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직 노무사(노무법인 해닮)
|노무칼럼|이동직 노무사(노무법인 해닮)
삼성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스마트폰이 태동하던 시기 애플의 아이폰 3GS에 맞서 삼성이 내놓은 옴니아는 조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앱을 실행하면 화면이 멈췄고 통화가 안 되는 경우가 잦았으며, 인터넷 연결도 자주 끊겼습니다. 삼성은 이를 교훈 삼아 영국 런던비즈니스 스쿨의 폴 게로스키 교수가 제시한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실행합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삼성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인 애플을 모방하며 빠르게 시장을 선점해가는 벤치마킹 전략인데, 삼성은 아이폰의 디자인과 유저인터페이스, 심지어 스마트폰 패키지까지 모방했다는 날선 비판을 받으면서도 갤럭시 시리즈 성공을 통해 현재 시장의 선도적 지위에 올라설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애플을 따라잡은 셈이지요.
성공가도를 한창 달리고 있는 원장님들도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를 두려워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원장님 밑에서 의술을 수련하며 경영 노하우를 지켜보던 봉직의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다른 병원에서 파트너 봉직의로 또는 개원의로 한정된 파이를 두고 모객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원장님의 그 심정은 이루 헤아리기 힘듭니다.
게다가 비슷한 병원 인테리어 컨셉에 유사한 의료장비를 갖추고 며칠 전 원장님 병원에서 갑작스레 그만둔 일 잘하는 간호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면, 원장님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갈 겁니다.
이런 생채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조심성 많은 원장님들은 가까운 경쟁병원으로 이직하지 못한다는 약정을 핵심 직무를 맡고 있는 몇몇 잠재 패스트팔로워와 체결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전직금지약정'입니다.
전직금지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와 충돌하긴 하지만, 대법원은 전직금지약정의 효력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직금지약정으로 인해 자칫 종전의 직장에서 배우고 익힌 바를 이용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게 될 경우 근로자의 생계에 상당한 위협을 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기껏 고생해서 기술을 익혔는데, 더 이상 그 '생존'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긴 합니다.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여지는 판결이죠.
따라서 원장님이 봉직의와 호기롭게 체결한 전직금지약정이 법적 효력을 발휘하려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 다른 병원으로의 이직을 금지할 정도로 경제적 가치가 있는 '영업비밀'이 존재해야 합니다. 여기서 영업비밀은 업계에서 비밀스레 통용되는 획기적인 지식이나 노하우를 뜻하는 게 아니라, 부정경쟁방지법이 정하고 있는 영업비밀을 의미합니다.
영업비밀의 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정보가 공연히 알려지지 않았어야 합니다. 둘째,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셋째, 합리적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되고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비밀번호를 설정한 보안시스템을 통해 영업비밀이 저장돼 있는 매체에 대한 물리적인 접근을 통제하는 등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부정경쟁방지법이 정하고 있는 영업비밀의 엄밀한 요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몇 개의 난관을 더 통과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전직금지약정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므로 취업제한 기간과 제한범위를 최소화해야 하고, 영업비밀 유지의 대가로 근속기간 중 기밀수당 등의 보상이 주어져야 하며, 퇴사 후 취업제한과 관련해 일정기간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 등 근로자의 생계가 갈급해지지 않도록 갖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한두 장짜리 전직금지약정서를 작성한 것만으로는 의심의 여지없이 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으며, 전직금지약정이 법적으로 유효하도록 젖 먹던 힘까지 모아서 부단하게 애를 써도 모자를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봉직의를 포함해 병원을 함께 키워나갈 핵심 직무 근로자들을 앞에 두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전직금지약정서를 작성하며 신뢰와 상도를 부르짖었던 원장님들께 흔히 말하는 '현타'가 왔을 줄 압니다. 하지만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령(政令)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빠져나가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
- 김원중, ‘인생을 위한 고전 논어’ 中 -
확약서나 약정서, 합의서나 동의서 따위의 종이 쪼가리로 무언가를 금지하거나 허용할 게 아니라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손수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보인다면, 병원을 역량있는 근로자들과 오랫동안 함께 키워나가는 게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겁니다.
삼성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스마트폰이 태동하던 시기 애플의 아이폰 3GS에 맞서 삼성이 내놓은 옴니아는 조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앱을 실행하면 화면이 멈췄고 통화가 안 되는 경우가 잦았으며, 인터넷 연결도 자주 끊겼습니다. 삼성은 이를 교훈 삼아 영국 런던비즈니스 스쿨의 폴 게로스키 교수가 제시한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실행합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삼성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인 애플을 모방하며 빠르게 시장을 선점해가는 벤치마킹 전략인데, 삼성은 아이폰의 디자인과 유저인터페이스, 심지어 스마트폰 패키지까지 모방했다는 날선 비판을 받으면서도 갤럭시 시리즈 성공을 통해 현재 시장의 선도적 지위에 올라설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애플을 따라잡은 셈이지요.
성공가도를 한창 달리고 있는 원장님들도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를 두려워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원장님 밑에서 의술을 수련하며 경영 노하우를 지켜보던 봉직의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다른 병원에서 파트너 봉직의로 또는 개원의로 한정된 파이를 두고 모객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원장님의 그 심정은 이루 헤아리기 힘듭니다.
게다가 비슷한 병원 인테리어 컨셉에 유사한 의료장비를 갖추고 며칠 전 원장님 병원에서 갑작스레 그만둔 일 잘하는 간호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면, 원장님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갈 겁니다.
이런 생채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조심성 많은 원장님들은 가까운 경쟁병원으로 이직하지 못한다는 약정을 핵심 직무를 맡고 있는 몇몇 잠재 패스트팔로워와 체결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전직금지약정'입니다.
전직금지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와 충돌하긴 하지만, 대법원은 전직금지약정의 효력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직금지약정으로 인해 자칫 종전의 직장에서 배우고 익힌 바를 이용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게 될 경우 근로자의 생계에 상당한 위협을 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기껏 고생해서 기술을 익혔는데, 더 이상 그 '생존'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긴 합니다.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여지는 판결이죠.
따라서 원장님이 봉직의와 호기롭게 체결한 전직금지약정이 법적 효력을 발휘하려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 다른 병원으로의 이직을 금지할 정도로 경제적 가치가 있는 '영업비밀'이 존재해야 합니다. 여기서 영업비밀은 업계에서 비밀스레 통용되는 획기적인 지식이나 노하우를 뜻하는 게 아니라, 부정경쟁방지법이 정하고 있는 영업비밀을 의미합니다.
영업비밀의 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정보가 공연히 알려지지 않았어야 합니다. 둘째,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셋째, 합리적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되고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비밀번호를 설정한 보안시스템을 통해 영업비밀이 저장돼 있는 매체에 대한 물리적인 접근을 통제하는 등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부정경쟁방지법이 정하고 있는 영업비밀의 엄밀한 요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몇 개의 난관을 더 통과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전직금지약정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므로 취업제한 기간과 제한범위를 최소화해야 하고, 영업비밀 유지의 대가로 근속기간 중 기밀수당 등의 보상이 주어져야 하며, 퇴사 후 취업제한과 관련해 일정기간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 등 근로자의 생계가 갈급해지지 않도록 갖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한두 장짜리 전직금지약정서를 작성한 것만으로는 의심의 여지없이 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으며, 전직금지약정이 법적으로 유효하도록 젖 먹던 힘까지 모아서 부단하게 애를 써도 모자를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봉직의를 포함해 병원을 함께 키워나갈 핵심 직무 근로자들을 앞에 두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전직금지약정서를 작성하며 신뢰와 상도를 부르짖었던 원장님들께 흔히 말하는 '현타'가 왔을 줄 압니다. 하지만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령(政令)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빠져나가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
- 김원중, ‘인생을 위한 고전 논어’ 中 -
확약서나 약정서, 합의서나 동의서 따위의 종이 쪼가리로 무언가를 금지하거나 허용할 게 아니라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손수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보인다면, 병원을 역량있는 근로자들과 오랫동안 함께 키워나가는 게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