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모시기 개원 지원금 받고 진료 불성실 원장의 최후

발행날짜: 2022-03-04 05:30:00
  • 임대료 안 낸 6개월 동안 지원금 3억 챙겼다가 돌연 폐업 통보
    법원 "의원 운영 의사 없음에도 지원금 목적으로 건물주 기망"

'의원 개원 초기 6개월 이상 적자운영 후 더 이상 회생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임대계약을 파기하기로 하고, 건물주는 보증금을 즉시 반환한다'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의원 임대 계약 합의서는 결국 가정의학과 전문의 A원장의 발목을 잡았다.

A원장은 의원 개원 계약을 하면서 6개월 동안 임대인, 즉 건물주에게 지원금을 받았다. 그 금액만도 3억1800만원에 달한다. 6개월 동안 임대료, 관리비도 내지 않았다.

그러고는 돌연 개원 6개월 후 합의서의 조항을 근거로 A원장은 의원을 '폐업'했다. 동시에 계약 당시 보증금으로 먼저 지급했던 보증금 1억원도 돌려달라고 건물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이영풍)는 A원장이 건물주를 상대로 제기한 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도리어 A원장이 건물주에게 지원금 명목으로 받았던 3억여원을 토해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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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일일까. 판결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A원장의 모습은 전형적인 개원 지원금을 노린 움직임이었다.

A원장은 서울 구로구 한 빌딩 건물주 B씨와 의원 개원을 보증금 3억원에 월 임대료 1200만원, 관리비는 평당 8000원에 계약했다. 계약기간은 5년이었다. 계약과 함께 보증금 3억원 중 1억원을 먼저 주고 나머지는 6개월 후 대출을 받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임대 중 초기 6개월 운영에 대한 적자는 임대인이 책임지기로 한다 ▲6개월 이상 적자운영에 향후 더 이상 회생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임대계약은 파기로 하고, 임대인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한다. 이후 임대인은 보증금을 즉시 반환한다 ▲병원 폐업 후 일어나는 비용 등은 임대인이 책임지기로 하고 민형사상 어떤 책임도 임차인에게 전가하지 않기로 한다 ▲임차인은 초기 6개월 병원운영 중 흑자 시 건물임대료를 즉시 지급하기로 한다 등을 담은 합의서를 따로 작성했다.

A원장의 등장으로 B씨는 건물 자체를 '메디컬 빌딩'으로의 기능 전환을 노렸기에 합의서 내용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6개월 후 A원장의 입장은 돌변했다. 6개월 동안 의원을 운영하면서 약 2억원의 적자를 봤다며 폐업을 결정했고, 임대료 등을 지급하지 않기로 하면서 선지급 했던 보증금 1억원을 달라고 요구한 것.

건물주 B씨는 "6개월 이상 적자 운영 및 향후 회생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이 충족돼야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데, 해당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라며 반박했다.

여기에 더해 "A원장은 처음부터 정상적으로 의원을 운영할 의지가 없었음에도 건물주를 기망해 임대차계약 및 합의서를 체결했다"며 계약 후 7개월이 넘도록 A원장에 지급한 지원금 3억1800만원을 달라며 역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다. A원장이 해당 건물에서 의원을 운영할 의지가 없었다고 본 것이다.

실제 A원장은 건물주 B씨와 계약을 체결한 시점과 맞물리는 시점에 강원도 원주에 있는 건물주와도 2개 층에 대한 임대계약을 체결했다가 같은 이유로 소송에 휘말린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A원장은 강원도 원주 건물주 C주식회사와도 4년의 임대계약을 체결하면서 인테리어 공사비, 의료장비 지원금, 임대차보증금 대체비 명목으로 7억원을 받기로 했고 실제로 계약 후 7개월여 동안 7억9943만원을 받았다. C주식회사는 A원장을 대상으로 지원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B씨 건물 1층에 입점해 있던 약국에서 쓴 경위도 주효하게 작용했다.

약사는 "병원은 있다고 하는데 진료할 의사는 오지 않고 언제 병원 진료를 시작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라며 "가정의학과 원장이 혼자 위층과 아래층으로 다니면서 진료를 봤고, 원장은 6시 되기도 전에 나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원장은 진료 의욕이 없고 무능해 보였으며 병원 운영이 매우 불성실했다"라며 "처방전도 잘 나오지 않아 약국도 타격이 컸다. 의사든 간호사든 곧 떠날 사람처럼 건성으로 병원에만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라고 밝혔다.

법원의 판단으로 A원장은 그동안 서울과 원주 건물주에게 받았던 지원금 11억여원을 다시 토해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재판부는 "A원장은 B씨 건물에서 병원을 운영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오히려 임대차계약 및 합의서 체결 당시부터 정상적인 병원 운영에 관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또 "의사를 적절하게 충원하지 않고 본인 역시 진료시간을 준수하지 않는 등 병원 운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라며 "임대차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병원을 운영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지원금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마치 그런 의사가 있는 것처럼 건물주를 기망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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