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ACE2의 악연…ARB·브루펜까지 추풍낙엽

발행날짜: 2020-03-23 05:45:58
  • [드럭피디아]수용체 위험성 부각 관련 기전 모두 의심
    세계 학계 모두 확대 해석 경계…일각선 재검토 주장

네이처 등을 통해 발표된 가능성으로 인해 ARB, ACEI의 안전성이 도마위에 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단순히 치료제나 백신을 넘어 약물 전체로 논란의 불씨가 옮겨붙는 모습이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이하 코로나)의 수용체로 꼽히는 안지오텐신변환효소 즉 ACE를 기반으로 하는 약물들은 예외없이 안전성 논란에 휩쌓이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국내를 넘어 세계 학계들은 모두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처방 유지를 권고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재검토에 대한 가능성을 지적하며 반대의 목소리도 새어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왜 ACE 기전 약제들로 논란 번졌나

22일 의학계에 따르면 코로나의 확산이 단순히 치료제를 넘어 고혈압약이나 해열진통제 이상지질혈증 약으로까지 논란이 번지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안지오텐신변화효소 즉 ACE에 기인한다.

안지오텐신변환효소(Angiotensin converting enzyme, ACE)는 1, 2로 나뉘는데 신장에서 분비되는 레닌을 통해 1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지는 안지오텐신1이 만들어지며 폐에 있는 전환효소로 또 다시 안지오텐신 2가 탄생한다.

이 두가지 모두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게 되며 안지오텐신2, 즉 ACE2가 더 강한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앞서 열거한 약물들은 이를 억제하거나 활성화해 증상을 개선하는 기전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약물들이 코로나의 확산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일까. 코로나가 인체에 침투해 감염을 일으키는 기전이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체에 들어오게 되면 스파이크 단백질을 통해 세포막에 있는 수용체와 흡착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게 된다. 그런데 이 수용체가 바로 ACE2 효소라는 점이 기묘한 악연의 시작이다.

코로나가 ACE2와 만나 인체에 기생하게 되면 세포내로 급속하게 증폭된다는 점에서 결국 ACE2가 많은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더욱 위험할 수 있다는 가정이 가능한 이유다.

중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고혈압 등 만성 질환 환자들이 코로나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러한 기저 질환을 가진 환자일수록 정상인에 비해 ACE2가 조절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심장을 넘어 폐와 신장 등을 쉽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네이처, 란셋에서 부은 기름…"ACE2 기전 약물 위험하다"

단순히 가능성에 머물렀던 이러한 가정에 기름을 부은 것은 중국 연구진이 내놓은 연구 결과다. 압도적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많은 중국에서 잇따라 이러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연구가 나오면서 논란이 가속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심장학회 등 세계 학계들은 이러한 우려에도 처방 유지를 권고했다.
그 시작은 바로 지난 5일 중국 정저우대학 심장내과 Ying-Ying Zheng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네이쳐(Nature Reviews Cardiology)를 통해 발표한 리뷰에서다.

이 리뷰는 코로나와 심장질환에 대한 연구 결과를 분석한 것으로 코로나 사태 이후 고혈압약의 위험성을 경고한 첫 논문이다.

이 논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코로나가 ACE2를 통해 세포내로 침투해 확산되는데 이 세포가 폐와 심장에 많으므로 폐 질환 뿐만 아니라 심장질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연구진은 코로나 확지자 중 일부가 심장 질환이 있었고 고혈압 환자들의 사망률이 높았다는 점을 들었다.

코로나 확진자 중 기저질환이 있었던 환자가 48%에 달했는데 이 중 고혈압 환자가 30%로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중에서도 거의 절반이 고혈압 환자라는 점을 지적했다.

고혈압 약제의 양대산맥으로 대표적으로 처방되는 약제인 안지오텐신수용체 차단제(ARB)와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ACEI)가 ACE2를 증가시키는 만큼 이 영향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처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경고다.

이 논문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과 더불어 ACE2를 타겟으로 하는 약물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던 중 지난 11일 란셋(LANCET)에 유사한 논문이 나오면서 이러한 논란은 더욱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연구의 결론도 앞선 연구와 맥을 같이 한다. 대표적 항고혈압약인 ARB와 ACEI가 코로나의 확산 수용체인 ACE2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이 약물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연구진은 ACE2와 관련이 있는 대표적 해열진통제인 이브프로펜과 비 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도 말미에 덧붙였다. ACE2와 연관된 약물 전체로 논란이 옮겨 붙은 이유다.

전문가들 대부분 확대 해석 경계…세계 학계 한 목소리

이렇듯 ACE2와 연관된 약물들이 줄줄이 논란에 휩쌓이자 전문가들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처방 유지를 권고하고 있다.

아직까지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검증된 약물의 처방을 변경하는 것은 오히려 더욱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연구로 논란이 시작되자 마자 유럽심장학회(ESC)는 즉각 권고문을 내고 ARB나 ACEI 등 고혈압 약제를 중단하거나 처방을 변경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유럽심장학회는 "ARB나 ACEI의 잠재적 부작용을 지적한 것은 가설일 뿐 안전성에 대한 이러한 추측은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이러한 연구가 소셜네트워크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에 우려를 느끼며 절대 약물을 중단하거나 변경하지 말고 계속 복용할 것을 강력히 권장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유럽심장학회가 항고혈압약제에 대한 처방 유지를 권고한 이후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도 같은 목소리를 내며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캐나다와 영국 학회에서 지난 15일 마찬가지로 임상 근거 부족을 지적하며 처방 유지를 권고했으며 마침내 16일에는 미국과 세계고혈압학회가 같은 입장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전문가들의 의견은 하나로 모아졌다.

세계고혈압학회(WCC)와 미국고혈압학회(ACC)는 공동 입장문을 통해 "ARB와 ACEI에 제기된 가설은 인정하지만 이에 대한 실험적, 임상적 데이터는 전무하다"며 "고혈압 환자가 코로나에 감염된 경우 상태에 따라 사안별 치료 결정을 내려야 하겠지만 표준치료지침을 넘어서 이들 약제에 대한 처방을 변경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이에 맞춰 마찬가지의 의견을 냈다. 고혈압 약제에 대한 의심은 인정하지만 약제 복용을 중단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이득보다 위험성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대한고혈압학회는 "고혈압 환자들이 코로나 감염과 관련해 사망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며 항고혈압 약제들이 ACE2에 영향을 받는 것도 맞다"며 "하지만 이러한 기전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임상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효과가 증명된 약물을 교체할 필요는 없다"고 못박았다.

계열 약물별로 나뉜 해석…일각선 의심의 목소리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ACE2를 둘러싼 약물의 기전을 놓고 해석과 분석이 나뉘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한 논란과 혼선은 여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혈압약와 해열진통제 사이에 다른 권고와 지침이 나왔다는 점이다. 두 약제들 모두 ACE2와 연관돼 있지만 고혈압약제는 처방을 유지한 반면 해열진통제는 처방 중지를 권고한 이유다.

실제로 앞서 근거가 된 네이처와 란셋에 실린 논문 모두 고혈압약과 이부프로펜 등 약제에 대해 공통된 기전을 지적했다. 바로 ACE2를 증가시켜 코로나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혈압 약제는 세계 학계 모두 처방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반면 이부프로펜 등은 처방을 중지해야 한다는 권고가 나왔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8일 이부프로펜이 코로나의 수용체인 ACE2를 증가시킬 수 있다며 발열 등 코로나 의심증상이 있을 경우 이를 복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코로나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자가 격리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을 경우 이부프로펜을 먹지 말고 아세트아미노펜, 즉 타이레놀을 먹으라는 것이다.

오히려 ACE2의 증가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고혈압약는 처방을 유지해야 한다는 반면 그에 비해 간접적 기전을 보여주는 이부프로펜 등은 우선 처방을 중지하라는 상반된 권고가 나온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득과 위험성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대한고혈압학회 소속의 A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우선 환자의 위험성과 혼란을 고려해 처방 유지를 권고한 학회의 대승적 결단은 충분히 공감하고 지지한다"며 "하지만 개인적으로 학문, 임상적 관점에서 볼때는 약간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능성이 있다'라는 가정을 놓고 본다면 우선 처방을 중지하고 관련 내용을 해소한 뒤 재처방을 고려하는 것이 일반론적 관점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가능성, 즉 가정이 나왔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이미 합리적 의심이 있다는 의미"라며 "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처럼 위험성을 놓고 고(go)냐 스톱(STOP)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대체제가 있을 경우 우선 처방을 중지시킨 WHO의 권고가 맞다고 본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동료 학자들과도 많은 토론과 논의를 나눴지만 결국 초유의 상황인 만큼 이득과 위험성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랐던 것이 사실"이라며 "추후 ACE2에 대한 임상적 근거가 완전하게 제시되기 전까지는 결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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