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간호사 제도를 둘러싼 대충돌을 바라보며

강윤희 위원
발행날짜: 2021-09-27 05:45:50
  • 강윤희 전 식약처 심사위원

전문간호사 업무범위 개정안을 두고 간호협회, 의사협회, 응급구조사협회, 간호조무사협회 등이 대충돌하고 있다. 의사직군, 특히 마취통증의학과는 이 개정안의 내용이 모호해 마취전문간호사가 마취를 직접 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반대한다. 전공의협회는 전공의 트레이닝이 부실해진다고 반대한다. 응급구조사협회는 응급전문간호사의 직무 범위와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모호해 자신들의 직업이 사라진다고 반대한다. 여기에 간호조무사협회까지 가세해 전문간호조무사도 인정하라며 반대한다.

이렇게 대규모 이해충돌이 발생한 이유는 진료보조인력, 즉 미국/영국/캐나다 등에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PA(physician assistant) 직군이 국내 의료시스템상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유사한 업무를 간호사, 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 등이 다양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오래된 문제인데, 최근 논란이 촉발된 것은 보건의료노조의 PA 합법화 요구와 더불어 서울대학교병원이 CPN(clinical practice nurse)이라는 이름으로 PA 역할을 공식으로 병원내 구축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PA 문제의 근본에는 값싸게 인력을 운영하려는 병원 운영자들의 얄팍한 술수가 있다. 물론 이 저변에 기형적인 의료수가 시스템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변질되고 있는데에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이런 현상을 처음 느낀 것은 1995년 서울대병원 인턴 오리엔테이션에서이다.

의사면허를 받고 처음으로 의사로서의 업무를 앞둔 인턴 오리엔테이션에서 서울대병원의 보직을 맡고 있던 한 교수님이 "여러분들은 병원 입장에서는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고급인력에 불과하다"고 얘기했다. 참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한 교수님(올해 정년퇴임하신 종양내과 방영주 교수님임을 밝힌다)이 그 교수님에게 화를 내며 인턴들에게 "여러분들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셨다. 실제 방영주 교수님이 병동회진을 돌 때 마침 담당 레지던트가 옆병동에 가 있었다(일반적으로 교수님 병동 회진시에는 레지던트가 필히 동행한다). 필자가 레지던트를 부르러 가려고 하자 교수님은 "너는 의사가 아니니? 너가 같이 돌면 되잖아"라고 얘기하셨다. 그런데 이제 서울대병원마저 CPN 제도를 운운하는 것은 방교수님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은 이제 다 은퇴하셨다는 뜻이리라.

그러므로 간호협회는 서울대학교병원이 PA 논란을 구체화했다고 감사하지는 말기 바란다. 서울대병원이 진지한 의미에서 우리나라 전문간호사 제도 또는 PA 시스템을 고민했다면 관련 트레이닝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힘썼어야지, 이렇게 갑툭튀 CPN은 아니니 말이다.

어쨌든 필자가 대학병원을 나와 지역종합병원에서 일하면서 상급종합병원과는 다른 의료계 현실을 보게 됐다. 즉, 종합병원에는 인턴/레지던트가 없는 것이다! 그럼 상급종합병원에서 이들이 하는 역할을 종합병원에서는 누가 할까? 필자가 보니 레지던트의 일은 대부분 전문의(진료과장)가 하고 있었지만, 인턴 역할은 다양한 사람들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불가피한 현실이었다. 인턴 트레이닝을 작은 종합병원에서 할 수는 없고, 전문의가 인턴 역할까지 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가피한 현실을 인정하고 이 역할에 대한 법제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PA 역할을 현재 존재하는 직군 중에서 누군가가 맡는다면 의과대학의 간호학과에서 의학을 주요 학문으로 배운 간호사가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간호학과가 의과대학에 포함돼 있는 이유일 것이다. 또한 의사의 역할 중 인턴의 업무 정도를 이 업무에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턴이 마취과를 돌 때 기관지 삽관이나 마취 유도를 하지 않으며, 마취로부터 깨우는 일도 하지 않는다.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과정은 레지던트 이상이 하며, 인턴은 중간에 소위 백을 잡고 기록을 하다가 혹 환자가 일어나려고 한다든지, 소변이 안나오든지, 집도의가 마취과 전문의를 찾으면 "로젯(수술장)으로 뛰쳐나가 선생님!!"을 외치는 일까지가 인턴의 일이었다. 필자는 잘 모르지만 마취전문간호사의 업무에는 간호사로서의 장점을 살린 업무 또한 포함돼 있으리라 생각한다.

복지부는 법리적 해석의 모호성으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이 우려하는 부분을 해결해 줘야 할 것이다. 또한 응급구조사들이 직업이 날아갈까 우려하는 것도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이다. 갈등을 조율하고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니까.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수가시스템과 의사 중심의 기형적인 병원구조에서 가장 희생된 의료직군은 간호사라고 생각한다. 간호협회는 진작에 간호사 직군의 전문성 인정을 위해 더 노력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간호사 면허증의 반 정도가 장롱에 처박히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뭐하다가 갑자기 간호법, 전문간호사, 간호사 당 환자 수 제한 등을 한꺼번에 밀어부치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협회가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 건이라도 하지 못한다면 "의료계에서 누가 호구인지 모른다면 니가 호구다"를 외치고 해체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칼럼은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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