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것은 자라온 배경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내 결론은 '혜성처럼 나타난 송흥민은 없다'다.
나는 과거 보험회사 인사부장을 2년했다. 같은 사무실에 인사부와 총무부가 있었다. 입사직후라 한분 한분 인사카드보고 외울때였다. 총무부에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르는 직원이 한분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책상위에 무슨 도사처럼 웅크리고 하루종일 앉아있었다.
그 직원은 뭐하는 분인가요? 총무부장에게 물으니 씩 웃음지며, 축구단 코치할 분이라는 것이었다. 이름이 '손웅정'(손흥민의 아버지)이었다. 작고, 인물도 그리 호남형은 아니어서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고교 후배라 만나면 눈인사정도하고 지내는 사이가되었다.
몇개월 지나고 실업축구단이 창단되었다.
단장은 내 보스였고 감독은 그 유명한 신윤기, 코치는 손웅정이었다. 독종 신윤기감독와 더 독종 손웅정코치의 만남이었다. 이들을 추천한 분이 독종 중 독종 박종환감독이었다. 독종들이 모여 다른 축구단 선발에서 제외되어 악만 남은 2,3류 선수들을 모아모아 축구단을 꾸렸다.
만화에서 나오는 외인구단 같았다. 안봐도 비디오다. 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홈구장하나 없이 이리저리 옮겨가며 눈물겨운 사투가 계속되었다. 신생보험회사라 돈도 부족했다. 주주들의 반대도 많았다. 나까지 투입되어 난생처음 축구선수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했다.
결과는 축구단 창단 첫해에 "우승"이었다.
'혼연일체'라는 말을 처음 실감했다. 묵묵히 뒤에서 선수들의 기초체력을 되잡아 주는 '손웅정'을 다시 보는 기간이었다. 우승뒤에 후폭풍은 더 컷다.
선수들중 5명이 프로축구단으로 이적했다. 이적료로 축구단이 그동안 '돈먹는 하마'란 소리를 잠재웠다.
좋은 선수들이 또 지원했다. 몇년후 회사자체가 M&A당해 축구단이 해체되었다.
신윤기 감독은 바로 프로축구단 감독으로 스카웃되었다. 손웅정은 초등교 축구코치로 활동하면서 그만의 축구에 대한 철학으로 손흥민을 키웠다. 손흥민도 흔히 말하는 1만시간의 법칙?으로 월클world class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보기엔 3만시간법칙? 그 이상이다.
업무에 탁월한 탤런트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는 업무를 해결하는 데는 역량과 경험과 태도가 비빔밥처럼 버무려져 만들어진다. 소요시간도 그렇다. 첼로음이 좋아 첼리스트 장한나(1982년생)를 조금 알기 시작한 것이 10여년 전부터이다.
어느날 TV를 켰더니 장한나가 미친듯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었다. 당시는 30세초반이었으니 '머리가 희끗희끗해야 지휘를 할 수 있는 자격?'으로 머리속에 꽉차있는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어떻게 저 나이에 20여개의 다른 종류 악기와 100여명의 연주자들을 지휘할 수 있을까?
그 다음날도 화두에 이고 다녔다. 답이 나왔다.
장한나는 시간만 10000시간 보낸 것이 아니라 '음악에 몰입한 시간이 수만시간이니까 가능한 것이지'란 생각이 드니 의문이 사라졌다.
손흥민도 손웅정도 장한나도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다. 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은 시간을 따지지 않고 몰입한다. 손흥민의 제일 통쾌한 골은 2019년 12월 8일, 번리전에서 73m 드리블 후 원더골을 터트린 골이었다. 이 골은 2020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골에 선정되고 한국인 최초로 푸스카스상을 받았다.
푸스카스는 누구인가?
1960년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세계 최고의 골잡이 페렌츠 푸스카스(Ferenc Puskas Biro)가 있었다. 한 기자가 푸스카스에게 물었다."어떻게 하면 그렇게 축구를 잘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푸스카스가 웃으면서 대답했다."나는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축구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축구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푸스카스, 그상을 받은 손흥민, 그의 아버지 손웅정, 첼리스트면서 지휘자인 장한나, 산업계에서 수많은 탤런트들 이들은 모이면 축구, 음악,업무얘기하고 혼자있을 때는 축구,음악,업무만 생각한다.
혜성같이 나타난 스타급 탤런트은 없고 엄청난 몰입한 시간을 가진 탤런트만 있을 뿐이다.
손웅정이 이렇게 유명해 질 것 같았으면 그때 더 잘해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