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신문 기자 조선대학교 본과 4학년 한민형
필자는 서울과 경기도에서 나고 자랐는데, 수능 점수에 맞춰 연고 하나 없었던 광주로 대학을 온 탓에 자주 KTX를 타고 경기도와 광주를 오가곤 한다.
KTX를 여러 번 타다보면 옆자리에 앉는 사람에 따라 쾌적함이 달라지는 걸 느끼는데, 그래서 열차를 탈 때 옆자리에 누가 앉을지는 필자의 소소한 이슈거리이다. 그날도 옆자리에 누가 앉을까 스치듯 생각하며 KTX에 올랐다.
달달한 음료가 당겨서 산 마시는 요거트를 하나 든 채로. 자리에 앉아서 가다보니, 다음 역에서 하얀 피부에 시원한 향수 냄새가 나는,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여성분이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편하게 가겠구나, 생각하며 흐뭇하게 눈을 감았다.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사 온 요거트가 먹고 싶어져서 뚜껑을 따는데, 탁, 따던 중에 요거트 몇 방울이 손에 튀었다. 좀 조심할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찰나, 옆자리 여성분이 톡톡 어깨를 두드리더니 가방에서 휴지를 건넸다.
생각지 못했던 호의에 놀라서 엉거주춤 감사 인사를 하고 손에 묻은 요거트를 슥슥 닦았다. 그리고 닦은 휴지를 가만히 보는데 마음에 따뜻함이 사르르 번져왔다. 모르는 사람의 작은 호의와 관심에, 그 다정함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가볍게 휴지를 건네던 여성분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분은 몸에 배인 다정함으로 주변에 따뜻함을 선물했겠지? 필자도 이 따뜻함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K 실습을 돌다 보면 아픈 사람들을 많이 마주한다. 다만 의대생인 필자는 교수님과 환자의 대화를 지켜보는 철저한 방관자 역할이다. 의사도, 환자도 아닌 위치에 서서 실습을 돌다 보면 때론 의사의 입장에서, 때론 환자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게 된다.
혈종 회진을 돌며 한 말기 암 환자에게 교수님께서 성심성의껏 검사 결과들을 설명하시고 가려던 찰나 환자분이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선생님, 선생님같이 다정한 분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 말에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찾아들었다.
중한 병이나 말기 암 환자를 볼 때면 저분들은 어떤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을까 궁금했었다. 호스피스로 옮겨야 될 만큼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말 한마디에 담긴 다정함과, 날 신경써주고 있다는 느낌은 한 사람에게 다행감을 주는구나. 저렇게 다정함을 잃지 않는 의사가 되어야겠구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에 톨스토이는 사랑이라고 답했다. 사랑이라, 필자 또한 이 질문에 사랑이라고 답하고 싶어졌다. 필자에게 이 사랑이라 함은 다른 말로 따뜻한 관심인 것 같다. 이 사람이 나를 신경써주고 있구나, 이 세상에서 나에게 따뜻함을 베풀어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면 마음속에 온기가 번진다.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은 사람한테 안정감을 준다는 생각을 한다. 의사는 본질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의사에게 필요한 덕목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잃지 않아야 될 것이 '다정함' 아닐까.
이 세상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다정함이 빛을 잃지 않길. 일반인과 의사의 경계에서, 의대생의 시선으로 얻은 조그마한 가치를 나누고 싶다.