개방형’ 병원을 말한다. 바꿔 말하면 ‘영리법인’이 개설한 병원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위에 언급한 비영리법인과는 달리 투자에 대한 배당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 제주도가 개설 허가를 내준 것은 관련법(‘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307조에 의거하여 외국인이 투자한 영리법인을 허용하고, 이 법인이 만든 병원을 허가한 것이다. 이는 국내의료기관이 아니라 외국의료기관으로서 국민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의 적용이 되지 않고 당연지정제에서도 제외되는 병원을 말한다.
이렇게 영리법인을 통해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의 투자가 개방되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병의원의 시설이나 장비, 제반 서비스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고 그 결과 의료관광객 유치 등 서비스산업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투자한 만큼 수익을 올려야 하는 진료 압박이 따르고 자칫 과당 경쟁으로 내몰릴 수 있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영리병원이 의료의 공공성을 해치고 국민건강보험을 무너뜨린다는 주장은 십 년 전 급성충수염 수술비가 천만 원이 된다는 ‘식코(Sicko) 괴담’ 만큼이나 섣부른 얘기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건보 혜택에 익숙해져 있어서 다소 의료서비스의 차이가 있더라도 몇 배의 비용을 더 지불해가며 영리병원을 이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이번에 허용된 영리병원은 외국인에만 한정된 진료를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확대되어 국내 전체에 적용되기엔 법적으로 무리가 있고 여론 상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국가의료시스템(NHS)을 도입하고 있는 영국이나 영연방국가들도 영리병원을 도입하고 있고 사회의료보험 체계인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베트남조차도 영리병원이 허용되고 있으니(녹지국제병원도 중국계 자본이 설립하는 것), 무조건 도입 자체를 백안시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영리병원의 장단점은 분명히 있으며, 우리 의료제도 내에 도입할 것인지 말 건지, 만약 도입한다면 어떤 모델을 취할 것인지도 충분히 고민해봐야 한다. 허나 그러려면 사실을 그대로 적시하고 합리적인 연구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극단적인 반감이나 공포를 조장하는 괴담식 주장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불편도 적지 않고 진료 현장에서 의사들의 불만은 더욱 크다. 고착화된 저비용 저수가로 인해 필수의료 붕괴를 비롯한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가 차츰 드러나고 있으며, 한편으론 건보의 사각지대 역시 존재한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으며,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환자나 진료 분야에 대해서는 영리병원 형태로라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의료제도에만 얽매이지 말고 문제점이 있다면 자꾸 보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며, 새로운 형태의 제도 도입을 위해선 차분하고 이성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어떤 제도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제도 자체의 문제점보다 오히려 비과학적인 선전선동이 국민들에게 해가 되어왔던 것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에 이번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본 칼럼은 메디칼타임즈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 보건의료시민단체나 노조 등은 영리병원이 의료의 공공성을 해치고 국민건강보험을 붕괴시킨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즉 투자개방형 시스템이 병원의 영리화를 부추겨 의료비가 폭등하고, 고소득자들이 영리병원을 선호하여 건강보험제도가 무너지는 연쇄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한민국 국민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개원을 한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필자의 임상 경험으로는 여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국내에서 영리병원의 개념이 도입된 지는 이미 오래다. 지난 2002년 김대중정부가 경제자유구역 내의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에 대한 근거법률을 제정하였고, 2005년 노무현정부 때 제주도 내에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이번에 허가된 녹지국제병원은 관련 법률에 의해 개설되며, 역시 관련 조례에 의해 ‘외국인만 진료하는 조건’으로 허가되었다. 바꿔 말하면 당초 설립 목적에 반하여 내국인 진료로 확대될 경우 개설이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병원이 행정소송을 통해 조례에 근거한 행정처분의 취소를 다툴 여지가 없지 않지만, 현실적인 여건 상 실익이 적어 보인다.
제주녹지국제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기관으로서, 똑같은 진료를 받고도 환자의 부담이 건보 적용 병원에 비해 서너 배는 크다. 다른 병원들보다 얼마나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지 모르겠으나, 내국인 환자들이 그 정도 추가 비용 부담을 감수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외국인 환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관광객들이나 단기 체류 외국인들은 우리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기 어려우며, 어차피 그렇다면 건보 적용이 되지 않는 영리병원을 이용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은 세계 정상급이지만, 하향평준화를 강제하는 국민건강보험제도 하에서는 박리다매식 진료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의료소비자의 불만 역시 적지 않기 때문이다.
건보 적용 안 되는 영리병원에 누가 갈까
이번 참에 ‘영리병원’의 개념에 대해서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유시장경제 하에서 구성원들의 경제활동은 모두 영리(營利; 영업이익) 추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의사나 의료기관들도 당연히 영리를 위해 일을 한다. 학교재단 등 일부 ‘비영리법인’ 의료기관들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의 대부분 병의원들은 사실상 다 ‘영리병원’인 것이다.
지금 언론에서 회자되는 영리병원은 의료기관 개설자 외의 다른 투자자들이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투자개방형’ 병원을 말한다. 바꿔 말하면 ‘영리법인’이 개설한 병원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위에 언급한 비영리법인과는 달리 투자에 대한 배당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 제주도가 개설 허가를 내준 것은 관련법(‘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307조에 의거하여 외국인이 투자한 영리법인을 허용하고, 이 법인이 만든 병원을 허가한 것이다. 이는 국내의료기관이 아니라 외국의료기관으로서 국민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의 적용이 되지 않고 당연지정제에서도 제외되는 병원을 말한다.
이렇게 영리법인을 통해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의 투자가 개방되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병의원의 시설이나 장비, 제반 서비스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고 그 결과 의료관광객 유치 등 서비스산업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투자한 만큼 수익을 올려야 하는 진료 압박이 따르고 자칫 과당 경쟁으로 내몰릴 수 있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영리병원이 의료의 공공성을 해치고 국민건강보험을 무너뜨린다는 주장은 십 년 전 급성충수염 수술비가 천만 원이 된다는 ‘식코(Sicko) 괴담’ 만큼이나 섣부른 얘기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건보 혜택에 익숙해져 있어서 다소 의료서비스의 차이가 있더라도 몇 배의 비용을 더 지불해가며 영리병원을 이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이번에 허용된 영리병원은 외국인에만 한정된 진료를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확대되어 국내 전체에 적용되기엔 법적으로 무리가 있고 여론 상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국가의료시스템(NHS)을 도입하고 있는 영국이나 영연방국가들도 영리병원을 도입하고 있고 사회의료보험 체계인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베트남조차도 영리병원이 허용되고 있으니(녹지국제병원도 중국계 자본이 설립하는 것), 무조건 도입 자체를 백안시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영리병원의 장단점은 분명히 있으며, 우리 의료제도 내에 도입할 것인지 말 건지, 만약 도입한다면 어떤 모델을 취할 것인지도 충분히 고민해봐야 한다. 허나 그러려면 사실을 그대로 적시하고 합리적인 연구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극단적인 반감이나 공포를 조장하는 괴담식 주장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불편도 적지 않고 진료 현장에서 의사들의 불만은 더욱 크다. 고착화된 저비용 저수가로 인해 필수의료 붕괴를 비롯한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가 차츰 드러나고 있으며, 한편으론 건보의 사각지대 역시 존재한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으며,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환자나 진료 분야에 대해서는 영리병원 형태로라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의료제도에만 얽매이지 말고 문제점이 있다면 자꾸 보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며, 새로운 형태의 제도 도입을 위해선 차분하고 이성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어떤 제도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제도 자체의 문제점보다 오히려 비과학적인 선전선동이 국민들에게 해가 되어왔던 것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에 이번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본 칼럼은 메디칼타임즈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