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시간에 따라 근무시간도 고무줄…근무환경 열악해
고령환자들, 대리처방에 무리한 주사처방 요구에 난감
|극한공보의| 의료취약지 공보의를 만나다
공중보건의제도가 도입된 지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역할은 제자리에 머물러있다. 특히,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는 의료취약지에 있는 공보의 현실은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 메디칼타임즈는 최근 의료취약지에 근무하는 공보의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① 바다 위 환자 안전 책임지는 병원선 서동호 공보의
② 의료취약지 응급환자 책임지는 민간병원 김준형 공중의
▶③ 24시간 섬 환자 건강 책임지는 노화도 정윤섭 공보의
"육지와 떨어져있는 누군가를 지켜야한다는 것은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섬 환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근무가 끝날 때까지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목표다."
섬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 줄임말인 섬보의는 전국 1600여명의 공보의 중 100여명 정도가 배치 받아 앞선 만난 병원선 공보의와 민간병원 공보의와 같이 전체 공보의 중 소수만이 근무를 하고 있다.
섬보의는 ▲전남 44명 ▲인천 25명 ▲경북 17명 ▲경남 6명 ▲제주 4명 전북 4명 등이 배치 돼 있으며 섬이라는 특성상 많게는 3명 적게는 1명의 공보의가 섬 환자들을 만나는 중이다.
메디칼타임즈가 만난 정윤섭 공보의는 섬보의가 가장 많다는 전라남도에서도 가장 크기가 큰 완도군 노화도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윤섭 공보의가 근무하는 노화도 보건지소는 서울을 기준으로 완도까지 버스 5시간, 화흥포항에서 여객선으로 1시간, 노화도 동천항에서 읍내까지 차로 2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다. 이 곳에서 2명의 공보의와 함께 노화도 주민 6000여명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노화도 보건지소는 저녁 6시가 되면 공식적인 진료가 끝나는 일반적인 섬 보건지소와 달리 24시간 확대형 보건지소로 마치 응급실처럼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고 진료를 실시한다.
근무시간은 주간근무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야간근무가 오후 5시부터 익일 오전 8시까지 진행되며, 보통 주간근무 4일, 야간근무 4일을 근무하면 4일의 휴식을 얻는 시스템으로 진행한다.
3명의 공보의가 24시간을 책임진다고 생각하면 8시간씩 나눠서 근무를 할 것 같지만 한명의 공보의가 휴일을 보내는 기간 두 명의 공보의가 24시간을 책임지고 있어 업무강도가 세다는 게 정윤섭 공보의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섬보의가 마찬가지겠지만 육지의 보건소나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것과 비교하면 실질저인 업무 강도가 강한 편이다. 또한 24시간 환자를 책임져야하고 응급상황시 1차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야간근무의 부담도 상당하다."
섬보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24시간 온콜'로 잘 알려져 있다. 내륙과 단절돼 있는 섬 특성상 공식적인 진료가 끝나도 응급상황의 경우 공보의에게 콜이 가도록 돼있어 사실상 24시간 대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24시간 확대형 보건지소의 경우 공식적인 근무로 인정돼 수당이 나오지만 퇴근 후 콜을 받는 일반 섬보의의 경우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수당이 한정돼 실질적 근무 수당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24시간 확대형 보건지소가 수당 등의 문제는 일정부분 해결됐지만 아직까지도 열악한 처우 등은 갈 길이 멀다는 게 정 공보의의 지적이다.
"아직도 많은 섬보의들이 실질적으로 일하는 것보다 적은 수당을 지급받는 게 현실이다. 확대형 보건지소는 공식적인 근무를 인정받아 수당이 모두 나오지만 섬보의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고려했을 땐 모든 섬보의에게 동일하게 적용해야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윤섭 공보의가 어려움을 토로한 부분은 언제든지 섬 내에서 의료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가령 휴일을 보내고 교대해야하는 공보의가 섬으로 복귀할 때 악천후로 배가 뜨지 못하거나 응급환자가 발생해 닥터헬기나 배를 통해 이동하는데 의사가 동행해야할 경우 한명의 섬보의가 24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섬 특성상 항상 기상이라는 변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다음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공식적인 휴일에도 신경써야 되는 경우가 많고 이런 상황에서 결국 한명이 빠지면 누군가 힘들 수 밖에 없는 구조라서 연가나 병가를 자유롭게 쓰기가 어렵다."
메디칼타임즈가 방문한 노화도 보건지소는 기본적인 건강업무를 담당하는 건물과 진료를 담당하는 2개의 건물로 이뤄져있다. 진료를 담당하는 건물은 24시간 진료실이라는 글씨가 건물 외벽에 붙어있다.
특히, 정 공보의는 24시간 확대형 보건지소는 응급실이 아닌 일반진료를 보는 곳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어려움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야간진료 중에 응급환자가 오는 경우도 많지만 다음날 진료를 봐도 괜찮은 경증환자가 방문하는 비율도 상당히 많다. 간혹 술에 취해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아님에도 방문하는 경우도 있고 환자들이 꼭 필요할 때 이용해야 한다는 인식도 낮은 편이다."
또한 정 공보의가 섬 특성상 고령층이 많아 무리한 주사요구나 대리처방 등에 따른 곤란함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 기자의 취재 도중 방문한 한 환자는 남편이 고혈압이 있는데 한번 왔다 갔으니 처방전을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자주 일어나는 지 보건지소 내부에는 대리처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해놓은 의사협회 공지사항이 붙어있었다.
"고령층 환자가 많다보니 의사의 설명보다 일단 주사부터 맞고 보자는 막무가내의 요구를 하는 소위 진상환자가 많다. 또 보건지소 한계상 큰 병원의 검사가 필요하지만 배틀 타고 육지로 나가야한다는 번거로움 때문인지 지시를 받지 않아는 경우가 있어 환자 건강이 우려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 공보의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섬 공보의 수의 확대와 전문의 배치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24시간 환자를 진료하는 섬 특성상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의의 배치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화도의 경우에도 기존에는 전문의가 1명 배치됐던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전문의가 1명도 없는 실정으로 최소한 전문의 1인 이상의 일관적인 배치가 필요해 보인다. "
결국 근본적으로는 섬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고려해 지금보다 효율적인 공보의 활용 고민이 있어야한다는 것.
"섬 공보의 특성상 다른 공보의들과 소통이 힘들고 어려운 점을 혼자 감당하는 등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특별한 지원이 아닌 현재 있는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적용한다면 섬보의의 환경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다. 그전까지 개인적으로는 섬에 있는 환자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