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개발자 인력 쏠림 현상 심각…빈번한 이직도 고민거리
핵심 인력 스카웃 기업 윤리 지적도 이어져 "예고된 혼란"
4차 산업 혁명을 타고 의료기기 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로 부각되면서 개발이나 인허가 등 전문가들의 품귀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의료기기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을 보장해도 채용 자체가 힘든데다 애써 채용한 인력조차 수개월만에 다시 이직하는 사례가 늘면서 고민이 가중되고 있는 것.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이러한 잦은 이직과 스카웃에 대한 기업 윤리 문제까지 불거지는 모습이다.
의료기기 분야 인력난 심화…치솟는 몸값에 기기사들 한숨
21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혁신 의료기기를 중심으로 스타트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나아가 대기업들이 잇따라 산업에 진출하면서 관련 전문 인력에 대한 품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정보기업인 A사 임원은 "지난해 개발자들이 대거 퇴사해 큰 위기를 겪었는데 겨우 채워놓은 인력이 최근 또 다시 무더기로 나가버렸다"며 "2~3년전부터 TO(정원)을 단 한번도 채워보지 못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제는 아예 1년 내내 개발자 모집 공고를 걸어놓는 상황까지 왔다"며 "워낙 구하기가 어렵다보니 지난해 연봉도 대폭 인상했는데 이걸 대체 어디까지 올려야 하는지 이제 감도 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는 비단 A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최근 대기업들에서 잇따라 의료산업 분야에 뛰어들며 관련 인력을 대거 채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인력난은 더욱 더 심화되는 분위기다.
최근 아예 개발팀 전체가 이동하면서 사실상 사업 중단 위기까지 겪은 의료기기 스타트업 B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B사는 올해 상반기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출시를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지만 최근 개발 인력이 대부분 빠져나가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져있다.
CTO(최고기술책임자)가 동분서주하며 동문과 후배들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의료기기라는 산업의 특성상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B사 대표이사는 "사실상 올해가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시점인데 개발팀이 싸그리 빠져나가면서 망연자실한 상태"라며 "CTO가 겨우겨우 개발자들을 모아 놓기는 했지만 몇 년간 손발을 맞춘 인력의 손실은 도저히 메워지지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과거에는 네이버나 카카오 등 대기업들이 신규 사업 진출할때나 조금 걱정하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각종 은행에 보험사, 통신사들까지 블랙홀처럼 인력을 빨아들이고 있다"며 "애써 키워서 대기업에 인력을 갖다 바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RA·PM 등도 귀하신 몸…일각에선 상도덕 지적도
이는 비단 개발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의료기기 인허가의 핵심 인력인 RA(인허가 전문가), PM(상품 관리자) 등의 인력도 이미 품귀 현상이 고착화된지 오래다.
특히 최근 개발되는 혁신 의료기기들은 기획 단계부터 내수 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인력난은 더욱 심화되는 분위기.
문제는 역시 몸 값이다. 이렇게 RA 인력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다보니 억대 연봉을 제시하고도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는 이유다.
의료 AI 개발사인 C사 임원은 "RA 인력은 지금 사실상 부르는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이제 채용 시장의 최상위 포식자다"며 "지난해 전문가로 알려진 인력을 한명을 채용했는데 연봉을 거의 두배 가까이 올려서 다른 곳으로 이직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억대 연봉을 줘도 아예 뽑을 수 조차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도 이제는 아예 대행사를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국내에서 인허가 전문가로 통하는 RA 1급 자격증 보유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전국을 통털어 십수명 밖에 되지 않는 것이 현실.
더욱이 1년에 새롭게 자격을 취득하는 인력도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이미 수요와 공급 곡선은 무너진지 오래다.
한 단계 아래인 RA 2급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특히 혁신 의료기기 등은 의료와 IT, 거기에 ICT 등의 첨단 기술들이 융합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인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RA인력도 문제지만 IR·PR(기업 홍보)와 PM 등의 채용도 만만치 않다. 이 또한 전문성을 가진 인력풀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상당수 기업들이 전문 인력 채용에 지쳐 대행사 등을 통해 이를 보완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마찬가지로 수요가 몰리다보니 이 또한 부담이 커져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C사 임원은 "사람을 찾다 찾다 결국 포기하고 RA와 PR 모두 대행사를 활용하고 있다"며 "인력 자체를 뽑을 수 없다 보니 사실상 선택지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문제는 그쪽 업계에서도 워낙 수요가 많다보니 점점 더 대행 수수료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말 그대로 장사해서 대행사 수수료만 내고 있는 꼴"이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인력난이 점점 더 심화되면서 일각에서는 상도덕에 대한 지적과 비판들도 나오고 있다. 워낙 채용이 쉽지 않다 보니 다른 기업의 인력을 대규모로 스카웃하는 일들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특히 일부 기업들은 아예 팀 전체를 스카웃 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는 상황. 최소한의 상도덕과 기업 윤리가 무너졌다는 지적들이 나오는 이유다.
B사 대표이사는 "기술력이 사실상 전부인 스타트업의 개발팀 전체를 스카웃 한다는 것은 아예 그 기술을 통째로 먹겠다는 것과 다를바가 없지 않느냐"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정말 매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이것은 최소한의 기업 윤리이자 상도덕이라고 본다"며 "상대가 대기업이다보니 말 그대로 찍소리도 못하고 있긴 하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지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