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사 소송전은 현재진행형 "공보험과 사보험은 다르다"

발행날짜: 2022-09-12 05:30:00
  • 정혜승 변호사, 손해배상·양수금 소송 휘말린 21개 병의원 대리
    "비급여 진료도 진료기록부 작성 구체적으로 남겨야"

실손보험사에게는 보험 가입자, 즉 환자를 대신해 의료기관을 상대로 소송할 자격, 법률 용어로 '채권자대위권'이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온지 약 3주가 지났다.

대법원 판결 이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잡히지 않았던 채권자대위권 관련 하급심 선고 및 변론 기일이 줄줄이 잡히는가 하면 일부 보험사는 아예 부당이득금 소송 자체를 취하하는 모습이다.

실손보험사의 채권자대위권이 의료계에서 이슈로 떠오른 것은 '맘모톰 시술'이 결정적이었다. 보험사들이 신의료기술을 인정받기 전 실시한 맘모톰 시술은 임의비급여라며 병원들이 환자에게 받은 진료비는 부당이득금이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000억원대에 이르는 소송이었던 만큼 개원가를 넘어 병원계도 법원 판단에 눈이 쏠렸다.

정혜승 변호사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도 실손보험사들의 무차별 소송전에서 의료기관을 대리해 소송을 맡아왔다. 특히 맘모톰 관련 부당이득금 소송에서 지난달 31일 대법원의 '각하' 판단을 받아냈다.

정 변호사는 약 3년 동안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고객인 환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 금융감독원의 제제 대상이 된다'는 보험사의 주장이 가장 황당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1심 판결문에도 나와있는데 재판부는 왜 보험사가 보험 가입자 즉, 환자를 대신(대위)하는 방식으로 의료기관에 진료비 반환을 청구하는지에 대해서 물었다"라며 "재판부도 궁금해 했지만 변호사로서도 궁금했다. 환자와 보험사의 관계에 왜 상관도 없는 의료기관이 소송에 휘말려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험사는 고객을 상대로 소송을 많이 하면 금감원의 제제 대상이 된다고 답했다"라며 "결국 보험사가 업무를 잘못했으면 제제를 받아야 할 문제인데 제제를 피하겠다고 법원에 얘꿎은 의료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금감원 제제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법원 역시 정 변호사와 같은 의문을 품었고, 결국 1심 법원부터 대법원까지 '각하'라는 일관된 판단이 나왔다.

그럼에도 의료기관을 상대로 한 실손보험사의 소송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부당이득금 소송은 '각하'로 마무리되는 수순이지만 손해배상과 양수금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정 변호사도 관련해서 현재 병의원 21곳을 대리하고 있다.

양수금 소송은 아예 보험사가 환자에게 '채권'을 양수 받아 의료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채권자대위권이 없다고 하니 아예 환자에게 미리 허락을 받은 후에 움직이는 방식이다.

손해배상 소송은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임의비급여 의료행위를 한 것 자체가 보험사에 대한 불법 행위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실손보험은 가입자와 보험자의 계약 관계이고 의료기관은 제3자다. 임의비급여든 아니든 의료기관의 행위가 왜 보험사에게 손해가 가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며 "보험사는 건강보험법을 끌고 와서 주장하고 있다. 건보법에는 의료기관이 부당청구하면 법령에서 환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보험과 사보험은 다르다"라고 선을 그으며 "건강보험은 의료기관이 직접 정부 기관에 청구하니까 건보공단도 환수할 수 있는 것이다. 실손보험은 의료기관이 직접 개입하지 않는 말 그래도 개인보험"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법적 다툼에서 최근 국회에서 등장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에 대한 보험사의 속내도 확인할 수 있다. 보험사는 국민에게 편의성을 제공하기 위함이라며 실손보험 청구를 의료기관이 직접 해야 한다고 한다. 해당 법이 만들어지면 궁극적으로 실손보험사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이같은 손해배상 소송도 가능해진다는 소리가 된다.

정 변호사는 실손보험사가 더이상 소모적인 소송전을 제기하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약관'을 보다 꼼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실손보험사 소송을 수십건 진행해보니 약관이 너무 폭넓게 돼 있다"라며 "최근 암 환자에 대한 지급 거절 사례도 많은데, 약관에는 '치료하면 준다'라고 돼 있는데 보험사는 해당 치료가 필요한 치료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지급을 거절하고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약관을 만들 때 현재와 같은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엄연히 보험사의 실책"이라며 "실책을 인지했으면 손해를 감수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의료기관 탓을 먼저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보험사의 무차별 소송을 제한하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지만 보험사들은 여전히 고객인 보험 가입자를 넘어 의료기관을 상대로 다양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보험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지는 판례'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며 의료기관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진료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했다.

그는 "부당이득금 소송은 각하 판결로 점철되면서 보험사가 문제제기한 의료행위의 위법성 여부는 재판부가 따지지 않고 있다"라며 "아직 갈길이 남아 있는 손해배상과 양수금 소송은 해당 의료행위의 위법성, 적절성 등에 대한 사실관계 다툼이 따른다"라고 운을 뗐다.

정혜승 변호사는 "보험사가 문제를 제기하는 의료행위도 다양하다"라며 "의료기관 입장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심사 청구는 진료비 조정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진료기록을 비교적 꼼꼼히 남기고 있다. 하지만 비급여 부분에 대해서는 (진료기록부 작성이) 좀 부실한 경향이 있다. 단순히 관련 시술을 했다, 안했다가 아니라 어떤 이유로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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