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계 반발에 방사선사·임상병리사 가세…"오진 위험 커"
계속되는 의사단체 규탄성명…한의계, 직역 이기주의 비판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로 의·한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의사단체들의 규탄성명이 줄을 잇는 상황에서 의과계의 규탄 기자회견에 방사선사· 임상병리사들이 동참하는 등 논란이 전 의료계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26일 대한의사협회는 대한방사선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와 함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관련 대법원 판결이 전원합의체의 '정치적 판단기준'을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의협 이필수 회장은 삭발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초음파기기 사용에 따른 의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한의사 A씨에 벌금 8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한 것에 따른 반발이다.
한의사 A씨는 한 여성 환자를 2010~2012년 총 68회에 걸쳐 초음파검사 했지만, 자궁내막암 진단을 놓쳐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들 단체는 이번 재판이 오진으로 피해 본 환자의 사례임에도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에만 초점을 맞추는 등 국민건강을 방임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판결의 근거인 초음파기기 자체의 낮은 위험성 역시 정확한 진단명과 진단 시기의 중요성을 간과한 무책임한 판단이라고 꼬집었다.
이들 단체는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고 사람의 생명과 공중위생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이에 의료법은 의료인 면허제도를 통해 의료행위를 의료인에게만 허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인도 각 면허 범위 외의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취지로 현행 의료법 제2조 역시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적시해 한의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초음파검사는 영상 현출과 판독이 일체화돼 검사자의 고도의 전문성·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로 한의사가 수행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방사선사협회·임상병리사협회 역시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탰다. 초음파검사는 의사의 지도 아래에 방사선사·임상병리사 등 특정 직역이 수행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단체는 "현재 허가된 의료용 초음파기기가 인체에 유해성이 적으므로 전체 초음파 진단기기를 누구나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것은 단편적이고 비전문적인 시각이다"라며 "진단과 판독의 일체성이 강한 초음파 진단기기를 잘못 사용할 경우,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과 진료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초음파기기를 한의 진료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안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반면 대법원은 환자 생명과 관련된 사안에 위험성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
이들 단체는 "피해를 본 환자가 있는데도 재판부는 이를 처벌하지 않았고 이는 국민 생명과 건강을 외면하는 것이다"라며 "대법원은 그 근거로 '새로운 판단기준'이라고 제시하고 있지만, 어느 누가 이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국회와 보건복지부에 의료법령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의료인의 면허 범위를 구체적으로 확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단체는 또 이번 판결을 빌미로 한의사가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등 무면허 의료행위를 시도한다면, 불법의료행위로 간주하고 총력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의사단체들의 규탄성명도 계속되고 있다. 의협 대의원회 및 대한개원의협의회는 물론 ▲서울특별시의사회·대전광역시의사회 등 시도의사회 ▲내과·소아청소년과·정형외과·산부인과·가정의학과 등 진료과 의사회 ▲대한영상의학회·대한정맥통증학회·한국초음파학회·바른의료연구소 등 학회·연구소가 연이어 규탄성명을 배포하는 상황이다.
한의사 초음파기기 사용은 오진 가능성이 커 국민건강에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큰데도, 대법원은 초음파기기 자체의 위험성이 낮다는 이유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놨다는 지적이다.
한의계는 이 같은 주장이 의과계의 이익만 추구하는 직역 이기주의라고 맞섰다. 국민 건강증진과 진료선택권 보장을 위해선 한의사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에 협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과계에서도 일반의가 초음파기기를 사용하고 있고 오진 등 의료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지적이다. 이날 개최된 의협·방사선사·임상병리사협회 기자회견 역시 초음파기기와 큰 관련이 없는 단체들과 대동해 세력을 과시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로 한의사가 진료에 초음파기기를 활용하는 것은 합법적인 행위임이 드러났으며 이는 명확한 사실이다"라며 "의과계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고기관인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그 내용을 멋대로 재단해 국민과 여론을 속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어떠한 경우라도 국민의 소중한 건강과 생명이 최우선이며 한의사들은 국민에게 최고의 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준비가 됐다"며 "의과계는 한의사 초음파기기 사용으로 인한 오진을 걱정하기에 앞서 의료사고를 줄일 수 있는 내부단속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