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공무원 학생 대상 한국 보건의료정책 강의하며 보람
"이후 정책은 후배들의 몫…말 아끼는 게 선임자 역할"
"올해 단풍이 참 좋더라고요. 공직에 있을 때에도 등산을 즐겼지만 단풍을 즐길 여유는 없이 지나간 것 같아요."
보건복지부 공무원으로 식품의약처장으로 30여년간의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모교로 돌아온 연세의대 김강립 교수. 그가 수업을 시작한 지 한달 남짓. 아직은 어색할 법도 하지만 30년 공직생활에서 몸에 벤 성실함으로 그만의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침 출근길에 독서를 즐기고 학생 수업 준비와 간간이 학술대회 좌장 등을 맡아 진행하면서 일상을 채워가고 있다.
그는 교수가 되면서의 가장 큰 변화로 방송 및 신문 기사로부터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에서 실장을 거쳐 복지부 차관, 식약처장까지 지내면서 보건의료정책 관련 뉴스 하나하나 챙겨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책을 펴는 공무원의 숙명.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녹아드는지 수시로 살펴야 하는 미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냈죠. 공직 옷을 벗고 보니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는지 새삼 느낍니다."
그가 결정해 추진하는 의료정책 하나하나가 국민 전체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만큼 책임감이 막중했다고. 실제로 복지부 근무를 시작해 10년간 연차 10일을 채 못 냈을 정도로 시간에 쫓겨온 시절이었다.
김 교수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보건복지부 장관 유력한 후보자로 마지막까지 물망에 올랐던 인물. 복지부 30년 공직생활에 이어 식약처장까지 성실함을 기반으로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며 높은 평가를 받은 터. 공직자 출신 장관을 물색한다는 인사설에 복지부에선 단연 그가 손에 꼽혔다.
공직을 떠난 그에게 향후 보건의료정책 방향을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노코멘트였다.
"공직을 떠난 사람이 향후 정책을 논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혹여라도 현업에 있는 후배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으니까요."
그는 이어 지난 30여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은 사업에 대해서도 노코멘트를 유지했다. 어떤 의료정책도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으로 가벼운 일, 중요한 일을 구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특정 사업을 얘기했을 때 그 이외 사업을 추진했던 이들에게 섭섭함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게 노코멘트 이유였다. 시원한 답변은 없었지만 지난 30여년간 공직생활의 깊은 내공이 물씬 풍겼다.
그는 의과대학 강단에서도 어느새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보건의료 현업에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보건대학원 수업부터 외국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국의 보건의료정책 수업까지 폭넓다. 현업에 있는 학생에겐 의료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이해를 돕고, 외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한국의 선진 의료제도를 추진해 온 공직자의 직강(직접듣는 강의)인 셈이다.
"마침 연세의대는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꽤 많더라고요. 특히 개발도상국 공무원이 한국의 보건의료제도를 배우고자 오는 학생도 있어서 더욱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또한 과거 사무관 시절 WHO장학금을 받아 선진국의 의료제도를 접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식약처 모델을 기획한 경험이 있기에 외국 학생 수업을 허투루 할 수가 없다. 과거 개발도상국 공무원에서 시작해, 2022년 선진국에서도 부러워하는 K-방역을 이끌었던 공무원을 지낸 그가 바라본 '보건의료'는 더이상 한 국가만의 미션이 아니다.
"얼마전 윤석열 대통령이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글로벌 펀드 조성에 3년간 1억불 기여하겠다고 공언했는데요. 이런 약속이 지켜진다면 국제사회는 한국과 한국의 의료제도를 지지하게 될 겁니다. (코로나19로 이미 경험했지만)이미 세계는 하나로 묶여져 있어요. (해외)그 나라가 건강해야 한국도 건강할 수 있다는 점을 모두 알았으면 좋겠어요."
김 교수는 마지막까지 한국의 보건의료제도에 대한 관심과 응원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