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방역 정책이 남긴 흉터

발행날짜: 2022-05-30 05:00:00
  • 의약학술팀 이인복 기자

2년을 넘게 이어온 코로나 대유행이 이제서야 정부의 주도로 엔데믹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여전히 만명대 확진자가 나오고 있지만 오미크론의 등장으로 중증도가 낮아지면서 이미 사회 대부분의 기능들은 정상 궤도로 접어들고 있고 방역 조치도 사실상 최소화되는 분위기다.

이렇듯 거셌던 폭풍우가 지나가면서 방역에 동원됐던 의료기관들도 차츰 정상화 단계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코로나 환자에 대한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해제되면서 의료기관들의 부담이 한층 줄어든 덕이다.

하지만 순조로워 보이는 일상회복 분위기와는 별도로 의료기관 내부적으로는 그동안 곪았던 문제들이 하나씩 수면위로 올라오는 모습이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변경되는 방역 정책에 따라가느라 애써 묻어놨던 부분들이 흉터가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의 경우 현재 소아과 전공의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이 병원에는 4년차부터 3년차, 2년차까지 골고루 전공의가 배치돼 있었지만 불과 1년여만에 대부분 수련병원을 떠났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1년차 전공의도 곧 나가게 될 것으로 교수들은 바라보고 있다. 상급년차가 없는 상황에 1년차가 얼마나 버티겠냐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교수들이 분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병상 확보를 위한 정부의 강제 조치에 있었다.

실제로 이 병원은 서울권 대다수 대학병원이 그렇듯 이미 병상 가동률이 90%를 넘긴 상황에 있었다. 오로지 병상이 남아있던 과는 소아과였다. 코로나 대유행 후 소아 환자가 절벽 수준으로 가장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장 코로나 병동을 마련하라는 정부의 강압에 의해 병원은 당연스럽게도 100병상에 달하던 소아과 병동을 10병상으로 10분의 1 토막을 냈다. 더 병상을 뺄 수 없을때는 5병상까지 줄였던 적도 있다.

당연스럽게 소아과 의료진들은 다른 곳으로 줄줄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고작 5병상을 운영하는데 그리 많은 인원이 필요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이 줄사표를 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제각기 찢어져 선별진료소 등에 배치되고 본인이 배워야할 소아과 전공 수련은 모두 뒤로 미뤄졌다. 이렇게 몇년이 이어지자 이들은 마침내 병원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떠난 것은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소아과를 가득 채웠던 간호사들도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이들 또한 이유는 같았다.

이 병원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병원에서도 소아병동은 인력을 키우기 쉽지 않은 곳으로 분류된다. 간호인력 또한 마찬가지다.

신생아실이나 소아중환자실 간호사 등은 몇년을 걸쳐 키워내야 하는 또 하나의 전문 인력이다. 이제와서 다시 이 공백을 채워야 하는 상황은 병원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비단 이 병원만의, 소아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적으로 거의 모든 수련병원들과 전공의들은 같은 고민과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외과학회의 조사 결과 전국 20개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들이 기본 술기와 평점을 채우지 못해 전문의 시험 자체를 볼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고 한다.

대부분이 정부의 동원령에 따라 인력과 병상을 내놔야 했던 서울대병원, 전남대병원, 전북대병원, 경북대병원 등 국공립 의료기관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그대로 구제하기에는 과연 전문의로서 배워야 할 것을 다 익혔는가에 대한 딜레마가 남는다. 코로나 시대를 살았던 비극이고 급조된 방역 정책에 투입된 상처다.

누군가는 평생을 다짐했던 소아과 의사의 길을 접었고 누군가는 인생에 있어 소중한 1년을 잃게될 위기에 놓였다. 사명감과 보람으로 소아 중환자실을 지키던 간호 인력은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급조된 방역 정책을 쏟아놓던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폭풍우가 걷히고 햇살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누군가는 평생에 남을 큰 흉터를 얻었다. 하지만 그 흉터를 만든 사람들은 이제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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