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한 순간 해당 의료기관 재난대응 매뉴얼 제대로 작동
투석협회 김성남 이사장 "엉뚱한 해법 나올라 우려"
이천 화재 사건 이면에는 해당 의료기관의 원칙에 따른 신속한 대응이 희생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해당 의료기관 의료진들은 갑작스럽게 연기가 유입됨과 동시에 기지를 발휘해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 긴급재난 매뉴얼을 이행한 덕분에 더 큰 피해를 줄였다는 얘기다.
8일 투석협회 등 의료계가 파악한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경기도 이천시 한 빌딩 3층 스크린골프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당시 바로 윗층 혈액투석실을 운영하던 의료기관에서는 42명의 환자와 의료진이 투석을 진행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자 상황을 파악하고자 창문을 열자마자 빠르게 연기가 의료기관 내부에 유입됐다. 불과 1~2분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간호사 등 의료진들은 평소 긴급재난 매뉴얼대로 환자의 팔목과 연결된 투석기 관을 가위로 자른 후 이들을 대피시켰다. 투석 중인 상황이라 사방으로 피가 튀었지만 이는 환자를 대피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인 셈이다.
사망한 간호사는 마지막까지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의족을 채우는 것을 돕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투석협회 김성남 이사장은 "현장 상황을 파악한 결과 해당 의료기관은 재난상황에서 매뉴얼을 잘 수행한 것을 확인했다"며 "그 결과 피해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이 된 간호사 의사자 추진에 적극 찬성하고 경의를 표한다"며 "만약 의료진들이 투석 관을 바로 자르지 않고 시간을 지체했으며 더 큰 사고로 이어졌을 수 있었다"며 해당 의료기관의 대응을 높게 평가했다.
스프링클러 의무화 압박 커지나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8일 논평을 통해 "고 현은경 간호사의 의사자 지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화재 발생시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의료기관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회가 재발방치 대책을 언급하면서 의료계는 벌써부터 이번 사건의 후속대책으로 스프링클러 의무화 등 정부 규제 방안에 대한 우려가 높다.
앞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기동민 의원(더불어민주당), 박성중 의원(국민의힘)이 대표발의한 소방시설법 개정안을 심사,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중단한 바 있다.
개정안의 골자는 의원급을 포함한 모든 의료기관에 스프링클러 및 제연시설 설치 의무화하는 내용. 당시 의료기관은 중환자, 와상환자 등 화재 발생시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소방안전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발의한 바 있다.
이후 정부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대상으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를 추진했지만 코로나19 확산 등을 이유로 일단 스톱 상태였다.
대한병원협회 한 임원은 "최근 이천 화재 사건으로 스프링클러 의무화 압박이 거세지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면서 "일부 의료취약지 이외 비용 지원은 없이 의무화만 추진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튈라 우려스러운 표정이다.
김성남 이사장은 "이천 화재 사건은 스프링클러 여부와 무관하다. 오히려 스프링클러까지 작동했으면 수습이 더 어려웠을 수 있다"면서 이번 화재의 해답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대한신장학회 황원민 전 일반이사(건양대병원)는 "학회 차원에서 코로나19 이외 화재 등에 대응하고자 지난 6월 재난특별위원회를 신설했다"며 "이번 사건 관련 소방 관련 지침을 거듭 숙지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의 회원 서신을 발송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를 계기로 정부는 일선 의료기관 소방점검에 나서겠지만 사실 이번 사건은 긴급재난 매뉴얼이 작동한 사례"라며 "해당 의료진이 신속하게 잘 대응했다는 점을 인정받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