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보건의료정책 심포지엄…의사·환자가 바라는 의료환경은?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저수가…"자유 방임형 의료이용체계 원인"
계속되는 의료인에 대한 폭력이 저수가에서 기인한 3분 진료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법·제도 개선을 통한 문화·관습 혁파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8일 서울대병원 제일제당홀에서 열린 제2차 보건의료정책 심포지엄에서 지난달 발생한 응급실의사 살인미수 및 응급실 방화 등 의료인에 대한 폭력이 반복되는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3분 진료 문화를 꼽았다. 우리나라는 1997년 건강보험을 시행하면서 저수가·저부담·저급여 기조로 제도를 추진했는데 이로 인해 저수가를 양으로 메꾸는 진료 문화가 고착됐다는 분석이다.
이어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시행과 함께 행정구역에 따른 진료권을 설정하기 위해 1·2·3차 의료기관 간 의료전달체계를 시도했다. 하지만 1998년 지역 간 공급 불균형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진료권 개념이 폐지되면서 사실상 자유 방임형 의료이용체계가 됐다고 꼬집었다.
우 소장은 "3분 진료 문화는 환자 입장에선 존중감을 느끼지 못하고 의사 입장에서도 환자와 충분한 교감을 나눌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의사는 고강도 업무로 번아웃을 호소하는 문제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커뮤니티케어 정책이 추진되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지금의 의료 정책은 탈의료, 탈시설에 매몰된 초고령사회 문제에 대한 대응책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 확립을 위해선 현재 의료제도를 둘러싼 복합적인 문제들의 요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이중 공공의료 문제와 관련해선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현재 공공보건의료는 취약계층 보장 및 재난 및 감염병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우리나라엔 6만 병상이 넘는 공공병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지 못해 비판이 일기도 했다. 더욱이 민간의료기관 역시 공공성을 띄고 있음에도 관련 지원이 공공의료기관에만 쏠리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적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선 단편적인 시각이라 반박했다.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가 OECD 38개국 중 뒤에서 3번째로 적은 것은 맞지만, 국민 1인 당 연간 진료 횟수는 17.2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는 이유에서다.
즉, 의료의 질은 의사의 수와 상관이 없으며, 이 같은 지표는 우리나라 의사가 매우 효율적으로 진료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과도한 진료로 우리나라 의사들의 워라밸이 떨어지는 것은 문제로 꼽았다.
우 소장은 우리나 보건의료정책은 미봉책으로, 중장기 정책은 없고 공무원 인사 주기인 2년에 맞춘 단기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최근 정책이 공공의료 확충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특히 지난 정권에서 시행된 상급병원 중심 보장성 강화가 저수가 부메랑으로 돌아와 의료비가 폭증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5년 단위 요양급여비 누적 증가율을 보면 2010~2015년 누적 증가율은 33%였지만, 2015~2020년 누적 증가율은 49.7%로 증가했다. 향후에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2030년 요양급여비 총액은 173조 원에서 238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번 정부 들어선 이전과 다른 기조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국민생명과 직결되는 감염병·응급·중증외상·분만 등 필수의료 인력 및 인프라를 강화해 지역완결적 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우 소장은 이 같은 정책 기조의 변화는 소유가 아닌 가치, 성과를 강조하는 새로운 의료 공공성 개념에 부합하며 우리나라 보건의료 현장 상황과도 맞는 방향성이라고 봤다.
그는 "문화와 관습은 단시간에 생겨나지 않는다. 3분 진료 문화만 해도 30년이 넘는 세월 속에 생겨난 것이다"며 "우리나라에선 의사와 환자 모두 3분 진료를 당연 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폭력사건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의사들이 큭 위축되고 있다. 지금의 문화와 관습을 그대로 두기엔 치러야 할 대가가 커 이를 혁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소비자연맹 강정화 회장은 국민이 바라보는 보건의료서비스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강 회장은 의료소비자가 바라는 의료서비스의 중요 조건으로 의료 접근성, 의료의 질, 의료 비용을 꼽았다.
소비자·환자 중심으로 가기 위해서는 보편적 건강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삶의 질을 포함한 전반적인 건강수준 제고, 과도한 의료이용 방지 및 의료의 질 제고, 의사와 환자 간 공동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정보제공 등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우리나라 의료 접근성과 관련해 지역 간 격차 해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치료가능사망율을 보면 인구 10만 명당 서울은 36.36명인데 반해 충북이 46.95명, 강원 46.7명, 전북 46.1명, 경북 45.25명으로 차이가 있다.
이밖에 소득별 건강 불평등도 문제로 꼽았다. 또 의료진과 환자와 그 보호자와의 소통도 부족하다고 진단했으며, 현재의 의료서비스는 치료 중심으로 이뤄져 예방과 관리를 위한 서비스를 받긴 어렵다고 우려했다.
접근성 측면과 관련해선 간호·간병서비스가 부족하다고 짚었다. 특히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2015년부터 여전히 시범사업에 머물고 있으며 2021년 기준 이용률이 20%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또 의료·건강정보 범람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수가 비급여 관련 홍보용이어서 소비자의 잘못된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의료사고에 대한 정보는 없다고 전했다.
질 측면에선 소비자 안전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환자 보고시스템 등을 통해 환자 안전을 보고하고 의료사고 정보를 공개적으로 관리·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신의료기술평가·의료재평가도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비용 측면에선 고령인구 증가로 인한 의료비 급증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연령대별 진료비 비중에서 10세 미만은 2000년 15.1%에서 2019년 5.8%로 감소했다. 이 같은 감소세는 25~34세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65세 이상 진료비 비중은 같은 기간 17.4%에서 40.5%로 급증했다.
또 소비자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비용 효과적인 의료비 지출 추구 ▲필요 이상의 의료서비스 이용 환경 통제 ▲비용이 높은 치료보다는 질병 예방에 투자 ▲국민 의료편익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 비용증가 통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회장은 소비자중심 의료서비스를 강조하며 치료 중심의 의료 체계에서 전 생애 건강증진체계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주치의 중심의 1차 의료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1차 의료기관의 의료 질 향상과 상급의료기관·사회복지서비스와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와 함께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한 재택의료, 비대면진료 지원과 의료취약지역에 대한 공공의료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소비자를 위한 의료서비스를 위해선 소비자가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생산·제공돼야 한다. 특히 비급여의 경우 가격 중심 정보보단 유효성·안정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며 "현재의 지불제도와 의료 이용 환경은 의료진과 소비자 모두에게 좋은 점이 없다.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서 적정기준을 마련하고 의료연장에 적용해 합리적인 의료이용 환경 조성 및 소비자 인식 제고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패널토의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의원은 "질 평가와 관련해 가장 시급한 부분은 중소병원과 의원급이다. 하지만 관련 논의는 한 발짝도 가지 못하고 있다"며 "질을 어떻게 보상과 연계할 지가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가정의학회 강재헌 정책이사는 "현재 보건의료체계 수가체계는 과도한 의료이용을 제동하기는 커녕 반대로 가고 있다"며 "오히려 실손보험 때문에 불필요한 요구를 하는 환자가 늘어났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이를 막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치료중심에서 예방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소비자의 경제적 이익 보호를 위해서도 고가의 치료보다 예방에 투자해야 한다"며 "하지만 지금의 수가체계에선 이 같은 방식이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치의, 커뮤니티케어 등 제도적인 출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병원협회 송재찬 상근부회장은 "분석은 세밀하게, 가치판단은 천천히, 분석해서 결론을 낼 필요가 있다"며 "집단적인 네트워킹 협업이 이뤄질 때 밸류를 잡는 것이 가능하다. 의료계에도 협업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주치의 중심 1차 의료는 중요하다. 특히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의료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하지만 진료비지불제도가 인두제 가깝고 이 같은 방식은 상급의료로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에 대한 국민의 동의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또 "재택치료·비대면진료 확산도 주치의의 판단에 의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엔 환영이지만 전면적인 시행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환자의 의사와의 접점을 얘기하는데 이뿐만 아니라 의사와 의사, 의료기관과 의료기관과의 전달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